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세철학의자리

옥캄의 연대기적 논의

http://cuth.cataegu.ac.kr/~sophia/cgi-bin/spboard/board.cgi?id=ydc1&action=download&gul=74

 

 

옥캄의 진의(眞意)

: 옥캄에 관한 연대기적 연구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 옥캄 존재론의 두 측면.


 옥캄은 보편자의 본성을 고려하는 두 가지 이름을 전개한다. 그리고 서로 양립하기 힘든 이 두 견해에 의하여 우리는 뵈너(Ph.Boehner) 이후 옥캄을 연대기적으로 다룰 근거를 가지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상(fictum)-이론이다.1) 물론 이는 영어의 fiction, 즉 가상(假想)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개념 혹은 보편자는 실재적 존재를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그의 주체로 영혼의 우유는 아니지만, 사고에 관한 대상의 존재를 가지는 것이다. 즉 ‘객체적 존재’(esse objectivum), 순수하게 관념적 실존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이는 ‘상’이라 불려진다. 그런데 또 다른 이론은 이와 다르다. 이 이론은 사고(intellectio)-이론이다. 이에 의하면 개념 혹은 보편자는 영혼 가운데 실재적 우유이며, 사고의 행위와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체로 영혼 가운데 실존하는 것이며, 이는 ‘주체적 존재’(esse subiectivum)이다.2) 여기에서 전자의 것은 초기의 입장이고, 후자의 것은 후기의 입장이다. 여기에서 객체적 존재, 그의 존재란 사고되는 존재로 주관이나 시간과 구별되어 자기 동일성을 지니는 순수한 논리논 의미만을 가지는 그러한 존재이다. 그러나 주체적 존재는 이와 다르다. 이는 인간의 이해 작용에 의하여 주체적으로 생성해낸 것으로 정신 밖의 사물(존재자)과 같은 자격을 가지는 그러한 존재이다.3)

 이렇게 옥캄의 사고, 즉 존재론에 관한 옥캄의 사고는 어떤 변화를 가지고 있다고 논의되고 있다. 과연 그 변화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보여질 수 있는 것인가? 본론은 이러한 옥캄의 연대기적 흐름을 논의하려는 것이다.  


2. 옥캄의 연대기적 입장 변화에 관하여.


 옥캄에 관한 연대기적 논의가 힘든 것은 그의 생애가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있다. 그에 관한 연대기적 논의는 마이어(Maier)와 우드(Wood) 등의 연대가 각각 상이한 결과를 내어놓고 있다. 마이어는 옥캄이 Ordinatio를 저술하고, 이어서 Reportatio를 저술했다고 한다. 전자는 1318(1317-1319)년에 옥스퍼드 이외의 영국의 한 지방에서 행해진 강의의 산물이며, 후자는 1320-1321년 옥스퍼드에서 구성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근거를 마이어는 마르치아의 프란치스코가 Ordinatio 가운데 논의되어지는 양에 관한 옥캄의 이론을 알고 있었고, 임페투스에 관한 마르치아의 이론을 옥캄의 Reportatio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운다.4) 그러나 갈(Gal)과 우드는 이를 거부한다. 그들은 Reportatio가 먼저이고, 이후에 Ordanatio가 저술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옥캄이 ꡔ명제론ꡕ을 두 번 강의하였고, 강의의 첫 강좌가 Reportatio이며, 이는 아마도 런던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5) 그 가운데 과연 어느 편에 서야하는가? 필자는 갈과 우드의 입장을 개념(conceptus)에 관한 이해의 연대기적 연구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옥캄은 초기 저작인 Reportatio II, q.15에서 개념은 어떤 상이며, 이는 객체적 존재를 가지는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주체적 존재는 아니라고 한다. 여기에서 옥캄은 보편자가 어떤 실재적 존재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이론을 거부한다. 이는 곧 상-이론을 옹호하며, 사고-이론을 비판하는 것이다.6) 그러나 이것이 옥캄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Ordinatio에서 당장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옥캄은 사고-이론을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Reportatio에 비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어서 ꡔ임의토론집ꡕ과 ꡔ자연학에 관한 질문들ꡕ에선 더욱 더 호의 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상-이론을 거부하고, 사고-이론만을 취한다. 개념에 관한 이러한 논의의 맥락에서 볼 때, 마이어의 연대기적 논의보다 우드의 논의가 더욱 더 근거가 있어 보인다. 물론 아직까지의 논의로 그것을 확정하기에는 많은 것이 미흡하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필자에 의하여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옥캄의 연대기적 논의를 위하여 그의 생애에 관하여 더욱 더 자세히 알아보자.


2.1 옥캄의 도전적 여정.

: 옥캄의 생애에 관하여.


