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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수스 바르가스 톨레타누스 1탄:
14세기 신학의 학문적 성격에 관하여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 14세기로 가는 기차.
-알폰수스 바르가스 톨레누스
토마스(Thomas Aquinas) 이후 스코투스(Duns Scotus)에서 옥캄(William Ockham)에 이르기까지
13-14세기 많은 학자들은 신학의 학문적 성격에 관하여 논의하고 논쟁하였다. 과연 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까닭은 무엇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까닭은 또 무엇인가? 이를 위하여 우리는 14세기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알폰수스
바르가스 톨레타누스(Alfonsus Vargas Toletanus)의 논의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신학적 사상을 일구어 가면서
함께 지적 고민을 한 토마스에서 옥캄에 이르는 많은 논의가 그 가운데 녹아내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를 통하여 중세 철학의 무엇인가를
논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사상을 되짚어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토마스를 포함하여, 그가 고민한 문제 관하여 함께 고민한
스코투스, 옥캄, 란둘푸스 카라치오로(Landulfus Caracciolo), 마르치아의 프란치스쿠스(Franciscus de Marchia),
마이론의 프란치스쿠스(Franciscus de Mayronis), 웨어의 윌리엄(Wilhelm von Ware), 폰타인의
고트프리드(Gottfried von Fontaines), 할레의 알렉산더(Alexander von Hales), 우드헴의 아담(Adam von
Wodeham), 포르치아노의 다란두스(Durandus de S.Porcisno), 헤르베우스 나타리스(Hervaeus Natalis), 카톤의
발터(Walter von Catton), 발터 버얼리(Walter Burgleigh), 로마의 에지디우스(Aegidius von Rom),
비터비오의 야코부스(Jacobus de Viterbio), 시에나의 제레라드(Gerad von Siena), 맛사의 미카엘(Michael de
Massa), 스트라스부르그의 토마스(Thomas von Strassburg), 리미니의 그레고르(Gregor von Rimini)...등 심로
당대 지적 고민의 수많은 흔적이 그 가운데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폰수스,는 14세기 사상적 논의를 위한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 가운데 녹아들어 있는 13세기 이후 14세기에 이르는 많은 논의가 그 당시 어떻게 응용되고 이해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폰수스,는 14세기로 우리를 안내하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본 연구에서 하게 될 것이다.
알폰수스,의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하지만 그랍만(M.Grabmann)의 저서 {중세 정신적 삶}Mittelalterliches
Geistesleben을 꼼꼼히 읽은 이라면, 그 책을 읽은지 얼마지 않아 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칸디아의 페트루스(Prtrus de
Candia)와 툴레타누스 그리고 레지오의 프로스퍼(Prosper de Regio)를 거론하면서 이들을 14세기에 활동한 스콜라 철학자로 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하여 이름난 저자들을 인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폰수스, 자신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랍만의 저서에서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에게 알폰수스,는 매우 낯선 인물이다.
그의 이름도 우리에게 하나의 것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해지는 그의
이름들을 열거해 보자. Alphonsus Vargas, Aphonsus Toletansus, Aphonsus de Vargas
Toletanus, Vargas Alfonsus, Alnsuo de Toledo y Vargas, Alfonsus Hispalensis,
Alfonsus de Hispania. 이러한 이름의 상이함은 더욱 더 그의 사상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 힘들게 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퀴르칭거(J.Kuerzinger)가 정리한 그의 삶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에 관한 일상적 논의는 그쳐야만 할 것 같다. 더 이상은 필자에게
무리이기 때문이다.
알폰수스,는 대략 130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상당히 믿을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1344년에서
1345년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주해하였고, 1353년에 바다요즈(Badajoz)의 주교가 되었으며, 1354년에 오스마(Osma)로 그 자리를
옮겼다. 1361년 최상으로 세빌라(Sevilla)의 대주교의 옷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1366년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학문적 논의는 이미 13세기 이후 진행된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세 명의 위대한 권위를 감안하고 있다. 우선 "성스러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권위"이며, 이어서 "철학자"(Philosophus) 바로 그 자체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주해자"(Commentator) 그 자체였던 아베로에스(Averroe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주해자 아베로에스가 거의 같은 정도로 자주 논의 가운데 논하는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도 그러하다. 알폰수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양자는 논의 가운데 진리와 올바름의 두 가지 큰 축이다." 이렇게 알폰수스,는 중세,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입 이후 진행된 "철학자"와
"주해자"에 관한 논의를 자기 가운데 수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토대로 스스로의 입장을 정립하며, 당대의 여러 논의들 사이 자신의 자리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다.
