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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의 헨리, 인간은 조명 없이 인식할 수 있는가?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 문제제기
겐트의 헨리(Henricus Gendavensis), 13세기의 마지막에선 철학자로 그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13세기에서 14세기로의 가교에선 스코투스(Duns Scotus)의 이해에서도 그는 중요한 점을 점유한다.1) 대표적인 예로 스코투스는 자신의 학문론 등을 다루면서 헨리를 견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사상은 그 이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른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필자는 여기에서 그의 인식에 관한 이론을 다루고자 한다. 그는 그의 ꡔ대전ꡕ에서 “신의 조명 없이 인간 존재는 어떤 것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2) 이에 관하여 브라운(J.Brown)은 그의 논문 ‘The Meaning of Notitia in Henry of Ghent’에서 정리해 나간다.3) 필자의 흥미는 바로 헨리의 겐트에게서 인간은 신적 조명이라는 상황에서 어떤 것을 알 수 있을 뿐인가 하는 것이다. 보나벤투라는 13세기 조명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조명설은 형이상학의 기본적인 진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진리란 무엇인가? 토마스와 같이 보나벤투라도 기본적으로 “사물과 지성의 일치”(adaequatio rei et intellectus)라 정의한다. 이 정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주관과 객관이 전제되어야한다. 객관인 ‘사물’이 분명히 혹은 확실히 존재해야지 주관인 ‘지성’에 일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보나벤투라는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민한 것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객관적으로 사물들은 소멸되어지는 것이며,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존재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는 진리를 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보나벤투라가 영원하며 필연적이고 확실한 존재인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는 조명설로 돌아선다.4) 하지만 동시에 토마스는 이를 거부한다. 그는 백지설(tabula rasa)을 주장하며, 경험적 인식을 긍정한다. 그리고 스코투스는 토마스 보다 더욱 더 강하게 조명설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옥캄에게로 이어져 간다. 헨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조명설에 대표적인 옹호자로 알려진다. 여기에서 필자는 헨리의 조명설이 가지는 내용과 그것의 사실 여부를 따지고자 한다.
2. 헨리의 조명설
: 일반적 이해에 준하여
철학사가들은 많은 경우 한 사람의 철학자를 두고 난도질을 한다. 사람의 키를 침대를 기준으로 잘라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사가들은 철학을 익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또한 한편으로 철학자의 진면모를 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통하여 흐린 상이나마 한 철학자의 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일반적인 철학사에서 헨리의 정의를 살펴보자.
코플스톤은 인간은 조명 없이 참된 것(verum)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의 진리(veritas)를 알 수는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헨리에게 참된 것을 안다는 것과 진리를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고 정리한다.5) 오직 진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방식에 따른 조명으로 알려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헨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절충하려 한 인물이라 코플스톤은 소개한다. 헨리는 감각을 무시하지 않는다. 인간의 지식이 감각에 의존한다는 그의 명제를 읽을 때 우리는 헨리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그는 인간의 능력만으로 참된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이론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는 감각에 의하여 혹은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지식이 참된 것을 가지게는 하지만 분명 진리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당시 시대적 흐름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를 취하면서 동시에 아우구스티누스적 요소를 주장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간단하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겐트의 헨리에 관한 상이다. 이제 간단하게 논의를 이어갈 공통된 이해의 공간을 마련한 샘이다.
