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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위-디오니시우스를 중심으로 한 중세 천사론과 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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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철학 학교 중세 철학 자료 2003.4.


위-디오니시우스를 중심으로 한 중세 천사론과 우주론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0 문제제기

 과연 천사를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중세 시대 천사에 관한 논의는 형이상학적이며, 동시에 우주론적이다. 그렇기에 이에 관한 이해는 중세 지성사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천사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는 분리된 실체로서, 그리고 그에 관한 개별화의 문제에서 드러나며, 우주론적 논의는 천체의 동인에 관한 논의와 관련되어 다루어진다. 그 가운데 본론이 다룰 것은 우주론적 논의이다. 중세 스콜라 학자들이 이해한 우주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기반으로 두며, 동시에 위-디오니시우스와 이슬람의 학자들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중세 위계론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위-디오니시우스를 주로 살필 것이다. 디오니시우스 권위의 근거는 성서에 등장한 성 바울에 귀의한 아레오파고스 법관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 다니는 위(僞)란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철학과 신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디오니시우스가 성서의 그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는 중세 스콜라철학에 신플라톤적 전통을 이어준 분수령이 되었고, 그의 몇 않되는 저작은 중세 스콜라철학의 시기 동안 줄곧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디오니시우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정점에 이른 철학자인 프로클로스(Proclos)의 영향을 받아드렸다. 그리고 우리가 살필 천사론의 전개에서도 프로클로스의 논리를 그의 사고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히 우주론의 초석이 된다. 그것은 디오니시우스에 의하면, 천사들은 각각의 천체의 동인(動因)이다. 그렇기에 그의 천사론은 곧 우주론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내용을 살펴보자. 하지만, 이러한 여정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프로클로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를 거쳐서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 이르려야할 것이다.

2.0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이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갈릴레이 등의 등장 이전까지 지도적 인물로 존속하고 있었다. 그는 하늘의 모양은 필연적으로 구형이라고 하고, 원운동을 하며, 이러한 운동은 규칙적이지, 비규칙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천구는 자신의 아래에 있는 천구에 운동을 전하는 것이며, 이렇게 지구로부터 바깥쪽으로 달, 태양, 금성, 수성, 화성, 목성, 토성의 순으로 배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천구와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종동천(primum mobile)으로서 이것은 신적인 것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다른 천구가 움직이며, 그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달 위의 세계와 달 아래 세계를 구분한다. 아래의 세계는 4원소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생성 소멸의 세계이지만, 위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천체는 더욱 더 순수한 제 5 원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 아래 세상은 흙, 물, 공기, 불로 이루어진 것인데, 흙과 물은 무게가 있어서 중심을 향하려고 한다. 그리고 공기와 불은 이와 달리 공중으로 상승하려 한다. 여기에서 이들은 위계적으로 구분이 되는데, 불은 공기 보다 높고, 공기는 물보다 높고, 물은 흙보다 높다. 그리고 이에 의하여 지구의 중심은 흙이며, 여기에서 멀어질수록 위계적으로 더 고귀한 것이 된다. 그렇기에 지구에서 멀수록 더 고귀한 천구가 되는 것이며, 이러한 논리에서 종동천은 가장 먼 것이며, 달은 가장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종동천은 존재의 차원에서도 보다 높다고 할 수 있으며, 달은 그렇지 않아서 그 표면이 깨끗하지 않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 아래 세계의 운동, 즉 중심을 향하려는 이러한 운동은 신적이지 않으며, 영원한 것일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 천체는 단지 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며, 곧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가 천체를 보는 눈과 달리 그는 식물이나 동물과 같이 그렇게 생명과 그로 인한 고유한 활동을 하는 존재로 천체를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천체의 것은 달 아래의 것에 비하여 신성하고, 위계적으로 앞서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체와 다른 위계적 차이로 천체를 이해했다. 지구를 중심으로 각각의 천체를 고귀함의 정도에 따라서 구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프로클로스의 생각과 결합하여 디오니시오스에게 이어진다.