2. 알폰수스,의 신학에 다가섬.
이제 논의는 그의 외부적 삶에서 그의 내부적 삶으로 돌아선다. 그에게 신학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 스스로 신학자인 그에게 신학은 학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인가? 혹은 신학의 대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제 그를 둘러싼 외부적 삶에서 수 많은 사상을 고민하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그의 내부적 삶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신학에 다가섬'으로 가능할 것이다. 당시 신학 혹은 철학에서 고민한 사상가의 '근본적 분위기'(Grundstimmung)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을 설명함에 있다. 여기에서 서로 다른 두 영역은 '인간적 앎과 계시(Offenbarung)', '철학과 신학', '지식과 신앙' 등이다. 이 사이에서 신학은 학문인가(Ist die Theologie eine Wissenschaft?)라는 문제는 근본적인 물음이 된다. 이러한 것과 함께 신학의 대상에 관한 논의도 중요한 것이 된다. 이러한 것은 특히 14세기 이후 신학을 특징화 짓는 물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에게 신학은 하나의 학문이며, 그 가운데도 사변적 학문이다. 이와 다르게, 둔스 스코투스는 신학을 수학이나 기하학이 학문인 바와 같이 그렇게 학문일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이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학문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있어서 학문일 뿐이다. 왜냐하면 신학에 있어서 대상은 그것이 확실하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와 부활을 다루는 신학은 필연적인 진리를 취급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분명 그 자체로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이 학문인 것이다. 어떤 이가 기하학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드린다면, 기하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이지만, 그것은 그 사람에게 학문이 아니라, 믿음의 한 대상인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신 그 자체를 다루는 신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학문은 아니지만, 그 자체에 있어서 하나의 학문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토마스에 비하여 스코투스는 보다 이성과 신앙을 구분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보장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의 흐름은 옥캄에게로 이어진다. 옥캄은 스코투스를 따라서 그 자체로의 신학과 우리 가운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신학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논의들이 토마스 이후 서구 철학과 신학 사이에 주된 논의 대상이 된다. 필자는 이 당시 이에 관한 그들의 고민을 알폰수스,의 중재를 통하여 소개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학이 학문인가에 관한 논의와 함께 짝을 이루는 신학의 대상에 관한 논의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토마스에게 신학의 대상이자 주체는 우선적으로 신(神)이다. 그리고 신학은 계시의 증명 없이 이성을 통한 논술의 방식을 채택하기도 하며, 어떤 것을 인정하는 이들이 더불어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하여 토론하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을 논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둔스 스코투스는 신앙 혹은 믿음의 대상과 인간 지성의 대상을 구분하고, 그에 의하여 신학과 철학을 분리하였다. 간단하게 믿음의 대상은 초자연적인 것이며, 지성의 대상은 자연적인 것이다. 인간 지성은 신학의 명제에 관하여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하며, 이미 위에서 논했듯이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자명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명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이미 신학의 대상과 그에 관한 세부적 논의는 토마스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폰수스,는 어디에 서있었던 것인가? 이러한 14세기 철학과 신학의 문제를 필자는 알폰수스를 통하여 중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신학의 학문성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신학은 학문인가이고, 둘째는 신학의 대상에 관한 논의이다. 그 가운데 이 자리에선 전자를 다룰 것이고, 후자는 다음의 기회를 도모할 것이다.
2.1 신학은 학문인가?
2.1.1 알폰수스의 인지(notitia) 개념에 관하여
학문(scientia)이란, 명확한 인지(notitia evidens)에 관한 논의와 무관할 수 없다. 그것은 학문이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확실성과 명확성이 확보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폰수스,는 명확한 지식의 개념 가운데 네 가지 인식 형태를
요약하였다. 그것은 직관적 인지(notitia intuitiva), 추상적 인지(notitia abstractiva) 그리고 초직관적
인지(notitia superintuitiva), 추리적 혹은 추론적 인지(notitia discursiva sive deductiva)이다.