 우드에 의하면 옥캄은 1317년-1319년 사이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Reportatio는 옥스퍼드가 아닌 영국의 어느 지방에서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318년 6월 18일경 옥캄은 옥스퍼드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옥스퍼드의 수사였고, 링컨교구에서 고해성사의 자격이 필요했다는 사실에서 이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어쩌면 당시 옥스퍼드에서 옥캄은 성서 입문의 성격을 가진 ꡔ덕의 연관에 관하여ꡕ와 같은 저작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로도 2년을 더 머무른 듯 하다. 우리가 옥캄의 Reportatio를 읽을 때, 그가 그 시기의 다른 이들, 예를 들어 1316-1317년에 이루어진 알뉘크의 윌리엄(William of Alnwick)의 ꡔ임의토론집ꡕ과 아우레올리가 1316년-1317년 파리에서 행한 ꡔ명제론ꡕ에 관한 강의도 알고 있었다. 이 시기 옥캄은 근본적으로 앞선 시대의 학문적 성과를 깊이 익혔다. 예를 들어, 겐트의 헨리(Henry of Ghent)와 로마의 자일스(Giles of Rome)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us) 등이다. 또한 동시대의 인물에 관한 논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옥스퍼드에서 ꡔ명제집ꡕ을 강의한 독서가 요한(John of Reading)과 여전히 1317년 가을 옥스퍼드의 교수로 있었던 알뉘크의 윌리엄, 1316-1318년 파리에서 ꡔ명제집ꡕ을 강의한 아우레올리를 직접적으로 인용했다. 옥캄은 서서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7) 

 1321년 이후 옥캄이 옥스퍼드에 계속 체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런던에 체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옥캄은 철학교수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런던의 시기, 즉 1321-1324년 동안 옥캄은 그의 생애 가장 중요한 저작을 작성하였다. 논리학 저작과 자연학 저작을 마련하였으며, 성체론과 관련된 ꡔ양에 관하여ꡕ와 ꡔ그리스도의 육체에 관하여ꡕ을 작성하였다. 또한 그의 가장 영향력을 가진 저서이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ꡔ논리학대전ꡕ이 바로 이 시기에 작성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막바지에 그의 신학 저작인 ꡔ임의토론집ꡕ이 작성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아비뇽에 도착하여 완결되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이렇게 저서의 연대기적 의미를 넘어서 그의 비판가인 월터 샤톤(Walter Chatton)과 그의 지지자인 위드헴(Adam Wodeham)을 알게 된 시기이다. 이들은 같은 수도원에 살고 있었다.8) 이 당시 샤톤은 같은 수도원에 살면서 옥캄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실상 이 시기 옥캄과 샤톤의 저서들에게 이들의 관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샤톤은 옥캄의 보편자이론과 은혜와 성화의 문제 그리고 양과 관계의 상태와 성체이론을 비판한다. 이뿐 아니라, 이 시기 옥캄은 타인들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 독서가 요한은 이 시기 옥캄을 자신의 저서에서 비판했으며, 리차드 캄프셀(Richard Campsall) 또한 옥캄의 지칭이론과 보편자이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이론에 관한 논의를 비판한다.9) 이러한 옥캄을 향한 비판을 다음의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단지 실체와 질만이 실재하는 존재자라는 옥캄의 논의.

2. 실존하지 않은 것에 관한 직관적 인지에 관한 옥캄의 논의.

3. 은총과 성화 이론과 관련된 논의.

4. 실체변화에 관한 논의.

5. 보편자이론.


 이러한 논의는 결국 옥캄에게 근본적 근거인 신의 절대적 권능에 관한 논의와 경제성의 원리에 의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필자에 의하여 또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다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옥캄의 근원적 명제는 당시인들에게 매우 논쟁적인 문제를 야기하였음을 분명하다.   

 1322년 대학의 총장이던 존 루터렐은 옥스퍼드 대학 당국의 요청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자, 그는 1323년 교황법황청에 가서 옥캄을 이단으로 고소한다. 이에 관하여 옥캄은 직접 스스로를 옹호하기 위하여 1323년 아비뇽으로 떠난다. 그리고 1324년 1-5월 사이에 여행을 시작하며, 이로 인하여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ꡔ자연학ꡕ에 관한 주해를 마무리하지 못했으며, 그의 의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ꡔ윤리학ꡕ 주해도 못하게 되었다.10) 아비뇽에서 그는 ꡔ명제론 주해ꡕ 가운데 드러난 자신의 이론이 비판당한 것에 무엇인가 답을 해야했다. 당시 교황청 조사단은 옥캄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 단죄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옥캄은 자기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옹호해야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런던에서 집필을 시작한 ꡔ임의토론집ꡕ이 최종적으로 편집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기 사상이 잘 드러난 ꡔ임의토론집ꡕ이 1326-1327년 사이에 완결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11)

