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술가의 예언...재판에선...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중세시대...
예언가들이 나름의 자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재판에서 예언가의 예술 혹은 점술가의 예언 등이증거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과연 이러한 것이 타당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만일 어떤 이의 점을 쳐보니 도둑놈이 될 팔자라고 해서 구속해서 교도소에 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이에 대하여 중세 후기 철학자 하인부흐의 하인리히(Heinrich von Hainbuch)혹은 헷세의 하인리히(Heinrich von Hesse)는 의미있는 진술을 합니다. 그는 파리에서 가르치다가 이후 빈 대학을 자리를 옮겨 가르친 인물이며, 당시 빈 대학의 신학적 논의의 토대를 잡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빈 대학이란 곳은 파리 대학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에서 설립된 대학이었습니다. 파리가 교황의 영향력에 있다면, 빈 대학은 정부의 영향력 가운데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실재로 설립도 왕권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줄곧 정보의 지원 가운데 대학을 유지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부의 학술적 조언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곳의 교수인 하인리히도 정부의 여러 계약문서들에 개입하여 이를 검토한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하인리히에게 하나의 청이 들어갑니다.
당지 정부의 고민은 과연 재판에서 점술가의 예언이 증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인리히는 천체의 움직임이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며,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자연 법칙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습니다. 당시 중세 자연학에서 천체란 단지 자연법칙에 의하여 움직여진다기 보단 매우 신비하고 신적인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러한 주장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지요. 지금의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말입니다. 하여간 하인리히 등의 노력으로 인하여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빈 대학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은 이후 적지 않은 영향력을 주게 된 것 같습니다. 천체는 그저 자연 법칙에 의하여 움직일 뿐이란 것은 크라카우대학에서 공부한 쿠페르니쿠스 등에게 이어져 천체란 단지 자연법칙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움직여질 뿐이라는 근대 역학으로 이어지게 되죠.
하인리히의 이러한 논의는 지금으론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점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시도란 것을 보면 그냥 웃어넘기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그저 인간사와 무관한 논의만 중세 철학이 한 것이 아니라, 당시로는 상당히 실용적인 논의도 했다는 것을 볼 수도 있겠지요. 후훗...
우리가 흔히 보는 철학사에선 이름도 찾기 힘든 하인부흐의 하인리히... 후훗... 그런 인물들이 역사 속에서 나름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같이 볼 수 있겠죠... 중세 철학의 다양성도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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