첫째, 직관적 인지는 하나의 확실한 인지(cignitio facialis)이며, 대상의 현실적 실존의 근거에서 대상에 대한
직접적 수용(eine unmittelbare Aufnahme)이기도 하다. 알폰수스는 이 논의를 계속 이어간다. 그러면 신은 직관적으로
영원으로부터 피조물을 못한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현실성 가운데 항상 영원히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관적 인지는 가장 완전한 것은
아니며, 그 이유는 영원한 신의 인식이 가장 완전한 까닭에서 그렇다. 알폰수스는 직관적 인식을 위하여 인식되어지는 대상의 현실성과 실재성을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페트루스 아우레오루스(Pretrus Aureolus)의 견해를 논박한다. 그는 대상이 현실적으로 놓여져 있지 않아도
직관적 인지의 가능함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아우레오루스의 견해는 옥캄에서도 그러하다. 알폰수스는 이러한 아우레오루스와 옥캄의 논의에 대하여 다른
입장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이는 참된 인식이 아니라, 우롱된 예들에 의한 것이며, 오히려 이는 내감 가운데 일어난 기만(欺瞞)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옥캄과 같은 이는 신의 절대적 전능(absoluta potentia)로 인하여 대상이라는 것
없이 신이 직접 직관적 인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관하여 그렇게 주어진 것은 결국 기만당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직관적
인지는 대상의 실재가 보증되어야 한다는 것이 알폰수스와 같은 이들의 논리인 것이다.
둘째,
추상적 인지는 대상의 파악(Erfassen)이다. 이는 대상이 현실적으로 주어졌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을 통하여 부재(不在) 하는 사물의 무엇임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폰수스에 의하면 추상적 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진다.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는 동일한 관점에서 동일한 대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것을 인식한 것이 단지 그것의 본질을 대한
것일 뿐 아니라, 그 대상의 실존에 대하여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도 마찬가지로 신에 있어서도 영원으로부터 피조물을 추상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두 인지는 각기 서로 것은 단지 그 대상에서 그런 것일 뿐이며, 절대적으로 차이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폰수스는 직접적으로 스코투스의 제자인 란둘푸스에 도전한다. 란둘푸스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세운다. 이 양자의
인지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명제집 주해}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인지들이 다르게 다르고, 5가지 결론에 의하여 다르다. 첫째는 이 두 가지 인지는 형식적 대상(obiecta formalia)의 측면에서 다르다... 둘째 결론은 그것이 특별하게... 다르다. 셋째 결론은 드러나는 것(representatum)의 측면에서 다르다. 넷째 결론은 복합된 것과 복합되지 않은 것에 측면에서 다르며, 다섯째로 그것은 내포된 것(connotata)의 측면에서 다르다.
여기에서 란둘푸스는 분명하게 다섯 가지 이유에서 다르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관하여 알폰수스는 어떻게 논박해 가는가?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자.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는 대상에 의하여 구별되어지지 않으며, 대상되어지는 것 가운데 지향의 방식에 따라서 구별되어진다.
논박의 핵심은 이것이다. 란둘푸스는 두 인지의 대상에 의하여 구별되지만, 알폰수스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같은 대상, 즉 동일한 대상을 두고 일어나는 대상되어지는 것을 향한 지향의 방식에 따른 차이란 것이다. 다시 논의는 스코투스의 또 다른 제자인 마이론의 프란치스쿠스에게로 이어진다. 마이론의 프란치스쿠스이 행한 {명제론 주해}는 매우 흥미 있는 논의가 녹아 있으며, 그는 항상 스코투스를 머리 속에 염두(念頭)해 두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저서 여기 저기에서 스코투스를 논의하고 있으며, 그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에 관한 논의에서도 자신의 스승인 스코투스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고, 다음의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직관적 인지는 탁월하게 인접한 그 (사물) 자체 가운데 혹은 드러나는 것 가운데 사물에 대한 것이다.; 추상적 인지는 대상이 탁월하게 인접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 가운데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스코투스의 견해에 관하여 잠시 살펴보자. 그에게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는 서로 구별된다. 전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에 관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현실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에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추상적 인식은 존재하지 않은 것에 관한 인식이 아니라, 그것이 직관에 의하여 들어온 것에 관한 인식이다. 즉 그것의 존재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에 중심이 놓여지는 것이다. 이를 마이론의 프란치스쿠스가 위의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한 비판 가운데 스코투스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차이를 가진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직관적 (인지)는 실존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실존하는 것에 관한 것이며, 혹은 대상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천사와 같이 자신의 본질을 바라보며, 혹은 드러나는 것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신은 자신의 모형(per exemplaria)을 통하여 피조물을 바라본다.