 스스로를 옹호하면서, 옥캄은 당시 교황의 소유권에 관한 논의에도 도전적으로 논쟁하였다. 그는 체세나의 미카엘(Michael of Cesena)과 베르가모의 보나그라시아(Bonagratia of Bergamo) 등과 같이 청빈을 주장하였다. 당시 교황인 요한 22세는 교서 Cum inter nonnullosAd conditorem 그리고 Quia quorumdam mentes에서 교황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프란치스코회의 근본과 같은 길일 수 없었다. 이들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청빈이 의무적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자족하는 삶과 비상속적 상태 그리고 역사적 사실로 예수와 사도들의 절대적 무소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교황은 이를 부정하였다. 보나그라시아와 미카엘은 소유의 집착은 지옥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황은 Quia quorumdam mentes에서 자신은 지혜의 열쇠이며, 수호자라 주장한다. 하지만 미카엘은 교황의 해석을 잘못이라고 하고, 예수가 소유를 주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황은 교서 Quia vir reprobus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러면서 미카엘을 ‘이 이단자’(iste hereticus)라고 칭한다. 이렇게 중세 이단인 미카엘주의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카엘의 사상은 그의 저서와 옥캄에 의하여 편집된 몇몇에서 볼 수 있다. 즉 옥캄은 이 논쟁에서 자신의 수도원의 이상에 따라서 미카엘과 보나그라시아의 노선을 따른다. 또한 1332년과 1334년 사이에 저술한 Opus nonaginta dierum이란 저서를 남긴다. 그리고 이 저서는 가장 중요한 미카엘주의의 저서가 되었다. 옥캄은 이렇게 시대와 싸워야했다.12) 1328년 수도원의 총장은 옥캄이 아비뇽을 도주하여 루드비히 황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하였고, 그 후 옥캄은 죽음의 직전까지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있었다. 이러한 시간 가운데 옥캄의 자신의 정치철학적 논의의 구상을 다져갔다. 교황 요한 22세는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영주의 권위는 영주권이지만, 그 소유권은 교회 즉 교황에게만 있다고 했다. 이러한 교황 요한 33세에 관한 옥캄의 입장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다. 그러한 교황은 세속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세속적 정치에 교황의 권리, 즉 교권의 우선을 주장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군주와 영주의 선거로 당선된 루드비히 황제의 대관을 거부한다. 이에 황제는 새로운 교황을 내세워 로마에서 1328년 7월 13일 대관식을 치룬다. 그리고 황제는 교황이 예수와 사도가 사적 재산을 소유하였다고 하는 것이 이단이라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옥캄에게는 자신의 수도회의 이상과 관련된 소유권에 관한 논의가 정치적 문제에로 확장된 것이며, 황제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논의가 소유권의 문제라는 신학적 문제에로 넘어간 것이다. 여기에서 옥캄은 자신이 소속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이상인 개인적 집단적 소유권의 포기에서 진정한 이상을 찾아가는 가난에 관한 이상을 강조하며, 교황의 소유권을 비판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이단적 교황에 관한 다수결에 의한 탄핵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선다. 옥캄이 소속한 수도원의 이상과 당시 정치적 필요에 의한 황제의 논의는 여기에서 타협선을 찾는다. 그러면서 옥캄은 생의 마지막까지 서신으로 교황과 문서투쟁을 하였다.    

    

2.2 연대기적 논의와 옥캄의 진본 논의.

: 리히터의 무리수.


 리히터(V.Richter)는 옥캄의 연대기적 논의에 관하여 새로운 견해를 보인다.13) ꡔ자연학에 관한 질문들ꡕ에 관하여 리히터는 라이볼드(Leibold)의 견해를 빌러 이는 편집물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이는 옥캄 자신의 권위적 논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리히터는 이 ꡔ자연학에 관한 질문들ꡕ이 옥캄 저서의 연대기적 연구뿐 아니라, 진본의 권위성의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옥캄은 이미 논의하였듯이 ꡔ명제론ꡕ에서 상-이론에 호의적이었다. 또한 리히터는 1321년과 1324년 사이 논리학과 자연학에 관한 강의에서 옥캄이 상-이론과 다른 기타의 견해 사이에 양자택일적 입장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분명 믿을 만한 것이다. 더 나아간 단계에서, 리히터에 의하면, 옥캄은 이들 양자의 견해 가운데 하나에로 더욱 더 급진적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성에 관하여 리히터는 아비뇽 시절 이전에 성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러한 급진성, 즉 사고-이론의 실행으로의 연대기적 발전은 옥캄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의 학파에 의한 것이며, 그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 것이다.14) 그런데 이러한 리히터의 견해는 기존의 견해와 구별되는 것이다. 마우어와 뵈너 등의 견해에 의하면 1321년과 1324년 사이 ꡔ논리학대전ꡕ이 작성되었으며, 뵈너는 분명하게 이 저서 가운데는 상-이론이 아니라, 사고-이론이 다루어진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이는 ꡔ논리학대전ꡕ이란 문헌을 통하여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다. 그러면 리히터는 이 시기에 작성된 ꡔ논리학대전ꡕ을 어떻게 보아야했겠는가? 리히터는 여기에서 매우 힘든 무리수를 내세운다. 즉, ꡔ논리학대전ꡕ의 권위성을 의문하는 것이다.15) 결론적으로 필자는 리히터의 견해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리히터의 견해, 즉 ꡔ논리학대전ꡕ에 관한 의심과 연대기적 발전에 관한 의심은 옥캄의 사상적 발전에 관하여 매우 경직된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ꡔ자연학에 관한 질문들ꡕ이 설사 진본이 아니라도, 그것은 옥캄의 사상을 담고 있으며, 여기에서 보편자에 의한 논의는 상-이론과 사고-이론 가운데 사고-이론을 취하고 있다. 또한 ꡔ논리학대전ꡕ에선 아예 상-이론이 등장하질 않는다. 그리고 사고-이론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리히터는 사고-이론에 관하여 옹호적인 것들, ꡔ논리학대전ꡕ 등의 권위성을 의심한다. 심지어 ꡔ임의토론집ꡕ과 ꡔ자연학에 관한 질문들ꡕ 같이 상-이론을 아예 거부하고, 사고-이론만을 다루는 것도 당연히 의심한다. 옥캄에 관한 단행권 연구서를 내어놓은 어느 저서에서도 ꡔ논리학대전ꡕ이나 ꡔ임의토론집ꡕ과 같은 것의 권위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다른 연구가들의 견해에 의존하며 논의를 이어가지마는 않을 것이다. 필자의 눈에 옥캄의 연대기적 입장 전환은 그의 신학적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리히터의 견해와 같이 옥캄의 저서 가운데 ꡔ임의토론집ꡕ과 같은 저서의 권위성을 의심하는 것은 옥캄에 관한 당대 이해와도 결코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보임 역시 필자는 다음의 논의에서 주장할 것이다.


