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문법의 전개와 이해
: 의미양상론(de modis significandi) 문헌 이해의 첫걸음1)
1. 성립과 전개.
사변문법(Grammatica speculativa), 필자가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미 1915년 하이데거가 그 중요성과 흥미 있음을 소개한 의미양상론에 대한 문헌과 그 이해이다.2) 물론 여기에서 개진되는 것은 아주 입문적인 차원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언어철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리해 본다. 중세 사변문법의 논리적 분석은 13세기에 일어난 프리스키아누스의 주해에서 시작된다.3) 그리고 이렇게 전개된 사변문법에 관한 흐름은 de modis significandi란 이름을 가진 다양한 저서들로 역사 속에 남겨졌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를 위하여 필자가 다루어야할 이름을 엄청나게 많다. Roger Bacon, Thomas von Erfurt, Siger von Courtrai, Michael de Marbasis, Joannes Josse de Marvilla, Martinus von Dacia, Joannes von Dacia, Boetius von Dacia, Johannes Avicula de Lotharingia, Mathaeus de Bononia, Thomas Occan, Echardus Knab de Zwiefalten...등 이외에 다양한 수사본들이 있다.4) 그러면 중세에 논의들로 들어서기 전에 프리스키아누스의 영향력과 그 논의를 정리해보자. 6세기 초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에서 프리스키아누스는 ꡔ문법학의 원칙ꡕ(Institutiones grammaticae)을 저술했다. 그것은 18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고대로부터 그 날짜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라틴어 문법책이며, 후기 라틴어 문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2-7권은 명사(nomen), 8-10권은 동사(verbum), 11권은 분사(participium) 그리고 12-13권은 대명사(pronomen), 14권은 전치사(praepositio), 15권은 형용사(adverbium)와 감탄사(interiectio), 16권은 접속사(coniunctio)를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두 권은 따로 ꡔ구조에 관하여ꡕ(de constructionibus)라고 불린다. 여기에서 17권은 대명사의 구조를 다루고 18권은 명사와 동사의 구조를 다룬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구조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ꡔ구조에 관하여ꡕ는 중세 구문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5) 이러한 ꡔ문법학의 원칙ꡕ은 중세 알퀸(795-802년)의 시기에 가르쳐졌으나, 아직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고 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9세기와 10세기에 상당수의 수사본에서 ꡔ문법학의 원칙ꡕ의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프리스키아누스가 이 시기에 문법학의 장에서 주류에 서게 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도나투스(Donatus)란 문법학자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서지만 말이다.6) 11세기 문법학의 발전과 논리학의 융성에서도 프리스키아누스의 위치를 무시하기 힘들다. 그것은 기실 논리학과 문법학은 유사한 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두 영역의 상호 개입에서 프리스키아누스의 ꡔ문법학의 원칙ꡕ은 중세 언어이론 혹은 언어학의 몇몇 중요한 개념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suppositio와 relatio이다. 그리고 추론과 관계하여 접속사인 si와 nisi가 그러한 것이다.7) 이러한 ꡔ문법학의 원칙ꡕ의 영향력은 헬리아스(Peter Helias)의 ꡔ프리스키아누스에 관한 대전ꡕ(Summa super priscianum, 1150년)을 낳았고,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8) 그리고 여기에서 보다 분명하게 그 영향력을 확인하고 넘어가자. 12세기 중세 학자들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같은 현상의 상이한 이름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우유가 그러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hepomenon과 sumbebekos는 라틴어로 accidens를 의미하였다. 이러한 같은 현상에 관한 상이한 이름에 관한 논의는 언어의 본질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혹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와 우유를 가져와 이야기한다. 언어에서 실체와 우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유는 변화하지만 실체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중세 논리학자들은 누구나 발화언어와 사고 그리고 실재성의 관계에 관한 의미론적 고민에서 보에티우스의 번역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ꡔ명제론ꡕ을 문제삼았다. 그리고 이에 관한 보에티우스 자신의 주해에 따르면, 발화언어는 개념(intellectus)을 의미하며, 이차적으로는 실재성 가운데 사물을 의미한다. 또한 발화언어와 개념 사이의 관계를 보에티우스는 ‘의미’(significatio)라고 하고, 개념과 실재성 가운데 사물을 ‘유사성’(similitudo)라고 하였다. 