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학장의 고개넘기/허수한국학연구실의자리

조선의 그림은 재미있다...김홍도의 “씨름도”

 

조선의 그림은 재미있다...김홍도의 “씨름도”


유대칠 학장

(토마스철학학교&라이프니츠논술)


조선의 그림은 너무 재미있다. 물론 아는 사람에겐 말이다. 항시 우리의 세계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많이 아는 것은 그 만큼 세상을 재미나게 보는 것이 된다. 다음의 그림을 한 폭을 보자.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없는가? 잘 보아라. 이 그림은 아주 이상한 그림이다. 우선 다들 알듯이 이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이다. 바로 그 유명한 “씨름도”이다. 이 유명한 그림은 온갖 재미난 요소들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이 가운데 다시 한 조각을 잘라 보겠다.

 

 

 

이젠 보이는가? 아래 앉은 이의 손가락, 그것도 엄지손가락을 보라. 손이 거꾸로 그려져 있다. 더 자세히 표시해 보겠다. 네모 상자 속에 엄지손가락이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김홍도의 궁전에서 활력하는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다. 그리고 이 “씨름도”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그런데 왜 이런 실수가 있는 것일까? 다 빈치의 그림에서 눈썹이 없듯이 이것도 그러한 것인가? 화가의 실수인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또 있다.

이 그림에서 평민과 양반의 대립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잘 보아라! 눈을 크게 뜨고 말이다. 한편은 양반들이 모여 있고, 반대편엔 평민들이 모여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림을 잘 보자!


 

이 쪽에 선 사람들은 갓을 쓰거나 갓을 벗어 아래 두고 있다. 수채를 들고 얼굴을 가리는 이도 있다. 아래 세 명의 선비 가운데 한 명은 수채를 들고 선수 쪽을 가리키며, 무엇이라 경기에 관하여 한 소리 하는 듯 하다. 위의 선비들 가운데 큰 갓을 쓴 인물은 무엇인가 불안에 찬 얼굴로 경기를 보고 있다. 그 옆 갓을 쓰진 않았지만, 선비의 복장을 한 인물은 아래  턱을 내밀고 아주 불만족 있는 얼굴이다. 물론 웃는 얼굴도 있지만, 대체로 그리 좋지 않은 표정이다.

 

 

 

 

이 쪽은 갓을 쓴 인물이 없다. 무엇인가 흥미로운지 다들 윗몸을 앞으로 내밀고 경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수채로 가리고,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는 양반들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이렇게 양반과 평민이 서로 다른 반응을 하는 이유가 있다. 이 그림은 양반과 평민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굳이 자세한 조선 의복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림 속에 답이 있다

 

바로 신발이다.

 

 

 

 

 

선수는 각각 신발을 벗고 있다. 한 사람은 짚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양반의 가죽신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신발이 그림에서 분명하게 비어있는 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이두 선수의 신분은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화가의 철저하게 계획된 의도이다. 이는 다음의 부분에서 더욱 더 명확하다.

 

 

 

양반들은 두 선수 가운데 한 선수의 신발과 동일한 모양의 신발을 벗어 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의상도 유사하다. 옆 그림에서 버섯 부분을 주목해 보라. 그리고 두 선수의 버섯 부분 의복 모양을 잘 보라.

 

 

 

 

두 선수 가운데 지금 하늘로 들려 올라간 선수의 버섯 부분과 위 양반 선비의 그 부분을 비교해 보라. 동일한 형태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그림에서 양반은 지고 있다. 지고 있는 양반의 얼굴은 무엇인가 자신의 의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만에 차 있다. 그러나 평민 선수의 얼굴은 양반 선수의 허벅지를 강하게 당기며 자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더욱 더 분명히 하기 위하여 각각의 부분을 따로 해서 비교해 보겠다.

 

 

이 부분에서 발목 부분은 분명하게 선수의 것인 다음의 것과 같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이 그림은 양반과 평민의 대립 구조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엿을 파는 아이에게 있다.


 

 

 

아이는 이 경기의 공간이 단지 그림을 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의 시선을 보라. 그 아이는 경기 장면의 반대편을 보고 있다. 아마 엿을 팔 사람들을 보고 있거나 찾고 있을 것이다. 다들 경기에 몰입하여 있는 동안 이 아이에게 이 경기는 하나의 현실이다. 엿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경기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의 모습에서도 화가는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다.

아이는 현실을 보고 있다. 양반은 조선 후기 약해지는 양반의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평민들은 양반을 이기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공간 그저 평범한 엿 팔는 소년은 자기 하루 생계를 위하여 손님을 본다. 즉 양반과 평민, 즉 수구적 세력과 진보적 세력의 다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루하루 살아가야하는 일상에 묻혀 사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엿을 파는 아이에게 이 경기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랜 만에 온 좋은 기회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왜 김홍도가 어른이 아닌 힘없는 소년을 그려 엿을 팔게 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경기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점점 무너지는 조선 후기 양반 사회와 평등을 주장하기 시작하며, 평등을 꿈꾸기 시작하는 평민 그리고 이 둘의 다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을 살아가며,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약한 소년을 보여주고 있다.

김홍도의 이 그림은 철저하게 계산된 그림이다. 이런 그림 속에 어떻게 엄지손가락이 잘못된 사람이 그려졌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