2.3 옥캄과 입장 전환.


 아우레올리(Peter Aureol)는 상-이론을 주장한 인물로 간주된다. 그러면 상-이론에 관하여 다루어보자. 아우레올리는 우리의 지식이 객관적 혹은 드러난 존재(esse apparens)로 취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지식의 대상이라 한다. 예를 들어, 장미의 개념은 장미 그 자체이지만, 그 실재적 존재와 같이 있지는 않으며, 객관적(대상적) 존재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서 장미의 개념이라는 보편성이 알려질 때, 장미는 드러난 그리고 지향적 존재를 가진다. 그리고 비록 이것이 실재적 장미가 제각기 구분된다고 하여도 지향적 존재 가운데 그것은 하나의 전체 장미로부터 연합한다는 것이다. 드러난 장미는 실재적으로 모든 장미에 동일한 것이다. 여기에서 아우레올리는 그것들에 관한 개념이 형성될 때 정신은 그의 대상에게 객관적이고 혹은 드러난 존재를 준다고 한다.16) 이때 장미의 개념은 객체적 존재이다. 이는 영혼 가운데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단지 객체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영혼 외부의 대상을 영혼 가운데 재현한 것으로 실재적 존재 혹은 주체성 존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세 상-이론의 형태를 우리는 버얼리(W.Burley)에게서 볼 수 있다. 버얼리는 ꡔ포르피리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구(舊) 학예에 관하여ꡕ에서 의심스러운 이론으로 당시 이해된 상-이론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는 “객체적 존재는 인식되어진 존재라고 이해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성의 객체적 존재가 가지적 존재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17) 이것이 상-이론이라면, 옥캄의 전기 명제론 주해인 Reportatio는 상-이론에 호의적이다. 여기에서 옥캄은 보편자 혹은 개념이 어떤 실재적 존재자라는 모든 이론을 거부한다.18) 뵈너는 Reportatio d.2, q.15의 다음을 인용한다.


동일하게 나는 사고행위는 실재적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진술되는 방식으로 직관적 혹은 추상적 실제적 인식으로 종결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능동지성이 현실적으로 보편자를 만든다는 것이 참이라고 이야기할 때, 어떤 상과 드러난 객체적 존재 가운데 어떤 개념이 만들어지며, 이는 이 행위를 종결짓고, 이는 그러한 것이 객체적 존재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든 주관적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옥캄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보편자와 개념이 실재적 존재를 가진다는 모든 이론, 즉 사고-이론과 같은 것을 비판한다. 즉 그는 상-이론을 취하고 있으며, 사고-이론에 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것이 초기 입장이다. 하지만 Ordinatio에서 옥캄은 사고-이론에 관하여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강조점은 상-이론에 있다.


나는 보편자가 영혼의 내부 혹은 외부에 주체 가운데 실재하는 어떤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영혼 가운데 사고-대상(객체적 존재, esse obiectiva)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은 객체적 존재로 그 자신의 실재적 존재를 가지는 영혼 외부에 있는 것과 유사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다. 영혼 외부의 것을 보는 지성은 영혼 가운데 그것과 유사한 것을 만든다.19)


 여기에서도 옥캄은 상-이론에 호의적이다. 이러한 ‘상’은 키메라와 페가수스와 같은 불가능한 존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객체적 존재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은 하지만 ‘상’이라기 보다 차라리 ‘만들어진 것’(firmentum)이다. 하여간 ‘상’이란 오직 객체적 존재라고 불리는 정신 가운데 비실재적 존재 방식일 뿐임은 이 시기 옥캄에게 매우 당연한 것이며, 이는 당시 널리 알려진 이론이었다.20) 그러나 후기의 입장에서는 사뭇 다르다. 옥캄의 저서는 divisio textus와 expositio textus 그리고 dubia circa litteram으로 구성되며, 그리고 이는 pro와 contra로 반론을 제시한다. 그런데 후기에 이르러 상-이론은 contra의 대상이 되어 등장하는 것이다. 후기 저서를 살펴보자. ꡔ자연학에 관한 질문들ꡕ에서 옥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개념은 영혼의 외부에 있는 사물이 아니고, 영혼 가운데 있는 그러한 객체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주체적인 것이다.21)


 옥캄은 이 저서에서 개념은 주체적 존재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옥캄의 입장은 이미 논의한 초기의 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옥캄의 이러한 연대기적 변화의 근거와 이유는 무엇인가? 그와 같은 수도원에서 그의 이론의 비판가인 샤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샤톤은 옥캄이 ꡔ명제론ꡕ을 주해하며, 주장한 상-이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고-이론을 주장한다. 바로 이 샤톤이 옥캄이 런던에 살 때 같은 수도원에 거주하였던 그 샤톤인 것이다.


2.4 샤톤의 사고-이론.     


 여기에서 간단하게나마 샤톤의 견해를 다루어보자. 이를 위하여, 필자는 샤톤의 Reportatio에 다가가려 한다. 옥캄을 비롯한 중세 학자들의 ꡔ명제론ꡕ에 관한 주해로 Reportatio는 그 내용이 그 보고자(reportator)에게서 나왔기에 사실 그 자신의 독자적 저서만큼 그 자신의 견해가 그러나 있다. 그렇기에 중세 학자들의 논의는 양자가 조화롭게 다루어져야한다.22) 샤톤의 다음 논의를 보자.