이어서 추상적 인지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자.
추상적 인지는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것에서 자신의 대상을 추상하는 것이며... 혹은 드러나는 것을 통하여 일어난다. 마치 삼각형의 종을 통하여 삼각형이 인식되어지듯이 혹은 드러남 없이 ...
여기에서 마이론의 프란치스쿠스는 이 두 인지를 본질적으로(wesentlich) 다른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인지의 차이가 대상의 인식에 대한 방식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알폰수스에 의하여 그렇게 강하게 표현되어나는 것처럼 그러한 것이 아니는
말이다.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에 관한 논의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로 옥캄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옥캄에
의하면, 양자의 인지 사이에 일어나는 차이는 서로 다른 대상 혹은 원인으로 설명되어 질 수 없다. 그에게 형식적 동기에 의하여 어떤 차이가
이야기될 수는 없다. 이에 의하면, 직관적 인지에 의하여 그 대상의 현실적 실존에 관한 것이 주어지고, 추상적 인지에 의하여, 무엇임을
파악한다. 하지만 옥캄은 대상의 실존 없이도 신의 절대적 전능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직관적 인지가 주어질 수 있다고 한다. 알폰수스와 달리
말이다. 그리고 옥캄은 추상적 인지가 없이도 사물의 실존 혹은 존재 여부에 관한 인지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폰수스는 이미 추상적
인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직관적 인지가 가능해야만 하고, 그것은 대상의 실존이 주어질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많은 경우에서
알폰수스와 옥캄은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옥캄의 논의는 로딩톤의 요하네스(Johannes von Rodington)의 견해와
유사하다. 그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할 때 말이다.
모든 추상적 인지는 동일하게 더해진 다른 것이 아닌 것처럼, 사물의 단순한 인지이다. '인간'이라는 이 소리가 완결되어지듯이,
즉시(statim) 동일한 것이 어딘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혹은 동일한 것이 실존하는지 실존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 없이 소리의
의미체(significatum)는 이해되어진다... 직관적 인지는 더해짐과 함께 하는 어떤 것이며..... 예컨대 만일 더 완전한 인지 그리고
덜 완전한 인지가 아니라면, 직관적 인지는 추상적 인지로부터 구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완전한 인지는 그를 통하여 나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불완전한 인지는 그를 통하여 나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여기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여기에서 직관적 인지는 사물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인지를 부여한다. 그리고 실재하지 않아도, 그 대상이 실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신에 의하여 직관적 인지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추상적 인지는 이와 다르다. 그것은 그것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도, '인간'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의미체를 즉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위에서 옥캄이 양자 사이에
차이가 단지 형식적인 동기에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에 맞서서 알폰수스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 사이에 차이는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지향의 방식 가운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에 관한 이해 내용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초직관적 인지는 무엇인가? 알폰수스는 이 초직관적 인지를 가장 완전한 인지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은 영원한 신의 인지이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 영원으로부터 사물을 신적 말씀 가운데 인식할 수 있는 인지가 바로 초직관적
인지이다.
넷째, 추리적 혹은 추론적 인지는 무엇인가? 추리적 인지를 두고 알폰수스는 고유한 의미에서(im
eigentlichen Sinne)에서 학문적 학문(scientifica scientia, Wissen)이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직관적
인지, 추상적 인지, 초직관적 인지로부터 나온 것으로, 말 그대도 추론되고 추리된 그러한 인지이기 때문이다.