이렇게 된다면, 발화언어는 개념을 의미하고, 개념은 이에 상응하는 실재성 가운데 사물의 유사성이다.9) 그리고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보에티우스의 노선에서 언어는 그 가운데 모든 인간의 공통으로 가지는 구조가 있다고 보았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존재론에서 우유와 실체가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보에티우스에 의하여 다시 형성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근본적으로 consignificatio(합의미)에 대한 논의에서 드러난다.10) 이는 고유한 ‘의미’에 어떤 것의 더해짐을 의미한다. 즉, "의미"를 가지는 것에 연결될 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11) 그러한 뜻에서 이러한 것은 고유한 의미에서 일차적이지 않고, 이차적으로 문법적이다. 이러한 consignificatio는 copura와 prepositio 등과 같은 것이다.12)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사가 시제의 합의미(consignificatio)를 가짐으로 명사로부터 구분된다고 했다.13) 이와 관련된 시제나 태 그리고 인칭은 우유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명사들과 함께 있음으로 의미되는 것이기에 이에 관한 논의를 ‘우유적 의미의 양상’(mudus significandi accidentalis)이라고도 한다.14) 이러한 사고에는 역으로 ‘본질적 의미의 양상’(modus significandi essentialis)을 가지는데, 이것이 ‘의미 양상’이다.15) 그리고 많은 중세 학자들에 따르면, 프리스키아누스도 이와 맥을 같이 하여 언어에서 우유는 원천적인 의미에 더해지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보았다.16) 이를 현대 연구가는 ‘문법적 플라톤주의’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의 노선은 프리스키아누스의 노선이 만나게 된다.17)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의미의 동일성’이다.18) 이러한 이론에 의하면, albedo, albus, albeo, albesco, albeus, albe와 같은 것은 모두 같은 원천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단지 의미의 방식 혹은 양상의 차이를 달리할 뿐이다.19) 여기에서 ‘의미 양상론’이 등장한다. 또한 이러한 사변문법은 보편문법으로 12세기 후반에 이어진다. 왜냐하면 문법학은 사변학 가운데 하나이며, 이러한 사변학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진 표준을 다룬다. 그렇기에 문법학은 사변학과 같이 보편적인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위에서 이야기한 문법학이 ‘의미의 동일성’, 즉 모든 언어의 동일한 것을 다룬다는 것을 지지하였다. 사변학은 단일성을 가지며, 이 단일성은 그 주제의 단일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는 보편적인 것이며, 그렇기에 보편적인 것이 주제가 되어야한다. 이러한 사고에 근거하여 문법학은 모든 언어에 보편적인 의미의 동일성을 다루는 사변학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선과 프리스키아누스의 노선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20)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많은 문법학자들은 프리스키아누스를 따랐다. 그러나 13세기의 중엽에 이르면 이러한 흐름도 사라진다. 예를 들어 로저 베이컨(Roger Bacon)과 같은 이는 프리스키아누스의 입장에 반대했다. 13세기 초반의 문법학자들의 근거는 12세기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다. 그런데 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이 자연학에 의존하는 골격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페러다임의 전환이 프리스키아누스에 관한 주해에 관한 입장을 변화시켰다. 격지배(regimen)와 같은 것이 이론적 논의의 주가 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는 종속(dependentia)과 한정(determonatio)의 개념이 들어선다. 그것은 자연학의 개념인 운동(motus)과 쉼(quies)에 기인하는 것이다.21) 이러한 페러다임의 변화뿐 아니라, 철학과 신학의 충돌이 새로운 영향으로 등장했다. 13세기 말에 몇몇 교수들은 프리스키아누스의 ꡔ문법학의 원칙ꡕ 17권로 인한 신학적 난제로 인하여 단죄를 요청했다.22) 이러한 다양한 시대적 변화는 새로운 해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양상론자들, 즉 의미의 양상을 다루는 문법학자들, 예를 들어 다치아의 마르틴(Martin of Dacia)와 다치아의 보에티우스 그리고 에어푸르트의 토마스와 같은 13세기와 14세기 학자들은 언어 가운데 본질적으로 차이를 가지지 않은 적은 논의한다. 마치 로저 베이컨이 문법학의 실체적 대상은 “모든 언어에 있어서 단일한 형태”라고 하였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은 각각의 언어가 가지는 차이를 단지 우연적인 것 혹은 우유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23)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문법학은 12세기 이루어진 헬리아스와 스페인의 페터(Peter of Spain) 그리고 가르란드의 요한(John of Garland)에 의한 논리학과 문법학의 종합에서 기인하며,24) 이러한 것이 13세기 일어난 프리스키아누스의 주해작업에서 일어난 것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에게서 우리는 문법학과 논리학의 혼돈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분명하게 헬리아스와 같은 이는 분명하게 이 둘을 구분한다. 이는 프리스키아누스의 주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25) 이상으로 필자는 두서(頭序)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해 보았다. 그러면 다음으로 논의를 넘어가 보자.