 다시 논증은 동일하게 사랑의 경우에서 단호하다. 왜냐하면 영혼 가운데 있는 사랑 받는 것은 인식되는 것처럼 영혼 가운데 있는 것이다. 앞의 논의와 같이 말이다...

 셋째 다른 논증에서 그것은 종종 앎의 행위가 대상을 위한 복합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라 이야기된다. 추론 혹은 명제는 상들에 의하여 구성되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사고함 그 자체에 의하여 구성된다. 또한 그 논증은 보편자에서와 같이 개별자의 인식에서와 같이 그렇게 진행된다. 또한 명제와 추론과 그러한 것은 주관적으로 영혼 가운데 있고, 객관적으로 있지 않으며, 그것들이 반사작용적 행위에 의하여 이해되어질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추론은 영혼 가운데 주관적으로 속하는 참된 사고함으로 구성된다.23)


 이와 같은 샤톤의 글에서 필자는 사고-이론의 한 전형을 본다. 그리고 이는 초기 옥캄의 이론에 관한 강한 비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샤톤은 분명하게 ‘주체적 존재’를 인정하고 ‘객체적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샤톤은 옥캄의 개념에 관한 사고를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14세기의 많은 철학자들은 당시 학자들과 직접적 논쟁을 하며 스스로의 이론을 구축하여 갔다. 이는 옥캄과 샤톤을 비롯한 그 외 많은 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24) 실재로 샤톤은 자신의 저서에서 옥캄을 항시 감안하고 있으며, 그 외 아우레올리와 리차드 캄프셀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 등의 견해를 항시 감안하고 있다. 샤톤은 옥캄이나 아우레올리 등의 상-이론을 논박하면서, 인간의 종적 개념은 사고-이론에 의하여,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그 외 다른 개별적 인간들에 관한 사고(intellectio)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영혼 가운데 인식함과 사고함 그 능력에 의하여 그 가운데 그가 인간이거나 아니라는 것을 소크라테스에 관하여 판단할 수 있다. 동물에 관한 사고함도 그러하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동물이라는 판단을 동물에 관한 사고로 가능하다. 즉 “소크라테스, 그가 인간과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동물이다”라고 판단한다는 것은 동물에 관한 사고에서 가능하단 말이다.25) 샤톤은 “나는 서술되어지는 것은 주체적 존재를 가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서술되어지는 보편자 혹은 개념은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존재’라는 것이다.26) 이는 분명 옥캄의 초기 이론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며, 그에 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샤톤은 상-이론과 같은 것이 그의 철학적 입장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그러면 그의 근본 원리는 무엇인가? 바로 “필요 없이 다수성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dico quod non est pluralitas sine necessitate.)27) 그는 분명하게 이는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원리를 통하여 여러 철학의 문제를 다루었다.28) 그리고 바로 이 문제도 예외의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샤톤에게 객체적 존재는 개념적 존재의 한 종류이며, 주체적 존재에 반대되는 것이다. 전자는 이미 아우레올리의 경우에 이야기한 것으로 지식의 대상이 지성에 드러난 존재, 즉 객체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샤톤은 이러한 상-이론이 필요 이상으로 다수성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이론은 아우레올리가 이야기했듯이 ‘상’이 실재와 인식활동 사이의 매개물이라면, 그것들은 오히려 실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에는 방해물이 된다. 그렇기에 이는 샤톤에게 면도날로 날려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옥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런던 시기 수도원에서 거주하며, 옥캄은 분명 이러한 샤톤의 건전한 비판에 나름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29) 


2.5 옥캄의 사고-이론.


 옥캄의 보편이론의 핵심은 보편자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실재론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질료를 개별화의 원리로 내세우고, 실재론에 줄을 선다. 그리고 이후 나탈리스는 토마스의 여러 논의를 수긍하며, 양이 개별화의 원리라고 한다. 반면 1283년 파리 대학의 교수였던 리카르두스는 보편성이라 불리는 한 본질의 속성은 정신에 의해서 구성되고, 오직 그것이 사고될 때에만 본질에 부속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편자는 정신 외부에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1312년 옥스퍼드 대학의 사무처장이었고, 1310년 옥스퍼드에서 신학 석사가 되었던 하클레이는 개체화에 관한 긍정적 설명은 아예 필요 없으며,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단수자일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스콜라 철학은 후기에 이르면서 서서히 보편자의 실존을 의심하면서, 이를 제거해 간다. 적어도 이러한 흐름은 위클리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진다. 적어도 위클리프에 이르기 전까지 중세 보편문제의 중심된 자리에는 둔스 스코투스와 옥캄이 있다. 그리고 옥캄의 주된 논의는 보편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필요 없이 늘어난 존재자이며, 다수이다. 옥캄은 자신의 면도날로 이를 날라낸다.

 보편자에 관하여 옥캄은 우선 ‘상’이라 하였다. 이는 이미 논의하였듯이 아우레올리의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의 논의를 인용해보자.


인간의 이성과 동물적인 것이 소크라테스로부터 분리된 것이라면, 이는 사고됨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실적 실존 가운데 본성이 분리되는 것이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30)


 여기에서 우리가 가지는 개념은 실재하는 실재성을 가지지 않으며, 단지 지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아우레올리는 “드러난 존재(esse apparens)를 가지며, 이는 정신의 개념 혹은 객체적 인지”라고 했다.31) 스코투스주의자이면, 그 가운데 첫 유명론적 개척자로 활동한 아우레올리에게 보편자는 실존하는 자연 가운데 어떤 것이 아니며, 오직 개별자만이 그러한 것이다. 보편자는 단지 지향적 존재일 뿐이며, 사고이고, 개념이며, 그 이상의 것이 아닌 것이다. 즉, 이때 개념은 상이며, 이 상은 정신 외부의 것에 자연적 기호이다.  