2.1.2
신학적 진리의 가능성 문제
이제 신학은 학문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할 첫 재료를 겨우 마련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하다. 신학이라는 인식 체계는 하나의 학문으로서 어떻게 진리를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의 방법론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위하여 알폰수스는 {명제집 주해}(Sentenzenkomemnentar)에서 네 가지 결론을 제시하면서 이 문제에 다가가려 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 논의한 네 가지 인지에 관한 논의를 결코 잊지 말라는 것이다.
1. 결론: 그 고유한 개념에 의하여 신성의 추상적 인지는 전달자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모순의 함축에 따라서 전달되어지지 않는다.(q.1, a.2,; fol.12vII)
이러한 명제는 슈트라스부르그의 토마스(Thomas von Strassburg)에 의하여 거의 단어 그대로 찾아진다. 그러면 여기에서 슈트라스부르그의 토마스가 이야기하는 것을 제시해 바자면, "신의 본질의 완전한 추상적 인지는 전달자에게도 다른 어떤 이에게도 전달되어질 수 없다"이다. 이러한 것을 드러내면서, 알폰수스는 신성의 추상적 인지의 가능성에 대한 증명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의 저 밑에는 스코투스적 논의가 놓여있다. 스코투스적 논의는 슈트라스부르그의 토마스의 논의와 유사한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알폰수스는 그와 다른 입장들을 두고 함께 지적 고민을 하였다. 그 가운데 우리는 다시 란둘푸스를 만나게 된다. 알폰수스는 슈트라스부르그의 토마스와 스코투스적 근본 입장에서 란둘푸스의 견해를 고려하기 시작한다. 그를 위해서 알폰수스는 란둘푸스의 {명제집 주해}으로부터 거의문자 그대로(fast wortgetreu) 인용해 온다. 란둘푸스는 "신은 자신의 본질을 전달자에게 직관적 인지와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 사이의 간접적 인지를(notitiam mediam)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란둘푸스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와 함께 다른 세 번째 인지를 주장했다. 이와 함께 로딩톤의 요하네스(Johannes von Rodington)의 논의를 두고 알폰수스는 고민을 계속한다. 로딩톤의 요하네스는 신학적 진리의 추상적 인지 가능성을 수용했다. 하지만 알폰수스는 이미 위의 결론 1에서 밝혀졌듯이, 그는 신의 추상적 인지의 불가능성을 주장하였다.
2. 결론: 절대적 전능으로 신성의 직관적 인지는 전달자에게 전달되어질 수 있다.(q.1, a.2; fol. 13rl)
이 역시도 슈트라스부르그의 토마스에게서 거의 단어 그대로 찾을 수 있는 구문이다. 이 내용은 신적 본질의 직관적 인지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비의 사건과 계시 가운데 놓여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알폰수스는 신의 본질에 관한 직관적 봄 혹은 직관적 인지(notitia intuitiva deitatis)의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퀴르징거는 1277년의 단죄 36번째 명제를 가져온다. 그것은 "사멸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신을 본질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이 세상에서 직관적 인지로 신성을 수용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신의 본질 혹은 무엇임에 관한 완전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절대적 전능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서 1277년의 단죄를 비껴가고 있다. 여기에서 알폰수스는 신성의 직관적 인지는 가능하며, 이와 함께 충만한 행복이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3. 결론: 절대적 전능으로 신학의 진리에 대한 명확한 추론적 인지는 전달되어 질 수 있다.(q.1, a.2; fol. 13rll)
추론적 인지, 이는 이미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다른 인식으로부터 이성을 통하여 주어지는 인식이며, 이를 통하여 알폰수스는 결론 3에서 신학적 진리의 가능성을 타진(打診)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폰수스는 또 다른 논의에 선 인물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인 맛사의 미카엘을 등장시킨다. 맛사의 미카엘과 함께 하는 고민은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면 알폰수스가 이야기하는 맛사의 미카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자.