3. 헨리의 notitia 개념의 난제
본격적으로 논의에 들어가기 위하여 헨리의 notitia를 정리해야한다. 헨리에서 notitia는 인지 작용(cognitive operation)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수단이다. 또한 notitia는 이해의 행위 형태가 아니라, 작용(operatio)의 영역에 속한다. 이렇게 본다면, nititia는 인지 능력의 현실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화는 인지 능력의 결함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것이 없이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notitia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으로부터 그 본성의 일부를 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notitia는 작용과 관련되는 것과 함께 2차적으로 작용의 대상과 관련되는 것이 된다.6) 그러나 이는 다음의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notitia는 작용의 대상만을 지시하는 것도 아니며, 작용하는 능력만을 지시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오직 ‘작용 그 자체’를 지시할 뿐이다. 이렇게 작용만을 의미하는 notitia는 능력의 현실화를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그 능력의 현실화, 즉 작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notitia는 인지 능력의 현실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이성(ratio)를 가지지 않은 동물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notitia를 빈번하게 지성적 인지 능력의 현실화 작용과 관련하여 이야기한다.7) 그리고 헨리는 notitia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우선 ‘전(前)-학문적 notitia’와 ‘학문적 notitia’이다. 헨리는 전-학문적 notitia에게 simplex notitia라는 이름을 준다. 그리고 학문적 notitia는 notitia declarativa라는 이름을 준다. 여기에서 전자는 참된 것(verum)을 파악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후자는 veritas의 지식을 파악하게 하는 행위이다. simplex notitia의 특성은 혼란되고 비결정적 본성이다. 이를 통하여 지성은 단지 정의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 사물을 알게 된다. 그러나 notitia declarativa는 혼란되지도 않고 비결정적이지도 않다. 이를 통하여 지성은 사물의 정의를 알게 된다. 단지 정의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 사물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8) 그리고 notitia declarativa는 simplex notitia로부터 생겨난다. 여기에서 simplex notitia는 의심할 것도 없이 인간 자신의 노력에 의한 산물이다. 이는 신의 조명에 의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위에서 살핀 일반론적 헨리의 논의를 상기해야한다. 위에서 우리는 헨리가 신의 조명 없이 인간만의 능력으로 얻는 것은 결정적이지 않다고 정의했다.9) 그렇다면 simplex notitia는 우리에게 분명하고 결정적인 파악을 주지 못한다. 오직 declarativa notitia만이 분명한 것(certa)이다. 그러면 이러한 declarativa notitia는 순수하게 인간 본성의 능력에서 기인하는가? simplex notitia는 우리에게 진리의 파악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declarativa notitia에 의하여 주어진다. 한 인간이 거짓에서 자유로운 declarativa notitia를 가진다고 가정하자. 이 notitia는 순수하게 인간 본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지 영혼의 자연적 본성을 필요로 하며, 또한 사물로부터 추상된 창조된 모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영원한 모형의 조명은 필연적이지 않다.10) 그렇다면 인간 지성은 신적 조명 없이도 진리에 대한 명확한 notitia를 가질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참된 것’을 안다는 것은 인간 지성의 본성적 능력으로 안다는 것에 근거한다. 그리고 ‘진리’를 안다는 것은 같은 인간 지성이 어떤 특별한 신적 조명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진리에 관한 지식은 신의 조명을 전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마다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참된 것과 진리 사이의 구분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11) declarativa notitia는 학문적 지식이며, 이는 진리와 관계된다. 그런데 이러한 declarativa notitia는 simplex notitia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declarativa notitia는 simplex notitia로부터 수용된 것을 추론하여 학문적 지식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신의 조명이 끼여드는 곳은 어디인가? 헨리는 분명하게 declarativa notitia이 simplex notitia를 전제한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declarativa notitia...semper supposit notitiam simplicem) 그렇다면 이를 인간의 본성적 능력의 결실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이 생에 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지식은 없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헨리는 조명의 도움 없이 어떤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명의 도움을 통하여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조명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식과 구별한다. 그리하여 그는 ‘참된 것’을 아는 것과 ‘진리’를 아는 것으로 이를 구별한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모든 감각적 사물로부터 감각의 본성적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후자는 마음의 반성적 사고 행위를 요구한다고 구별하였다. 그리고 이 후자 조명을 요구한다.12) 앎의 행위는 그에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외부의 대상의 파악이고, 다른 하나는 참 혹은 거짓과 관련되는 반성적 행위이다. 그리고 이 둘째 방식에서 조명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참 혹은 거짓은 첫 방식으로 주어진 각인된 형상과의 관계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된 것과 진리에 관한 확실한 차이는 없다. 여기에서 진리의 지식은 조명을 전제하는 것도 마다하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다. 첫 단계에서 주어진 것은 단지 개별적인 것이며, 이는 아직 참 혹은 거짓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 대상에 관한 인식이다. 이를 전제로 참 혹은 거짓을 다루는 것이 이루어진다. 이는 반성적 사고로 인한 것이다. 이는 또 학문적 지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조명도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헨리의 notitia를 단순하게 하나의 상으로 그려내는 것이 힘들단 사실이다. 헨리는 당시 유행하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무시하지 않았다. 말론(Marrone)은 하나의 상으로 잡기 힘든 헨리를 연대기적으로 분석하며 접근한다.13)