 옥캄은 샤톤의 영향 가운데 ‘상’을 제거한다. 아우레올리가 이야기하는 그런 존재성, 즉 객체적 존재인 ‘상’은 실재와 인식 활동 사이의 매개물들이라고 생각될 때, 그것들은 실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32) 이러한 이유는 바로 가능한 한 단순해야한다는 경제성의 원리에 의한 것이다. 옥캄은 이러한 상을 제거하고, 사고-이론을 내세운다.


그에 관해 철학자가 이야기한 ‘영혼의 받아드림’(개념)은 사고함들이며, 이는 가능한 이론이고, 개념이 참된 정신의 질이라고 한 전제와 함께 이 일반적인 결론에서 동의되어진다.33)

    

 여기에서 사고-이론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등장한다. 그 내용은 하나의 개념은 사고함(intellectio)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서 사고-이론은 더욱 더 옥캄의 것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의견에 의하면, 정신 가운데 모든 명제, 즉 어떤 방식으로 음도 아니며, 문자도 아닌 이것은 사고함에 의하여 합성되어지며, 어떤 식으로도 사물로부터 합성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일 어떤 것이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임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면, 이 명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하여 합성되어지지 않으며,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고함에 의하여 합성되어지며, 혹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 서로 다른 사고함이 동등하게 되는 것이거나...34)


 옥캄은 정신 가운데 모든 명제가 ‘사고’에 의하여 합성되어지는 것이며, ‘사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개념은 사고함에 의하여 주어지며, 이러한 개념에 의한 명제도 사고함에 의하여 정신 가운데 구성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또 그의 ꡔ임의토론집ꡕ과 관련되어진다. 즉 “신은 그러한 상(fictum)없이 보편적 사고함을 야기할 수 있다”고 옥캄은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는 ꡔ임의토론집ꡕ 4, 35질문과 관련된다.35) 즉 상이라는 요소를 면도날로 제거하고 더욱 더 간략하게 자신의 입장을 사고-이론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제일 지향(intentio prima)과 제이 지향(intentio secunda)이 실재성 가운데 이해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상에 호소하는 것에 의하여 보전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해의 행위에 의하여 보전되어질 수 있다. 상과 같은 것에 의하여, 이해의 행위는 대상의 유사성이다. 그리고 의미하는 것일 수 있고, 영혼 외부의 것을 지칭할 수 있다. 또 이는 명제 가운데 주어 혹은 술어일 수 있다. 그리고 류 혹은 종일 수 있다.

 이로부터 제일 지향과 제이 지향은 실재적으로 하나의 다른 것으로부터 구분되어지는 것이 명확하다. 왜냐하면 제일 지향은 이해의 행위이고, 이는 기호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이 지향은 제일 지향을 의지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다른 것으로부터 구분되어진다.

 주된 논의에서처럼 이는 이로부터 제일 지향과 제이 지향은 참으로 실재적 존재자라고 이야기되어지는 것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참으로 질(qualitas)이며, 이는 지성 가운데 주체적으로 실존한다.36)


 여기에서 옥캄은 보편자와 개별자에 관한 개념은 이해의 행위, 즉 사고함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옥캄은 상-이론 없이 사고-이론으로 가능함을 본다. 상-이론에 의하면 상은 영혼 외부의 것에 관한 하나의 자연적 기호이며, 이는 실재적 존재가 아니고, 단지 영혼 가운데 있는 심상이다. 하지만 위의 글에서 옥캄은 자신의 초기 이론과 아우레올리의 견해와 달리 제일 지향이나 제이 지향은 참으로 실재적 존재자이며, 지성 가운데 주체적인 존재하는 것이며, 질(qualitas)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다른 후기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념은 영혼의 외부에 있는 사물이 아니고, 영혼 가운데 있는 그러한 객체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주체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심적 질(qualitas mentis)이다.37)


 초기와 달리 옥캄에게 상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자.


게다가, 그러한 상은 사물의 인식을 방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으로 인하여 자리잡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가정은 상이 인식도 아니고, 인식되어진 영혼 외부의 하양도 아니며, 그 양자가 함께 취해지지도 않는다. 대신, 이는 인식과 사물 사이를 중계하는 제 삼의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상, 이는 이해되어지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해되어지는 영혼 외부의 사물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가 “신은 셋이며 하나이다”라는 심적 명제를 형성할 때, 아는 신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지만, 참으로 나는 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불합리하다.38)


 옥캄은 상이 인식도 아니며, 영혼 외부의 것도 아니며, 이 양자 모두도 아니며, 오히려 이 사이의 중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계하는 것을 제거한다. 옥캄의 지지자인 오뜨르뚜르의 니콜라우스(Nicolaus of Autrecourt)에 의하면 “두 사람은 같은 사물을 보고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분명한 시선 혹은 지성을 가진다면, 그들은 사물의 동일한 측면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분명한 하양을 보지만, 다른 한 사람은 더 불분명한 하양을 본다. 하지만 이 하양은 주체적 하양 가운데 하나이다.” 객체적 존재에 의하면 여기에서 더 하양과 덜 하양이 영혼 외부의 하양이란 존재에 관한 인식으로 주어진 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영혼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며, 이 하양은 사고함의 결과로 인한 것이지, 외부의 것에 관한 하나의 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39) 그리고 옥캄 역시 상-이론은 무엇인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담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샤톤의 영향 가운데 이를 잘라낸다.