신은 모든 이성적 창조물을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알려지는 것으로부터 연역되지도 않고, 그 자체로 알려지는 것으로 보여지지도 않는다.(q.1, a.3./4.; fol. 13vl)
이는 분명 알폰수스와 다르다. 신(神), 즉 신학적 근본 개념의 직관적 인지와 신학의 제일 주제를 가지는 이는 모든 신학적 진리로부터 추론적으로 혹은 연역적으로 명확한 지식이 유도되어질 수 있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맛사의 미카엘과 같은 이들은 신학에서 명확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알폰수스와 같은 이들에 의하면, 역역적 인지는 직관적 인지에 의하여 매달려 있다. 지상의 인간은 직관적으로 봄 혹은 경험할 수 있는 신학적 진리의 명확한 추론적 인지의 획득에 만족한다. 그렇기에 그는 위의 결론 3에서 이야기하듯이 추론적 인지에 관하여 정의하는 것이다.
4. 결론: 절대적 전능으로 전달자에게 가능한 신학의 진리에 대한 그러한 방식의 추론적 인지는 고유하게 불리는 학문이다.(q.1, a.2; fol. 13vll)
여기에서 우리는 드디어 기다리던 말, '학문'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위에서 필자는 추론적 논의가 학문의 형태를 갖게 되는
인지라는 말을 추론적 인지를 다루면서 제시하였다. 추론적 인지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에서 추론되어진 인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인지는
학문이 된다. 위에서 알폰수스는 직관적 인지가 신성을 우리에게 전해주며, 이는 추론적 인지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와서야 알폰수스는
이렇게 이루어진 추론적 인지가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이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알폰수스의 논의는 옥캄의 논의와 함께 다루어짐으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옥캄에게 있어서와 같이 대부분 13-14세기 중세 학문론의 중요한 문제는 "utrum theologia sit
scieintia"라는 문구로 정립된다. 즉, 신학의 학문적 성격에 관한 물음(Frage nach der Wissenschaftlichkeit
der Theologie)이었다. 그리고 옥캄의 저서에서 우리는 이러한 물음이 다시 다음과 같이 환원되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전달자(인간)의 이해됨이 신학적 진리에 관한 명확한 인지를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근본적으로 옥캄은 신앙에 의한 신학과 이성에 의한 철학을 구분한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신학은 철학 없이 가능하고, 철학도
신학 없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학문은 수학을 제외하고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논증되는 것이라 한다. 옥캄은 {자연학
주해}(Expositio super physicam aristotelis)와 {명제집 주해} 그리고 {임의토론집} 등에서 학문 혹은 철학과
신학의 문제를 다룬다. 옥캄은 {임의토론집}에서 "(학문은) 자연적으로 대상의 경험을 요구하는 직관적 인지를 통하여 수용되어진다"고 한다.
여기에서 참다운 인식은 직관적 인지, 즉 직접적 경험에서 유출되며, 여기에서 학문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인지와 관계되는 다양성의
집합을 통하여," 즉 다양한 직접적 경험의 집합을 통하여 학문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부터 자명한 혹은 경험을
통한 원리로부터 결론을 연역하는 모든 인지는 검증적이다"라고 한다. 여기에서 학문은 검증적 학문(scientia demonstrativa)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신학은 여기에서 학문인가? 옥캄주의자들의 기본명제는 고유한 의미에서 지식 혹은 이성에 의해 파악되어질 수 있는
신에 관한 명제는 없다고 하며, 옥캄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명제론 주해}에서 신의 본질에 관한 어떠한 명제도 참으로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신에 관한 명제에 관하여 그것은 전혀 의심스러울 수 없는 명제라고 한다. 신앙에 의하여 주어지는
신학의 명제, 즉 신의 본질에 관한 명제는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또한 의심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알폰수스가 이야기한 위의 결론 4를 잊지 말아야한다. 거기에서 그는 신학은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추론적 인지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했다. 알폰수스를 따라서 이 문제를 더욱 더 잘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각한
철학(학문)과 신학에 관계에 관한 논의를 추가해야한다. 즉, 그에게 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학문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2. 신학의 학문성에 관한 물음
신학과 학문(Theologie und Wissenschaft)를 다루기 위해 알폰수스는 신학과 학문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그리고 필자가 노리는 것도 그것이다. 다시 "추리적 혹은 추론적 인지"를 되새겨 보자. 알폰수스는 이렇게 논한다.
