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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이야기 중세철학

중세 여인들은 속옷이 없었다!!!

중세인들의 생활...2

 

중세 여성은 속옷이 없었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옷, 옷은 그 사람의 처한 위치를 말해주기도 하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말해주기도 한다. 야한 옷이 유행인 시대가 있는가 하면, 정장 분위기의 옷이 유행하는 시기도 있으며, 이러한 유행은 그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은가. 그러면 중세인들의 옷차림은 어떠했는가?

중세인들은 양의 지방 부분으로 만든 비누를 사용하였고, 개암나무 사지로 이를 닦았다. 또한 상아나 뼈로 만든 머리빗을 사용하였고, 여인은 얼굴을 하얗게 그리고 뺨을 장밋빛으로 화장하였다. 그렇게 씻고는 치장을 하고 옷을 입는데,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옷이라기 보다는 천을 걸친다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옷은 지금과 같은 큰 차이를 가지지는 않았다. 둘 다 긴소매의 셔츠를 입었으며, 이를 꽉 쪼이게 하였는데, 이것이 유행이었다. 또한 옷을 입는 것도 불편해서 셔츠를 입고 벗을 때마다 소매를 다시 꿰매고 푸는 일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탈착식 소매를 가진 옷은 매우 좋은 선물이었으며, 사랑하는 이에게 그 사랑의 표시로 전하곤 하였다. 하여간 이렇게 입은 옷에 브로치로 고정을 하면 옷을 입는 것은 우선 마무리되었다.

여성용 가운은 허리를 기는 코르셋과 같은 것이 달려있었으며, 이는 소매를 쪼이는 것과 함께 상체를 몸매를 확실하고 잘 전하는 형태였다. 이렇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은 중세의 성직자들이 좋아하지 않은 것은 당연할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유행이었다. 생각해보면, 여성의 이러한 간단한 차림은 추운 유럽의 기후에선 힘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소매가 없는 겉옷을 입고, 다시 망토를 두르고 브로치를 하기도 하였지만, 가난한 여인들은 이러한 것이 주어지지 않았고, 천을 부족해서인지 옷은 더욱 더 짧았다. 즉 당시도 지금과 같이 옷이 부의 척도였던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옷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속옷의 존재였다. 중세 여인들은 속옷이 없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노 팬티"였던 것이다. 반면 남성에게는 팬티가 있었다. 여성은 긴소매의 셔츠가 엉덩이에 직접 닿았다. 왜 그렇게 입었는지를 더욱 더 살펴볼 일이다.
노 팬티의 중세 여인과 관련된 섹스의 논의는 흔한 중세의 이해에 준한 예상과 다르다. 당시의 의학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모두 정자를 생산하며, 특히 여자는 쾌락을 통하여 정자를 방출하고, 이것이 남자의 것과 만나 생명을 잉태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러한 의학적 지식은 당시 중세의 신앙적 논의와 모순이다. 신앙인에게 인간은 죄인이며, 쾌락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도 섹스에겐 다소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섹스의 쾌락을 거부한다면, 생명의 탄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신앙의 내용은 쾌락의 산물인 유아를 살해하는 중세의 풍습을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중세인들은 창녀는 임신을 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남성의 쾌락을 위한 도구이지, 사실 스스로 섹스를 통하여 쾌락을 느끼는 존재는 아닌 도구적 존재이기에 창녀와의 섹스는 지금의 콘돔과 같은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당시 중세인들의 의학적 논의였다. 즉, 남성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창녀와 섹스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간음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교회법적으로 거부당하였다.

의학자들과 신학자들의 견해의 차이...즉 쾌락은 인간존재의 기초적 생리작용이라는 것과

죄인인 인간이 쾌락을 느끼는 것은 죄라는 논리의 차이는 대체로 신학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중세 의학자들은 지금의 의학자들과 같이 정기적인 섹스가 건강에 유익하다고 하였으며, 재미있게도 십자군으로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섹스를 하지 못하는 남성은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하였다. 간음은 금지하며, 부인과의 섹스만을 허락하는 교회법의 사회에서 전시 중 남성은 2차 대전의 일본군과 같이 강간이나 위안부를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재로 당시의 어떤 시는 섹스를 하지 못해 십자군 만 명이 죽었다고 적고 있다. 실재로 섹스와 관련된 중세의 논의는 다양하다. 하지만 여기에선 이 모두를 적지는 않을 것이다.

중세 노 팬티의 여인들에게 남편과의 섹스는 건강을 증강시키는 방편이며, 한편 죄인으로 쾌락을 금지하는 신앙의 교리에서 자유롭게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쾌락의 일종이었다. 중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에게 신학자들도 의학자, 세속의 학자들의 논리를 완강하게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이들이 수녀나 수사가 될 수는 없는 이유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