영혼의 사고함 그 자체는 영혼의 상태(passio animae, 개념)이라 불린다. 그들의 본성에 의하여, 그것들은 영혼 외부의 현실적인 것을 지칭하며, 영혼 가운데 다른 것을 지칭한다. 마치 쓰여진 것이 인습적으로 그것을 지칭하듯이 말이다.

 ...그러한 일반적이고 혼돈된 사고함에 의하여 영혼 외부의 개별자는 알려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간에 관한 혼돈된 사고함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동물 보다 하나의 인간을 이해하는 인식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으로 인하여, 우리는 당나귀가 아닌 인간에 관한 인식을 가진다.40)


 사고함에 의하여 보편자가 성립되며, 상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혼돈된 개념은 당나귀보다 안현주를 사고함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는 여타의 동물보다 인간을 사고하는 인식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란 혼돈된 개념은 한 인간을 다른 인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이에 의하여 인간은 당나귀 보다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인간에 관한 혼돈된 개념으로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사고함으로 통하여 대상에 유사성을 가지며 이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유사성이 외부 대상에 관한 기호가 된다. 즉 상이란 것 없이도 보편자의 성립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개념을 얻고 또한 사고함으로 명제가 이루어진다고 그는 보았다. 즉 그에게 논리학의 대상은 바로 이러한 주체적 존재인 것이다. 또한 옥캄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보편자를 실존을 가지지 않는 상이 아닌 영혼 가운데 지성의 사고함에 의하여 주어진 주체적 존재로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기에 옥캄을 단순한 유명론자라고 하는 것에 어려움을 제공한다. 후자의 옥캄에게 우리는 개념론자라는 해석을 부여한다. 즉 보편자는 단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영혼 가운데 주체적 존재로 실존하는 개념이란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옥캄의 입장은 초기의 유명론에서 후기의 개념론으로의 변화라고 하겠다.     

3. 다음을 기약하며...


 이제 글을 마친다. 옥캄은 독단적인 인물이 아니며, 샤톤과의 진지한 지적 고민의 결과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였다. 그는 항상 독단적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려 하였다. 초기에 상-이론에서 상-이론과 사고-이론에로의 호의적 태도는 후에 사고-이론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서서히 그는 조금씩 자신의 입장에 관하여 타인의 견해에 귀를 기울리며 고민하고 조금씩 수정해간다. 그리고 후에 그는 ꡔ임의토론집ꡕ에서 자신의 초기 이론의 주장을 완전히 철회한다. 그는 경제성의 원리를 수용하여,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유행한 상-이론에 관하여 이 상이 필요 이상으로 다수성을 만든 것이라고 샤톤의 주장에 귀를 기울리며, 경제성의 원리에 이 이론이 더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즉 이 변화의 중심에는 경제성의 원리가 놓여있는 것이다. 즉 옥캄의 진의(眞意)는 항상 경제성, 즉 필요 이상으로 다수성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던 것이고, 이 근본적 생각의 뿌리를 두고 점점 더 이를 향하여 자신의 이론을 변화시킨 것이다.

 다음의 기회에 필자는 옥캄을 중심으로 그 시기 학자들이 행하는 경제성에 관한 논의와 유명론에 관한 논의를 정리하려 한다. 즉 옥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유명론과 개념론의 논의를 정리하려 한다. 이를 통하여 14세기 존재론의 외관선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단지 그러한 작업의 베이스 캠프 정도일 것이다.       

        


1) 옥캄에게 fictum이란 허구(虛構)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에 가깝다. 이러한 것은 ‘객체적 존재’(esse obiectum)으로 사고되는 존재로 주관과 독립되어 자기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순수한 논리적 존재를 말한다. 그렇기에 이는 허구가 아니라, 오히려 ‘상’이라고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2) Boehner, Ph., "Relative date of Ockham's Commentary on the Sentences" In Collected Articles on Ockham (New York: The Franciscan Institute, 1992(2ed)), pp.99-100.


 

3) 박전규, ꡔ윌리엄 옥캄의 생애와 사상ꡕ (서울: 형설출판사, 1983), 142-143쪽. 박전규 교수는 fictum을 ‘허구’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기본적인 옥캄의 이해에 충실한 글이다.  


 

4) Courtenay, W., "Ockham, Chatton, and the London Studium" In Die Gegenwart Ockhams, ed. W. Vossenkuhl et al. (Weinhein: Acta humaniora, 1990), pp.328-329.


 

5) Ibid., p.328.


 

6) Boehner, Ph., "Relative date of Ockham's Commentary on the Sentences", p.99-103.


 

7) Courtenay, W., "The Accademic and Intellectual World of Ockham"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Ockham, ed. P.Spad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22.


 

8) Gal, G, Brawn, S., "Introdutio" In Opera philosophica I, ed. Ph.Boehne, revised. G.Gal et al. (New York: Franciscan Institute, 1974), p.55.


 

9) Courtenay, W., "The Accademic and Intellectual World of Ockham", pp.22-23.


 

10) 옥캄에 관한 생애는 우드의 견해를 따랐다. R. Wood, "Introduction" In Ockham on the Virtues (Indiana: Purdue University Press, 1997), pp.3-5.


 

11) Knysh, G., "Biographical Redifications Concerning Ockham's Avignon Period" Franciscan Studies 46 (1986), p.67.