2. 13-14세기 다양한 문헌과 저자들의 논의.
2.1 다양한 문헌과 저자들에 관한 소묘.
여기에서 필자는 겨우 이름 몇몇을 소개하고 그 저서의 이름을 살펴보려 한다. 그럼으로 한편 필자에게 낮선 사변문법을 다룬 학자들에 보다 익숙해지려 한다. 이미 논의한 대로 사변문법과 의미양상론은 프리스키아누스의 ꡔ문법학의 원칙ꡕ들에 관한 주해와 이해에서 시작된다. 이에 관한 간단한 논의는 이미 앞선 논의의 것으로 대신한다. 이미 논의한 대로 12세기 헬리아스는 대전(Summa)의 형식의 개척자로 ꡔ프리스키아누스에 관한 대전ꡕ을 적었다.26) 그 이후 13세기에 이르러 베이컨은 의미양상론에 관한 것으로 ꡔ문법학대전ꡕ을 적었다. 이후 중요한 것은 에어푸르트의 토마스의 ꡔ의미양상에 관한 논고ꡕ(Tractatus de modis significandi)이다.27) 이 작품과 시간적으로 인접한 것으로는 시제(Siger von Courtrai)의 ꡔ의미양상의 대전ꡕ(Summa modorum significandi)가 있다. 이는 12세기 양상론자인 헬리아스의 논의가 빈번히 인용되어 있기도 하다.28) 마르바이스의 미카엘(Michael von Marbais)의 ꡔ의미양상의 대전ꡕ도 당시 의미양상론의 권위있는 논의인 헬리아스를 따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헬리아스의 추종자라고 불린다. 그는 ꡔ의미양상에 관한 논공ꡕ 이외에 ꡔ문법학에 관한 논고ꡕ(Tractatus super grammaticam)와 ꡔ프리스키아누스에 관한 질문ꡕ(Quaestiones super priscianum)을 저술하기도 했다.29) 또한 다음의 논의에서 자세히 다루어질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는 13세기 사변문법에서 중요한 인물이다.30) 그는 13세기 후반에 가르쳤고, 여러 익명의 저자들의 저서에서도 익명되고 있다. 그 외에도 13세기 인물인 다치아의 마르티누스(Martinus von Dacia)의 ꡔ의미양상론에 관한 논고ꡕ와 보에티우스와 마르치아로부터 배운 젠틸레(Gentile)도 의미양상론에 관한 저술을 저술했었다. 시몬(Simon Dacus) 역시 프리스키아누스의 주해자였으며,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ꡔ의미양상론에 관한 논고ꡕ를 적었다. 시몬에 관해서는 브레슬라우 대학 도서관의 한 익명의 저자에 의한 의미양상론에 관한 수사본에서 인용되어 그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마르빌라의 요하네스 요세(Joannes josse de marvilla)의 ꡔ의미양상론ꡕ도 사변문법에 관한 저서이다. 어느 익명의 저자는 요하네스 요세의 ꡔ의미양상론ꡕ에 관한 주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1320년 이전 교수가 된 라둘푸스 브리토(Radulfus Brito)와 같은 이의 논의도 있을 것이다. 에어푸르트의 토마스와 동시대 인물로 에어푸르트에서 활동한 요하네스 아우리파베르(Johannes Aurifaber)도 ꡔ의미양상론에 관한 논고ꡕ을 1295-1333년 사이에 저술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익명의 저자에 의한 의미양상론에 관한된 혹은 사변문법에 관련된 문헌들이 있다.31) 그뿐인가, 앞으로 필자가 소개할 덴마크의 요한과 같은 이들도 중요한 인물이다. 이렇게 사변문법 혹은 의미양상론을 다루는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논의는 당시 언어이론을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문헌 가운데 필자가 다루거나 다룰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영역으로 필자에게 느껴진다.
2.2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문법학의 접합점에서...
:덴마크의 요한의 사변문법.