4. 연대기적 논의를 통한 접근
한 인물의 연대기적 접근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그를 만나게 한다. ꡔ대전ꡕ에 드러난 초기 헨리는 신의 도움, 즉 조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에 관한 주해가들의 영형 가운데 성립된다. 하지만 이러한 헨리는 고정된 형태의 것이 아니다.14) 즉, 헨리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론이 두 번째 시기(second phase)라고 부른 시점으로 이동한다. 여기에서 헨리에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된 자리를 점유한다. 이 시점에서 헨리는 더 이상 아우구스티누스에 메여있지 않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확립된 인식론을 수용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의 근거가 된 것은 그의 형이상학적 입장의 전환이다. 그의 초기 형이상학은 이 세계를 넘어선 혹은 초월한 플라톤의 이데아계에 메여있다. 하지만 그의 성숙과 함께 다른 형이상학적 기초를 다진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다. 이제 본질은 사고의 대상이며, 플라톤의 용어 가운데 본질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는 현실적으로 단지 마음 가운데 실재하는 것이 된다.15) 이러한 형이상학적 입장의 전환은 새로운 인식론적 기틀을 요구하게 된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헨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인 결합과 분리를 수용한다. 그리고 이를 정의의 기술(ars difinitiva)라고 한다. 이러한 두 번째 시기의 헨리는 “창조된 세계의 외부 어떤 대상과 영향과 관련되어 만들어지는 것 없이 진리와 인간적 지식에 관하여 이야기했다.”16) 하지만 헨리는 단지 여기에서 그의 지적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헤겔의 변증법과 같이 마지막 합계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가 되어진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의 언어를 이야기하며, 여전히 오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도 고수한다.17) 그는 그의 새로운 인식론적 사고 가운데 더 세속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언어 중심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을 두었다. 헨리는 그의 시기에 점점 더 대중화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방법론을 다가선다. 하지만 그는 더욱 더 종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18) 그러면 헨리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인가 아니면,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플라톤의 노선에 선 인물인가? 사실 많은 경우 그를 아우구스티누스의 노선에서 이해했다. 하지만 그에 관한 단순화는 그리 쉽지 않다. 그의 생애를 두고 변해 가는 그의 형이상학과 인식론의 논의만 보아도 알 수 있다.19)
이를 볼 때. 그는 단순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니며, 단순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도 아니다. 질송은 그의 ꡔ중세철학사ꡕ에서 “헨리가 대표하는 유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역사는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라고 한다.20) 사실일지 모른다. 그가 그 저서를 적을 때는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논의가 있다. 이미 말론과 브라운 등에 의하여 그의 인식론에 관한 논의가 수적으로 다양하게 일어났다. 질송은 아직 연구되지 않은 그를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자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는 비록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라 해도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의 지적 여정에서 다양함을 모색했다. 그리고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해를 모색했다. 그럼으로 당시 유행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학풍과 전통적 논의를 한 자리에 두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13세기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3세기의 1270년과 1277년의 단죄를 통하여 당시 학자들은 전통과 새로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피할 수 없었다. 전통을 고수하며 새로움을 즐기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헨리의 노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가져와 고민은 두 번째 시기에서 확인되어진다. 그리고 파스나우(R.Pasnau)는 이러한 헨리가 14세기 경험론적 사유의 근거를 위한 근본작업을 놓았다고 한다. 헨리는 분명하게 감각에 의하여 우리는 대상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신의 조명에 도움 없이 말이다. 그는 인간이 ‘안다’라고 하는 것은 거짓 없는 명확한 notitia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감각적 경험으로 거짓이 없는 것을 참되게 인식할 수 있다.21) 물론, 여기에서 주어지는 참된 것에 관한 지식은 진리에 관한 지식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분명히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이다. 그리고 그가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을 명확한 지식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인간의 감각은 그저 터부시되는 것만은 아니다.22) 헨리는 경험적 지식을 무시하고, 조명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기에 이르러 그는 첫 시기에 조명만을 이야기하던 시기를 벗어난다.