오직(sola) 추리적 혹은 추론적 인지만이 분명하게 학문적으로 학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연역적 인지로부터 추리의 근거를 통한 모든 인지는 차이로부터 자리를 통한 추론적 혹은 추리적이다.
여기에서 추리적 혹은 추론적 인지는 "추론의 근거를 통한 근원들의 인식으로부터 귀결된 인지" 혹은 "다른 인지로부터 근거의 추론을 통한 연역된 인지"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진 인지만이 분명한 의미에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또 필자는 위에서 이야기한 결론 4의 내용을 다시 돌아가 보고자 한다. 그 내용은 '추론적 인지'에 의하여 절대적 전능에 의한 신학의 진리가 우리에게 학문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은 단지 명확성이며, 이와 함께 우리는 신앙적 진리의 수용에 의하여 전제로부터 정해진 결론이 이끌어진다." 그렇기에 신을 통한 계시는 신학의 중요한 실재적 원리(wirkprinzip)이다. 신의 본성에 관하여 우리는 추상적 인지는 아니지만, 직관적 인지로 인하여 다가갈 수 있으며,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일 수 있는 추론적 인지는 신에 관한 직관적 인지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파울루스는 직관적으로 '그리스도가 신이다'라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는 봄(visio)을 통하여 그가 본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며, 그는 그로 인하여 이성으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렇게 신학은 위에서 이야기하였듯이 학문이 되는 것이다.
2.3 '14세기로 가는 기차'에서 내리면서.
위에서 필자는 14세기로 가는 기차 혹은 타임머신으로 알폰수스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맞추어 당시 사상계에 문제가
되어온 신학의 학문성에 관하여 다루어 보았다. 그러면서 인식론의 문제를 거쳐서 신학이 학문으로 어떻게 가능한가는 알폰수스의 눈에서 살펴보았다.
알폰수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 예를 들어 마르치아의 프란치스쿠스와 같은 이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그러면서 그러한 논의와
대결하며 스스로의 논리를 구성해갔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논리를 따라가 보았다.
알폰수스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에서
옥캄과 그의 추종자와 대결지점에 선다. 옥캄은 대상의 실존 없이 직관적 인지가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알폰수스는 그러한 것이 단지 기만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옥캄은 신학이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을 회의하였다. 신학의 문제가 인간에게 경험적 혹은 추론적 인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러한 것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의는 신학의 학문성에 관한 회의를 야기하였다. 그리고 알폰수스는
그의 저서에서 당시 이러한 회의에 관하여 고민하였다. 그러면서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신학을 학문으로 주장하는 것에도
그는 회의하였다. 그는 옥캄도 토마스도 아니면서 자신의 자리를 고민해야했다. 그러한 그는 신의 직관적 인지를 통하여 신학적 진리의 특별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신을 통한 계시는 신학과 신앙의 주된 원리이다. 그런데 신의 의지 동인은 여기에서 신학적 진리의 수용을 위한
근거가 된다. 신앙은 알폰수스에게 순수한 의미작용과 관련된다. 하지만, 자유롭게 동기 없는 자유재량은 아니다. 의지를 움직이는 것은 신의 계시의
권위이다. 이렇게 된다면, 과연 여기에서 기인하는 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학문일 수 있는가? 신앙의 진리의 변호 혹은 설명은 단지
견해(opinio)의 참된 드러남의 척도를 가진다. 그리고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의 자리를 가지지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의 자리도
없다. 그런데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적이라고 함은 단지 명확함 혹은 확실성(die Evidenz)이며, 그것으로써 우리는 신앙의 진리의 수용을
통하여 전제에서 정해진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하여 알폰수스는 추론적 인지로 인하여 신의 절대적 전능에 의한 신학을 고유한 의미에서
학문이 되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에게 신앙의 진리의 수용을 통하여 추론적 인지가 신학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직 필자는
이야기하는 일보(一步)에 지나지 않는다. 알폰수스가 이야기하는 여러 다양한 이들의 견해와 그러한 견해와 대결하고 고민하는 알폰수스를 드러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약속하고 논의는 두 번째 여행을 기약하며 잠시 휴식을 위한 쉼을 가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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