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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유대칠의 철학사 1. 과거의 철학을 기억하는 방법 (대구 철학교실, 비전공자를 위한 온라인 철학교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철학사'는 몇몇 유명한 철학자에 초점을 맞춘 '철학사'다. 사실 철학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신학사도 그렇다. 그리고 더 심한 경우는 그 몇몇 유명한 철학자만이 마치 그 시대의 거의 유일한 절대 진리를 이야기하는 듯이 서술하고 동시대 다른 철학자는 그와 다르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차별이 녹아든 시선으로 기억되고 스케치된다. 예를 들어, '교부'라면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기억하고 '스콜라철학'이라면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정통이라면 흔히 동서방교회를 기준으로 기억하고 오리엔트 정교회는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의 편에서 들으면 상당히 억울한 내용으로 그들을 기억해도 이를 다시 확인하지 않는다. 그저 '이단'이란 이름 자체가 더는 자세히 기억..
아무나 유대칠의 철학 강의록 (2023 03 08) '신'과 '사람', '신학'과 '철학' 철학은 '신'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모든 철학이 '신'을 이야기한 건 아니다. '신' 자체를 아예 이야기하지 않은 철학도 아주 많다. 그리고 '신'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 내용은 아주 다양했다. '신'은 많은 경우 신은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편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의 모습은 죽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늙어가며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지도 않고 죽지 않아야 했다. 즉 '영원'해야 했다. 사람의 이성은 경험을 했거나 교육을 받아야 알게 되지만, 사람의 편에서 신은 그래선 안 되고 경험하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알아야 했다. 또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욕심만큼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사람의 편에서 신..
중심과 변두리, 보편의 세상에서 개체의 세상으로, 명령의 세상에서 소통의 세상으로 (신나는 철학사) 중국 푸젠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 계곡에는 아홉 구비(九曲)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약 8㎞ 정도 길이의 아홉 계곡을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 하며, 그 각각을 승진동(升眞洞), 옥녀봉(玉女峯), 선기암(仙機巖), 금계암(金鷄巖), 철적정(鐵笛亭), 선장봉(仙掌峯), 석당사(石唐寺), 고루암(鼓樓巖), 신촌시(新村市)이라 한다. 1183년 '주희(朱熹, 1130년~1200년)'는 다섯 번째 계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이듬해「무이구곡도가(武夷九曲圖歌)」를 썼다. 무이산의 아홉 계곡, 즉 무이구곡은 주희가 아름답다고 한 공간, 주희가 머문 공간, 즉 주희의 공간, 즉 주자학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는 자신의 머물던 성주 가야산 북쪽 대..
과거가 그리운 이들 과거를 그리워하며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미래에 관한 두려움은 종종 과거 그 암울한 시대의 현실화를 시도하게 한다. 결국 실패로 끝날 시도이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는 악의에 많은 이들이 아파할 거다.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과거를 향한 그리움은 빠른 시간을 따르지 못하는 자신이 처한 자기 방어적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들고 인터넷을 즐긴다고 하지만 심지어 스스로를 매주 진보적인 사람이라 부르며 위로하지만 사실 아주 간절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만나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2023 03 05 유대칠 [대구에서 작은 철학학교를 운영 중이다. 똑똑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슬기로운 사람, 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철학이 그리운 이들은 함께 하길 권한다. 그리 비싸지 않은 수강료 그 이..
Philosophy stories told to you 1 - Philosophy should not age. Philosophy stories told to you 1 It is said that 'philosophy' is old knowledge, but it is not. Philosophy is born anew every moment, and it must reach out to those who live in the present with its vibrant wisdom. In other words, philosophy must constantly be reborn as a "new" wisdom, facing new people in a "new" time. This is how philosophy should live. Today's philosophy should be a wisdom that..
