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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이야기 중세철학

중세인들에게 시간과 죽음 그리고 유아 살해...

 

중세인들의 생활...1


중세인들에게 시간과 죽음 그리고 유아 살해...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유럽의 중세인들의 생활은 우리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혹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조상이 행한 그것과도 완전히 다르다. 유교문화권의 우리와 달리 그들은 그리스도교문화와 그리스-로마문화 등이 혼합되며, 나름의 생활 문화 속에서 살아갔다.

그들에게 종교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 그 자체였다.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본의 논리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듯이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것이 그러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그들의 삶 곳곳에 숨어있다. 그들은 세계가 신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신에 의하여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작과 종말을 성서적 근거에서 계산하였다. 지금의 호킹 박사가 행하는 물리학적 계산과 연구에 의한 우주의 시작에 관한 연구와는 차원이나 접근의 방식이 달랐다. 그들은 시편에 등장하는 신에게는 하루가 1000년과 같다는 말을 인용하여, 우주의 일주일을 우주의 존속 시간이라 보았다. 그리하여 마지막 휴식일을 제외하면, 6000년이 우주의 존속 시간으로 계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우주의 일주일이 지나면 마지막 영원한 휴일이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 외 성서적 기반 위에서 다양한 계산에 의한 종말의 추정이 있었다. 후기 중세 철학자인 피에르 아이(Pierre d'Ailly)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을 우주의 종말이라고 계산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인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la)는 얼마전인 1994년을 종말의 해로 계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간에 관한 중세인들의 관심을 시간의 측략으로 이어진다.

유럽의 중세인들은 시간의 측정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정확한 시간에 미사를 행하고, 교칙적인 수도 생활을 위해서 시간의 측정은 꼭 필요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 수도원의 한 수사는 이러한 일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100년을 1세기로 계산하고, 눈깜박할 사이(ictus oculi)도 측정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노력의 결과는 지금 우리가 세기로 역사를 서술하는 현대 역사 서술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의 관점으로 보자면, 신이 만들 세계가 신에 의하여 종말을 마지하고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는 과정의 측정법일 수 있지만 말이다.

막상 우주의 종속을 논하던 이들이지만, 인간 개인의 종속 시간인 인간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10-12세기 유럽인의 평균 수명은 30세 정도였다. 아마 이 글을 적는 나 자신이 유럽의 중세인이라면 죽을 나이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30을 넘긴 토마스 아퀴나스 등와 같은 많은 중세의 철학자들은 중세적 관점에서 오래 살지 못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중세 여성들의 수명은 더욱 더 짧았다. 이 시대의 골상 연구에 의하면, 14-20세 사망자의 뼈 상당수가 여성임이 드러났다. 즉 여성의 수명은 상당히 짧았던 것이다. 열악한 출산의 환경 속에서 당시 여성은 첫 출산이 죽음의 순간일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출산에 이은 노동은 여성의 수명을 단축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또한 유아사망율도 상당하였다. 당시는 적은 가족수를 유지하기 위하여 잔인한 산아제한이 이루어졌는데, 출산한 아이(특히 여아)에게 젓을 먹이기 전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 인위적으로 성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교회가 이러한 여아 살해를 금지하자 유럽의 인구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이러한 것은 당시 행해진 유아 살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잔인하게도 유아살해는 신앙적으로도 나쁜 것이 아니었다. 태어남은 그리 축복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 많은 인간은 평생 슬픈 운명을 지닌 존재이다. 중세의 베스트셀러인 “인간존재의 비참에 대하여”는 인간은 육체의 정욕과 구역질나는 정자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죽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까지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차라리 유아를 죽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살해에 도덕적 정당성마저 선사한 것이다. 이렇게 유아 살해를 피한 유아들도 운명이 그리 간단하진 않았다. 먹는 입의 수를 줄인다는 정책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살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즉 당시는 평생적으로 30세 정도를 살았고, 여성은 그것도 채우지 못했으며, 많은 유아, 특히 여아는 성비의 인위적 조절을 위하여 죽여졌다.

교회의 유아 살해 금지 이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12세기 중반 유럽은 5000만이었고, 13세기 초경엔 6100만에 이르렀다. 하지만 14세기 페스트의 등장은 인구의 성장을 막게 된다. 그 외에도 중세 시대에는 다양한 재앙이 있었다. 그 가운데 흉작과 이로 인한 기근은 심각하였다. 12세기는 대체적으로 기근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중세인들의 삶은 그리 쉽지 않았다. 태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신 앞에선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아가다 죄인으로 죽어가는 삶이며, 그러한 우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어둠으로만 기술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이러한 일은 종교적 정당성과 어느 정도의 시대적 요청으로 인한 것이었다. 우리의 시대도 종교적 권위나 믿음 대신 자본이 자리를 대신할 뿐인 것일지 모른다. 10만원이 넘는 축구공은 대체로 70%이상이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아동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개당 임금은 200원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결혼식에 사용하는 다이아몬드를 위하여 아프리카에선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여성과 아동이 강간과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중세인들 비판하듯이 중세인들도 우리를 비판할지 모른다.

그들은 종교에 구속당한 어둠의 시기였지만, 우리는 자본에 구속당한 어둠의 시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치우고 앞으로 계속 중세인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다음에는 중세인들의 여성에 대하여 적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