마지막 단계에서 헨리는 감각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와 조명에 의한 아우구스티누스를 한 자리로 불려드린다. 셋째시기 헨리에게 신은 인식의 영역의 근거이다. 왜냐하면 신 본질의 존재는 신 가운데 한 몫 하는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논의가 이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본질은 신의 마음 가운데 한 몫 함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23) 이러한 형이상학적 근거에서 이러한 신의 행위는 인지의 모든 다른 과정을 선행한다. 그리고 모든 참된 지식의 근거이며, 인지의 모든 행위를 통한 생성적 요소이다.24) 이러한 형이상학적 기틀에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조명설의 가득한 종교적 요소를 유지한다. 두 번째 시기에 가지게 된 그의 새로운 아리스토텔레스적 인식론과 함께 말이다.25) 이로 인하여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위한 방법론, 혹은 인식론으로 대상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적 용어 가운데 대상의 진리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헨리에게 본질을 안다는 것은 신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존재자의 단계에 의한 대상을 아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26) 사실 이러한 방식에 관한 가장 쉬운 방법은 조명설로 완전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이를 부분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그는 초기와 다르다. 후기에 헨리에게 조명은 단지 판타스마타(phantasmata)에서부터 마음의 기원적 지식의 새김으로 서술되어진다. 쉽게 그것은 대상 가운데 절대적 본질을 보는 수동 지성을 돕는 것이다. 즉, 헨리는 제 2의 능동 지성으로 신을 거론한다. 그것은 인간의 작용 지성의 능력을 보강하는 것이다.27) 그러나 초기에 헨리는 판타스마타에 빛을 비추는 것으로 신의 행위, 조명을 정의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후기의 헨리는 판타스마타를 직접 비추는 것이 아니라, 판타스마타에서부터 지식을 새기는 것에 도움을 주는 제 2의 능동 지성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신은 인간의 마음과 관련하여 있으며, 창조된 능동 지성이 진리를 알려고 할 때, 그 옆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5. 헨리식 조합,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스코투스의 글에서 우리는 다시 헨리를 만나게 된다.28) 스코투스에게 헨리의 주장은 타당해 보이지 않았다. 스코투스에게 헨리는 감각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은 불변하는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스코투스에게 지식은 본성 그 자체를 재현함에 의하여 생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본성이 존재한다면, 이 본성은 어떤 사물과 관련되어 불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성의 재현에서 지식이 일어난다.29) 스코투스에게 감각에 의한 개체의 인식은 인간 인식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본질이다. 그의 형이상학에 의하면 실재 가운데는 보편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보편은 지성 가운데 존재한다. 여기에서 공통본성이 등장한다. 이 공통본성은 그 자체로 보편도 개체도 아니다. 스코투스는 ꡔ질서ꡕ(Ordinatio II, d.3, q.16)에서 “본성은 그 자체로 지성 가운데 있는 것도 개체 가운데 대하여 차이가 없다”라고 한다.30) 그 본성과 다른 사물 양자가 그 자신의 모형(exempler)에 의해 불변하며, 하나되는 것으로 재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에게 추상이란 질료로부터 형상을 가져오는 일종의 비질료화이다. 하지만 스코투스에게 추상은 공통본성이 보편적 형상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개체적 형상인 이것임(haecceitas)과 분리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배경은 스코투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 모두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적 조명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식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에 앞서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선험적인 것을 강조한다.31) 그리고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때로는 대상을 그리고 때로는 능동지성을 강조한다. 진리가 신의 조명에 의하여 주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사물 가운데는 없다. 이는 플라톤스럽다. 그런데 지성 가운데 존재하는 한에서 대상은 실재적 실존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개념적 존재 혹은 지향적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다면 우리의 지성은 어떤 우유적인 것도 수용할 수 없다.32) 하지만 이것은 스코투스에게 잘못된 것이다. 스코투스는 명확하고 순수한 진리는 거짓으로부터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는 헨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33) 이렇게 스코투스는 헨리의 견해를 물리친다.