우물 안에 개구리인 필자에게 보인 13세기의 양상론자로 첫 인물은 덴마크의 요한(John of Denmark)이다. 그는 문법학의 고유한 주제를 구성의 양상(modus construendi)이라 한다. 그리고 문법학자는 의미의 양상을 다루는 인물이라 정의한다. 그 역시 그의 선배 양상론자들와 같이 존재의 양상(modi essendi)와 이해의 양상(modi intelligendi) 그리고 의미의 양상(modi significandi) 가운데 그 삼중의 관계를 다룬다.32) 그는 종국에 가서 이러한 세 가지 양상이 하나에 모임을 논한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하얗다”를 가정하자.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존재하며, 인간과 소크라테스 그리고 하얀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개별자이며, 실체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인격과 그가 가지는 종개념 그리고 그가 가진 질(qualitas) 등과 관련되는 것이다. 즉 위의 예에서 제시된 명제에서 소크라테스는 존재자이며, 인간이고, 하얗다와 같은 것이 포함된다.33) 또한 소크라테스라는 명사는 그 자체로 존재의 양상 가운데 함께 의미된다(consignificare). 그렇다면 의미의 양상은 이해의 양상과 존재의 양상과 결국 동일성을 가지게 된다.34) 즉 이들이 위의 명제에서 함께 이해되어지는 것(co-understood)이다. 그것은 사물(res) 가운데 동일성에 근거한다. 만일 사물이 그 자체로 양상에서 양상으로 그 자체로 동일성을 가지지 않으며, 그것을 의미하는 단어는 그 사물을 의미하는 것을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35) 이상의 논의에 의하면 실재와 개념 그리고 언어의 구조적 속성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36) 그에게 ‘교회 가운데 소크라테스’와 ‘시장 가운데 소크라테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본질적으로(per essentiam)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이한 것은 우유적인 것이다. 이 다양한 양상의 각각은 그 자체로 동일한 사물의 우유적 속성이다. 이 ‘소크라테스’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이며, 이러한 사물 가운데 동일성이라는 존재의 양상은 이해와 의미의 양상은 동일하다. 이와 같이 그의 문법학은 그의 형이상학과 인식론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즉, 실재 가운데 사물과 이해되어지는 사물 그리고 의미되는 사물이 존재의 양상, 이해의 양상 그리고 의미의 양상과 병행되어지는 가운데 구성되는 것이다.37) 다시 말하자면, 그의 이론에서 언어의 본질적 구조, 즉 의미의 구조는 이해 혹은 지성의 구조와 형식적으로 동일하다. 그리고 이들 구조는 실재와 상응한다. 여기에서 그의 형이상학적 입장, 즉 그의 보편적 구조는 후기 스코투스과 유사하다.38) 이러한 과정을 거쳐 덴마크의 요한은 구문론적 구조를 다룬다. 이의 핵심은 보편언어와 관련되어진다. 즉 표현의 근원적인 구조적-기능적 범주의 속성과 구문론적 능력이 모든 언어에 공통된 것이라는 것이다. 존재와 이해 그리고 의미의 양상이 일치됨으로 구성된 문법학은 자연히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모든 인류에 공통된 언어로 귀결되게 된다.39)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양상론의 입장에서 있다. 더 자세한 덴마크의 요한에 관한 논의는 여기에서 그치기로 한다. 그것은 필자가 의도하는 것은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미양상론이 당시의 존재론적 배경 그리고 인식론적 배경 속에서 자라나는 이론이란 것이다. 덴마크의 요한은 자신이 가진 존재론적 입장에 의하여 자신의 의미양상론을 다루었고, 이루었다. 그와 같이 당시 문법가들은 존재론자가 되어야했다. 당시 의미론(semantic)은 바로 이러한 의미양상론자들에 의하여 주도된다. 의미양상의 의미론적 상태는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양상으로 서술되어진다. 그리고 이는 이미 위에서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향 속에서도 보여진다. 즉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론에 관한 전통적 해석에 동조되어진 것이기도 하다.40)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분명 위에서 이야기했던 당시 문법학자는 존재론자 혹은 인식론자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존재의 양상’에 관한 논의는 양상론자들 가운데 그 정의와 내용을 찾기가 어려웠다. 비록 그것이 그들 이론에 중심 된 개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덴마크의 요한을 통하여 이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해 보았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서도 이러한 것을 보여진다. 예를 들어 앞으로 다루게 될 다치아의 보에티우스와 같은 이들이 그러한 인물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필자는 당시 문법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ꡔ명제론ꡕ에서 다루어지는 존재론과 인식론적 배경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41) 그리고 이는 그들에게 단순한 문법학자가 아니라, 존재론자가 됨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논의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매우 복잡하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들에게 ‘의미의 양상’은 Contructio dictionum42)의 인접원인(la cause prochaine)이지만, ‘이해의 양상’은 떨어져있는 원인(la cause eloignee)이다. 이렇게 의미의 양상은 위의 예에서 자발성을 가지는 한 경우가 된다.43) 마치 “의미의 수동적 양상과 이해의 수동적 양상 그리고 존재의 양상은 질료적(실질적으로) 동일하지만, 그러나 형상(형식)적으로는 동일하지 않다”고 하는 것에서도 우리는 이 세 가지 양상의 관계가 그리 쉽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44) 의미의 양상과 이해의 양상의 수동적 양상은 실존하는 사물에 관한 속성이며, 능동적 양상은 인식과 발음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존재의 양상의 시제 문제가 결합하여 양상은 이론이 이루어진다.45) 이렇게 분명한 것은 이를 다루는 문법학자에게는 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나름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기반이 가진다는 것을 분명해 보인다.