17세기, 신학과 법학 그리고 의학의 예비학으로 철학은 자기 길을 나아가게 된다. (유대칠의 신나는 철학사) 17세기 이야기를 해보자. 1600년대 많은 철학자는 더는 귀족 집안의 사람이 아니다. 물론 데카르트와 보일과 같이 귀족 집안의 사람이 있지만, 가상디와 같이 농민의 아들도 있었고 구두를 만드는 장인의 아들인 톰마소 캄파넬라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캄파넬라와 같은 이는 어려서 귀족과 같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라틴어와 헬라어를 독학해야 했다. 메르센과 같은 이도 가난했기에 교회에서 생계를 해결해야 했고, 가상디 역시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17세기 많은 철학자는 더는 귀족이 아니었고, 생계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지만, 그들은 교회에도 대학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애써 공부한 지식이었기에 그들은 귀족 집안의 개인 교사, 즉 과외 선생이니 도서관의 사서 등을..
대학 안의 철학과 대학 밖의 철학, 18세기 철학 공간의 다양성 속 프랑스 (유대칠의 신나는 철학사)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을 보자. 당시 프랑스 대학에서 철학 교육은 중세 이후 유지된 방식을 따랐다. 물론 데카르트의 철학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세의 스콜라 신학과 철학이 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에서 과거의 교육 방식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당장 당시 철학과가 대학의 독립된 학과로 없던 시절, 신학과 법학 그리고 의학의 예비학으로 철학은 데카르트의 영향을 녹아들어 갔지만,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주의의 형이상학에 근거한 교재들이 신학을 위한 예비학으로 철학의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 철학에선 달랐다. 수학이 중시되고 점차적으로 전문화되어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통합된 하나의 거대한 철학, 그리고 그 철학의..
철학, 그게 뭔데! 돈 안 되면 유럽도 철학 안 했다! 18세기 이후 신학부와 법학부 그리고 의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굳이 인문학부를 통과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제 철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신학자(혹은 성직자 혹은 목회자)가 될 수 있고 법학자(법률가)가 될 수 있으며 의학자(의사)가 될 수 있단 말이다. 그러면 사실 누가 철학과에 들어오겠는가? 철학이란 고귀한 학문을 배우고 익혀 신학자와 법학자 그리고 의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철학 하는 이의 편에서 하는 욕심이다. 1750년 할레 대학과 예나 대학은 철학을 공부하는 인문학부 혹은 철학부에 입학하는 이들이 없었다. 학생들은 바로 신학부와 의학부 그리고 법학부에 입학했다. 괴팅겐 대학에서도 665년의 입학생 가운데 단 60명만이 철학부를 선택했다. 학생이 오지 않으니 교수의 월급도 함께 떨어졌다. 철학부 ..
주체, 여성신비가의 편에서 생각해 본다. '주체(subject)'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인식'을 통하여 '주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자기 인식만이 유일한 주체의 인식 수단이었을까?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절대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틀을 마련하고 그 틀 위에서 나는 나가 되어 있음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방식 이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중세 보편 논쟁에서 실재론은 보편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나는 나라는 생각보다 나는 '그리스도교인'이라거나 나는 '사람'이란 식의 보편적 서술의 주어 그리고 보편적 존재의 일원으로 나를 확인받았다. 주어라고 하지만 그 주어는 술어에 의하여 서술되어야 의미를 가진 주어이며, 보편적 존재에 참여할 때 의..
윌리엄 오컴의 존재론? 그런게 있는가? 윌리엄 오컴의 존재론, 뭐.. 이런 식의 말을 많이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플라톤의 존재론, 그런데 그 존재론이란 말을 우리가 사용하듯이 그렇게 윌리엄 오컴이 사용했을까? 아니다. 존재론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대의 사람이다. 존재론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단일한 행위가 없던 시대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존재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런 말이 없었다. 윌리엄 오컴의 존재론, 그런 사유를 굳이 만들어내기 위해 그의 저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의 글귀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시야에 존재론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구성하기 위해 말이다. 그런데 중세를 산 윌리엄 오컴은 스스로를 철학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