헨리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도 수용한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것도 수용한다. 그리고 그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해석되어졌다. 특히 스코투스도 그의 조명설에 비판의 무게를 두는 듯 보인다. 초기 헨리에게 조명설은 회의론을 피할 수 있는 길로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시기에 이르러 당시 유행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흐름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초기 헨리에게 조명은 회의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기에 그는 새롭게 유행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수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으로 사물에 관한 지식이 이루어짐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종국에 이르러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하나의 체계 속에 이해한다. 전통과 새로움을 조화하려 하였다. 조명론만을 이야기하는 헨리에 관한 스코투스의 비판은 초기 헨리에게 한정될 것이다.34) 분명 후기 헨리는 단지 조명론만을 주장하지 않았다. 헨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보나벤투라가 이야기하는 신플라톤적 도식의 형이상학을 수용한다. 그리고 이를 고수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방법론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둘의 조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스코투스의 비판의 핵심은 조명설을 주장하는 헨리이다. 스코투스는 헨리가 조명에 의하여 신이 인간의 지성에 직접 각인 하는 것에 반대하며, 경험적 지식을 옹호한다. 하지만 헨리가 마지막 조합을 이룬 세 번째 단계를 상기해 보자. 여기에서 신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인식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신은 하나의 조력자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능동 지성과 신의 도움으로 진리를 가진다. 단지 선험적인 조명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후기 헨리의 견해는 스코투스의 주의를 끌기 충분했다.35)
6. 헨리, 인간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가?
헨리에게 인간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인가? 특히 진리를 말이다. 더 세부적으로 물어보자. 단지 인간은 조명만으로 아는 것인가 스스로도 알 수 잇는 존재인가? 브라운은 notitia의 내용을 분석하며, 인간 스스로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면 헨리의 사상 가운데 조명과 조명이 아닌 지식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것인가? 말론은 연대기적 분석을 통하여 연대에 따라 변화하는 그의 인식론에 주목한다. 초기에 헨리는 조명설에 깊이 의존한다. 여기에서 필자의 물음은 부정적인 답을 낳는다. 하지만 두 번째 시기에 헨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에 빠진다. 여기에서 필자의 물음은 긍정적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합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필자의 물음은 어떻게 되는가? 불가능한가? 아닌가? 그 답은 매우 복잡해진다. 이제 신의 문제는 인식론의 차원을 넘어서 존재론 혹은 형이상학의 영역에 들어선다. 인간이 인식하는 대상의 본질은 신의 지성 가운데 한 몫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결국 존재론적으로 신에 의존하는 존재자일 뿐이다. 이렇게 신은 인식의 영역이 가능할 수 잇는 근거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의 인식을 돕는 조력자이다. 인간은 자신의 능동 지성으로부터 일어나는 창조된 빛에 의하여 판타스마타 가운데 보여지는 형상을 가진다. 하지만 헨리에 의하면 창조되지 않은 빛에 의하여 그 자체 가운데 보여지는 것으로서 사물의 절대적 본질을 아는 가운데 일어난다고 한다고 하고 이 두 가지 방식은 매우 같다.36) 하나이다. 이는 무슨 말인가? 여기에서 능동 지성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적 용어 가운데 이야기되는 대상의 진리를 아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헨리에 의하면 본질을 안다는 것은 신에게 존재론적으로 의존하여 드러난 존재자를 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겐트의 헨리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어떤 이는 후기에 아비첸나화 된 것이라고 한다.(Macken, Prezioso 류) 그 가운데 프레지오소(Prezioso)는 아리스토텔레스화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서 아비첸나화된 아우구스티누스로 나아간 것이라 한다. 이에 반하여 또 다른 이는 헨리는 강하게 플라톤적이고 아우구스티누스적이라 하며, 다만 주목할 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대기적 변화는 아우구스티누스적 조명설에서부터 서서히 거리는 두는 것이라고 한다.(Dwyer 류) 하여간 중요한 것은 헨리의 입장에서 단지 조명에 의한 인식만을 이야기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인식론적 논의가 연대기적으로 서서히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스스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가? 헨리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당장 신이 없다면, 대상의 존재론적 위치가 흔들린다. 그리고 신은 제 2의 능동 지성으로 진리를 인식할 때 인간의 옆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질문은 그의 연대기적 흐름에 따라 다른 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숙한 논의의 시기에 이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1) Dumont, S., 'Henry of Ghent and Duns Scotus' In Routledge History of philosophy Volume 3 - Medieval Philosophy, ed. J. Marenbon (New York: Routledge, 1998), pp.291-328.