3.0 프로클로스적 배경

 프로클로스는 신플라톤을 정점에 이르게 한 인물이다. 그의 삼중구조에 의한 우주의 이해는 디오니시우스에게 형이상학적 토대가 된다. 그에 의하면, 모든 것을 일자(  , 一者)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일자에게서 유출(      )되며, 이렇게 유출된 모든 것을 다시 일자에게로 되돌아간다(         ). 이러한 삼중구조는 단지 프로클로스만의 작품은 아니다. 이는 이미 신플라톤주의의 시조와 같은 플로티누스(Plotinus)의 일자-생명-정신(  -   -    )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으면, 이암불리코스(Iamblichos)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본격적인 의미에서 체계화시키고, 중세 철학에 전해준 인물은 프로클로스라고 할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그의 『파르메니데스 주해』에서 '실체'-'타자성'-'자기정체성'이란 삼중의 구조를 그리고 이어서 『신학의 요소』에서는 '비분리적인 것'-'분리적인 것'-'참여자'라는 또 다른 방식의 삼중구조를 소개한다. 즉,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전통인 삼중구조를 절정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클로스의 삼중구조는 디오니시우스의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를 위계적으로 구분하였다. 더 고귀하고 덜 고귀하다는 식으로 작게는 달 아래와 달 위의 세계와 구분하고, 넓게는 지구와 달, 태양에서 종동천까지 그 위계를 구분하였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은 프로클로스와 만남으로서 더욱 더 확고한 위계의 구조로 나타내게 된다. 프로클로스는 천공은 아홉 개의 동심구의 껍질로 이루어지며, 첫 번째 껍질은 달이고, 그 다음은 수성이며, 그 위로 여덟 번째는 항성을 운반하는 것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는 종동천이 있고, 이렇게 우주가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는 그리스도교화된 형태로 디오니시우스 가운데 드러난다. 그리고 각각의 천체를 움직이는 동인으로서 성서에 등장하는 천사를 제시한다. 그리고 천체와 함께 천사들도 위계적으로 이해함으로서 이러한 우주론의 주장에 기반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디오니시우스를 생각은 『천상위계론』에서 체계화된다.

4.0 디오니시우스의 천사론과 우주론

 디오니시우스에 의하면, 위계는 성스러운 질서이며, 신적인 것에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의 상태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의 목적은 신과 가능한 유사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는 모든 것의 이해와 행위의 지도자로서 신을 가진다. 즉, 신에 더 혹은 덜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위계를 가진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도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였고, 이는 천체와 천사에 관한 이해에도 그러하다. 그가 전하는 천사는 크게는 9단계의 위계로 그리고 작게는 3단계의 위계로 나누어진다. 그러한 이유는 3개씩 한 묶음으로 3단계로 천사들을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첫 단계는 seraphim, cherubim, thrones로 이루어지며, 둘째 단계는 authorities, dominions, powers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angels, archangels, principalities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신에 다가감의 정도에 의한 성스러움의 질서라는 그의 위계에 관한 정의를 적용하자면, 첫 단계는 신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다. 사실, 그 자신도 첫 단계를 직접적으로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과 같다고 하며, 직접적으로 신에 의존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삼중구조는 프로클로스의 영향력이 드러난 것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특히, 천사에 관한 삼층구조에서 상위구조로 갈수록 신에게 가까운 것이며, 멀수록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신플라톤주의 전통, 그 가운데 프로클로스에 의한 삼중구조의 영향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의 질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한 프로클로스적 사고는 디오니시우스에게 신을 정점(頂點)으로 하여, 그 다음을 천사, 이성적 정신, 단순 유기체, 무생물의 순서로 위계 잡힌 우주관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는 단지 단순한 계급을 넘어서 존재의 고귀성과 신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것은 그가 위계를 거룩한 질서 혹은 신과 유사함의 정도로 이해하였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이 각각의 위계를 중개자로 창조한 것은 아니고, 신은 어떤 중재도 없이 이 모든 위계의 단계를 직접 창조하였다.
 이러한 천사의 위계는 천체의 위계와 관련을 가진다. 신학자들은 천사란 주제를 천체의 논의와 연관시키며, 천사의 질서를 신성과 천체의 위계와 관련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각각의 천체를 움직이는 동인으로서 천사를 가정하고, 이를 통하여 우주론을 전개한다. 
 그에게 존재하는 모든 힘의 근원은 우선적으로 신이다. 신은 모든 힘의 원인이다. 천사들도 신에 의하여 존재하며, 능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천사들은 9 단계의 위계를 가지며, 각 단계는 angels에서 seraphim까지 이루어지며, seraphim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종동천이며, 이를 넘어서는 10번째 천체는 신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각의 천사들의 아래에, 즉, 달 아래에 지구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구에는 인간을 정점으로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로 위계적 구조가 있으며, 이렇게 신에게서 9 단계의 천사로 그리고 이어서 지구와 지구의 인간에서 무생물로 각각의 위계가 정해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종동천에 이르는 위계를 가정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지구가 흙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가장 무겁다는 그의 자연학적 논의에 토대를 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학적 논의는 그리스도교적 논의와 만나게 되며, 이로서 디오니시우스에 의한 위계론적 천체론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근대가 시작될 무렵까지 중요한 이론으로 위치하고 있었다. 9 천체와 9 천사의 만남은 그렇게 중세 자연학 혹은 우주론의 중요한 근본적 이론이 된 것이다.