 

12) Leff, G., Heresy in the Later Middle Ages, (New Yor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67), pp.238-252. 레프의 이 저서는 중세 후기 사상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길이 된다.


 

13) Richter, V., "In Search of the Historical Ockham: Historical Literary Remarks on the Authenticity of Ockham's Writings" Franciscan Studies 46 (1986).


 

14) Ibid., pp.96-97.


 

15) Ibid., p.97.


 

16) Maurer, A., The Philosophy of William of Ockham (Toronto: PIMS, 1999), pp.506-507; cf. Peter Aureol, Scriptum super Sententiarum I. d.3, q.14 (2 vols. New York: Franciscan Institute, 1952-1956).


 

17) Walter Burley,on Universals-Berlei super artem veterem porphirii et aristotlis", trans. P.Spade, In History of the Problem of Universals in the Middile Ages: Notes and Texts (1995) at http://pvspade.com/logic/., p.111. 


 

18) Boehner, Ph., "Relative date of Ockham's Commentary on the Sentences", p.103.


 

19) Ockham, Ordinatio I, d.2, q.8, prima redactio. 필자는 이를 다음의 현대어 번역을 따랐다. Ockham. Philosophical Writings, trans. & ed. Ph. Boehner (Indianapolis-Cambridge: Hackett Publishing Company, 1990), p.41.


 

20) A. 마우러, 「윌리엄 오컴」, ꡔ스콜라 철학에서의 개체화ꡕ, 이재룡, 이재경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3), 670쪽.


 

21) Ockham, Quaestione in libros physicorum aristotelis, q.3 (Opera Philosophica VI, p.400, 5-6).


 

22) Hamesse, J., "Problemes poses par les "Repostationes"", Franciscan Studies 46 (1986), pp.108-109; Bataillon, L.-J., "Approaches to the Study of Medieval Sermons" Leeds Studies in English, New Series 11 (1980), pp.21-22.


 

23) Walter Chatton, "Reportatio I, d.3, q.2: Whether any concept in common and univocal to God and creature"  In History of the Problem of Universals in the Middile Ages: Notes and Texts, pp.131-132.


 

24) Kuerzinger, J., Alfonsus Vargas Toletanus und seine theologische Einleituhgslehre - ein Beitrag zur Geschichte der Scholastik im 14. Jahrhundert (Muenchen: Verlag der aschendorffschen Verlagsbuchhandlung, 1930); Walter Chatton, Reportatio et Lectura super Sententitas: Collactio ad librum primum et prologus, ed. J.Wey (Toronto: PIMS, 1989).


 

25) Walter Chatton, "Reportatio I, d.3, q.2: Whether any concept in common and univocal to God and creature", p.135.


 

26) Ibid., p.138.


 

27) Walter Chatton, Reportatio et Lectura super Sententitas: Collactio ad librum primum et prologus, prol., q.1, a.1 (p.35, 525). 이후 이 저서를 collactio라고 표기할 것이다.


 

28) Ibid., prol., q.2, a.1 (p.77, 34-46). 샤톤은 캄프셀에 관한 논의에서도 자신의 원리를 대입하여 바라보고 있다. 캄프셀은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가 실재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한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다수성은 필요 없이 놓여지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캄프셀의 주장은 전혀 필여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와 같이 샤론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원리인 것이다. 즉 옥캄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샤톤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다수성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명제는 매우 중요하다.   


 

29) 샤톤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당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프란치스칸들은 옥캄과 웨어의 윌리엄(Wilhelm von Ware) 그리고 로베르트 쿠톤(Robert Cowton)에 이어서 샤톤을 영국출신 4명의 프탄치스칸을 들면서 이들은 창시자(inceptor)라고 했다. Cf., F.Ehrle, Der Sentenzenkommentar Peters von Candia (Muenster: Verlag der aschendorffschen Verlagbuchhandlung, 1925), S.82.


 

30) Petrus Aureolis, In I sent., 1, d.29, a.2. 이는 다음의 것에 재인용한 것이다. A.Stoeckl, Geschichte der Philosophie des Mittelalters 2 Bd. (Minz: Verlag von Franz Kirchheim. 1865) 이 저서에서 필자는 미처 구하지 못한 많은 원전을 읽을 수 있었다.


 

31) Ibid., 2, d.12, q.1, a.2.


 

32) A. 마우러, 「윌리엄 오컴」, ꡔ스콜라 철학에서의 개체화ꡕ, 이재룡, 이재경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3), 673쪽.


 

33) Ockham, Expositio on librum perihermenias aristotelis, l.1, prooemium, §6 (Opera Philosophica. II, p.358, 195-200).


 

34) Ibid., (Opera Philosophica II, p.357, 146-154).


 

35) Ockham, Quodlibeta IV, q.35 (Opera Theologica IX, pp.472-473).


 

36) Ockham, Quodliberal Questions vol.1, Quodlibets 1-4, trans. A.Freddoso et al.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1), Quodlibeta 4, q.35, pp.390-391.


 

37) Ockham, Quaestiones on libros physicorum aristotelis, q.3 (Opera Philosophica VI, pp.403-404, 109-111).


 

38) Ockham, Quodliberal Questions vol.1, Quodlibets 1-4, Quodlibeta 4, q.35, p.389.


 

39) Weinberg, J., Nicolaus of Aurecourt - A Study in 14th Century Thought (New York: Greenwood, 1969(2ed)), pp.211-212.


 

40) Ockham, "Expositio super librum perihermenias", In Philosophical Writing, pp.4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