2) Henry of Ghent, Summa quaestionum ordinariarum a.1, q.2. 이에 관한 현대어 번역은 다음의 것을 참고하였다. Henry of Ghent, 'Can We without Divine Illumination?' In The Cambridge Translations of Medieval Philosophical Texts vol. 3 Mind and Knowledge, trans. R. Pasnau,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pp.107-135,
3) Brown, J., 'The Meaning of Notitia in Henry of Ghent' In Miscellanae Medievalia 13./2 Band (Berlin-New York: Walter de Gruyter, 1981)
4) 코플스톤, ꡔ중세철학사ꡕ, 박영도 옮김 (서울: 서광사. 1988), 372-373쪽.
5) 같은 책,, 590쪽.
6) Brown, J., 'The Meaning of Notitia in Henry of Ghent', pp.992-993.
7) Ibid., p.994.
8) Ibid., pp.995-996.
9) 코플스톤, ꡔ중세철학사ꡕ, 590쪽.
10) Brown, J., 'The Meaning of Notitia in Henry of Ghent', p.996.
11) Ibid., p.998.
12) Ibid., p.997.
13) Marrone, S., Truth and Scientific Knowledge in the Thought of Henry of Ghent (Cambridge-Massachusetts: The Medieval Academy of America, 1985), Marrone, S., "Henry of Ghent" In Routle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ersion 1.0, (London: Routledge, 1998)
14) Marrone, S., Truth and Scientific Knowledge in the Thought of Henry of Ghent, p.144.
15) Ibid., p.145.
16) Ibid., p.92.
17) Ibid. p.140.
18) Ibid., p.147.
19) 헨리의 인식론에 관한 연대기적 논의와 철학적 발전 경로에 관한 논의는 다음의 논의를 참고하기 바란다. Macken, R., 'La theorie de l'illumination divine dans la philosophie d'Henri de Gand' Recherches de Theologie Ancienne et Medievale 39(1972), pp.82-112.
20) 질송, ꡔ중세철학사ꡕ, 김기찬 옮김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7), 620쪽.
21) Henry of Ghent, Summa quaestionum ordinariarum a.1, q.2.
22) Ibid. 이 본문에 관하여 우리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읽어야한다. 헨리는 명확한 notitia가 경험으로도 가능함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에 관한 지식은 아니며, 단지 참된 것에 관한 지식이라는 것을 상기해야한다.
23) Marrone, S., Truth and Scientific Knowledge in the Thought of Henry of Ghent, p.139.
24) Ibid.
25) Ibid., p.147.
26) Ibid., p.136.
27) Ibid., pp.136-137.
28) Duns Scotus, Opus oxoniense, I, dist.3, q.4. 이 저서의 현대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Duns Scotus, Phiolosophical Writings, trans. A.Walter (Indianapoli: Hackett Publishing Press, 1987), pp.96-132.
29) Duns Scotus, Phiolosophical Writings, p.115.
30) 김현태, ꡔ둔스 스코투스의 철학 사상ꡕ (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4), 89쪽.
31) Duns Scotus, Phiolosophical Writings, p.121. 이 글은 스코투스에 관한 논의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서 여기에서 이에 관한 것을 마친다. 하지만 분명하게 스코투스가 행하는 논의는 중요하고 이해가 쉽지 않다.
32) Ibid.
33) Ibid., p.120.
34) 스코투스에 의한 헨리 비판과 조명설의 관계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Brown, J., "John Duns Scotus on Henry of Ghent's arguments for divine illumination: the statement of the case" Vivarium 14(1976), pp.94-113.
35) Marrone, S., “Henry of Ghent"
36) Henry of Ghent, Quodlibet IX, ed R. Macken, (Leuven, 1981),,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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