5.0 토마스의 천사론과 우주론

 디오니시우스의 이러한 우주론과 천사론의 논의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이슬람의 철학자 아비첸나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그의 우주론은 철저하게 천사론과 관련된다. 그는 달 위와 달 아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구분을 인정한다. 그리고 최고천에서 마지막 하늘까지 유출의 도식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예지체, 즉 angelus에 의한 것을 형상의 부여자(formarum dator)라고 한다. 천사 가운데 angelus가 소식의 전달자이고 보면, 이러한 논의는 매우 흥미있다. 하여간 그는 각각의 하늘에 각각의 예지체로서 천사를 가져온다. 그렇게 그는 우주론과 천사론을 결합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론과 천사론의 논의는 서양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게도 보여진다. 그 가운데 토마스가 있다. 그는 플라톤의 주장과 같이 행성 혹은 별들이 자기 생명 혹은 영혼을 가지기에 스스로 운동한다고 보지 않는다. 즉, 그들은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천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어간 프롤레미오스(Ptolemios)의 학설에 따라서 10가지의 단계를 가진다. 최고천(emptreum)과 수정천(crystallinum) 그리고 성좌들의 하늘과 7개 혹성의 하늘이다. 토마스 역시 천체를 위계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미오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 등을 통하여 중세 인들이 흔히 인정한 것이다. 보나벤투라 역시 하늘을 최고천과 창공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수정천을 놓아서 이들을 위계적으로 구분한다. 천체 혹은 우주에 관한 위계적 구분은 이와 같이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게는 흔한 논의였다. 적어도, 옥캄의 면도날에 의한 근대적 사고에 출현 이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토마스는 천사들은 창조된 것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고, 이들에게 알맞은 자리는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고 한다. 토마스에게 별은 스스로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장 능력도 감각능력도 사고 능력도 없다. 그것은 곧 영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별의 운행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인가?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소개한다. 만일 별이 영혼을 가진다면, 그것은 천사적 본성과 유사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체는 아니지만, 단지 유비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토마스 역시 땅을 가장 무거운 것이라는 자연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지구 중심으로 9개의 하늘을 위계적으로 나누고, 천사의 위치는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고 한다. 천구 혹은 천체가 천사의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듯이, 천체는 지상의 물체와 다른 것이다. 즉, 천상의 것과 달 아래 세상의 것은 그 질료가 다른 물체인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는 교부들의 권위를 가져와, 최고천에 관하여 논의한다. 여기에서 토마스는 디오니시우스의 논의를 인용한다. 신의 권위에 의한 더 높은 위계의 천사가 더 낮은 단계의 것에 영향을 주듯이, 그렇게 천체도 그러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가장 낮은 하늘과 최고천의 관계는 angelus와 seraphim의 관계와 유사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천사는 하늘에 있으며, 천사의 위계와 같이 천상의 것도 위계를 가진다. 그리고 천체는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니며, 동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천사적 본성을 가진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천사와 우주에 관한 이해는 그의 『정신적 피조물에 관하여』(Queastio disputatae de spiritualibus creaturis)에서 더욱 더 잘 드러난다. 그는 직접적으로 정신적 실체는 동자로서 천체들과 동일하다고 한다. 물론, 천사가 질료를 가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는 천체의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동자(motor)로서 그러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하듯이, 천사적 본성을 가진 것일지 모른다는 토마스의 논의는 이곳에서 확실하게 정신적 실체, 즉 천사로 드러난다. 천체들은(caelestia corpora) 천사에 의하여 동자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다분히 디오니시우스에 의한 천사론과 우주론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토마스의 우주론은 중세 우주론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러한 논의는 후에 임페투스(impetus) 논의의 분격적 등장 이전까지 중세의 대표적 우주론이었다. 

6.0 마무리

 역사의 면도날은 이러한 천사론에 의한 우주의 이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옥캄 이후 이와 같은 천사론에 의한 우주론은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이는 서구의 과학사에 오랜 시간 하나의 학설로 존재하였다. 여기에서 지금의 과학적 이론이 그 당시 보다 더 나은 진리라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시의 과학관에서 당시의 것을 살핀다면, 이도 분명 덜 진리적이지만, 더 진리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를 살필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는 근대 세계관에서 이러한 세계관은 더 이상 현실적인 진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도 현대 우주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준비하게 한 한 단계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천체론과 자신들의 히브리즘적 요소를 결부해야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디오니시우스는 이러한 결부의 작업을 위한 가교를 마련하였다. 천사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에 인용되면서 나름의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스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러한 체계는 당시 나름의 논리성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중세 천사론이 가지는 의미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되었고, 결국은 중세 자연철학적 논의로 이어졌다. 이제 남겨진 것은 이러한 논의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기동력, 즉 임페투스(impetus)에 관한 논의이다. 과연 이 둘은 어떻게 서로를 공박하였는지를 다루면 중세 후기 자연철학의 절정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숙제로 남긴 채 여기에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