2.2. 유명론자들의 새로운 언어학의 태동.
:양상론자들과 옥캄의 언어학적 입장 차이.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를 비롯한 양상론자들은 의미의 양상을 논의하며, 자신의 사변문법을 다룬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다치아의 보에티우스의 논의를 정리하며, 사변문법의 입장을 정리해보자. 발화적 표현(vox)46)이 단수와 복수가 지시되기 이전에 우선 의미를 가져야한다. 그런데 발화적 표현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양상을 가져야한다. 그것이 의미의 양상이다. 즉 언어는 발화적 표현과 의미 사이에 의미의 양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의미의 양상은 발화적 표현과 의미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문장에 관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이 바른 문법을 구성하게 하는 원이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보에티우스도 덴마크의 요한과 같이 세 양상이 일치한다고 본다. 의미의 그 양상은 이미 덴마크의 요한에서 정리하였듯이 존재와 이해와 평행하기에 모든 언어에 공통된 일반문법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이 사변문법의 기본적 개요(槪要)이다.47)
그런데 옥캄은 이를 반박한다. 그 개요를 우리는 ꡔ논리학 대전ꡕ(Summa logicae)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사변문법학자들은 albi와 album이라는 단복수로 발화적 표현(vox)이 일어나기 전에 이는 고유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의미에 수(數)와 같은 것이 합해 의미됨으로, 즉 합의미(consignificatio)가 이루어짐으로 그렇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화적 표현이 고유한 의미를 가지기 위하여 의미의 양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옥캄은 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구성한다. 옥캄에게 발화적 표현은 개념(intentio 혹은 conceptus)에 종속된 기호(signum)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의미의 양상’과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면서 그의 ‘면도날’로 이를 잘라버린다. 그는 심적 언어(verba mentalia)에 집중한다. 그에 의하면 심적 언어 가운데 어떤 것을 본성적으로 명사적으로 의미하고 있기에 본성적으로 명사이고, 그렇게 심적 언어 가운데 본성적으로 동사적으로 의미하기에 본성적으로 동사이며, 이렇게 다른 품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문법의 구조는 심적 언어에 대응하는 것일 뿐이지, 의미의 양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너는 달린다’와 ‘너희들은 달린다’에서 이들은 고유한 의미에서 수와 같은 것의 합의미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롯 기제는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심적 명제(언어)에 발화 명제가 상응한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읽는다’와 ‘너는 읽었다’에서 인칭의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시제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그 이유도 서로 다른 심적 명제에 발화 명제가 상응하기 때문이다.48) 이미 말했듯이 옥캄에게 발화 언어는 심적 언어인 개념의 기호이며, 발화 언어의 서로 다른 차이는 서로 다른 심적 언어에 상응한다.49) 그래서 기존의 의미 양상론에 의한 문법은 옥캄에게 필요 없는 것으로 보였다. 즉, 그러한 논의는 필요이상의 논의이며, 이를 그는 자신의 면도날로 날라버린다. 이와 같이 옥캄은 의미의 양상에 관한 논의를 거부한다. 더 강하게 의미의 양상이란 것의 논의를 넘어 그러한 구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그러한 이유는 발화 언어가 그 고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의미의 양상이나 합의미의 양상에 의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의미의 양상과 같은 것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덴마크의 요한이나 다치아의 보에티우스가 이야기하듯이, 혹은 다른 양상론자들이 그렇게 했듯이 존재의 양상과 이해의 양상 그리고 의미의 양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의미의 양상은 필요 없는 것이며, 존재의 양상은 위에서와 같이 다른 양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덴마크의 요한과 에어푸르트의 토마스가 둔스 스코투스의 존재론, 즉 실재론에 의존하거나 유사한 입장을 가졌다는 것을 염두(念頭)해 두어야한다. 그러나 옥캄은 보편개념의 존재를 거부한다. 옥캄에게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라고 할 때, ‘인간’이란 것은 단지 여러 주어의 술어가 될 수 있는 것이기에 인위적으로 규정상 그렇게 둔 것이지 존재론적 위치를 점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상론자들은 ‘인간’이란 쓰여진 언어 혹은 발화 언어가 그러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하나의 독립된 무엇이 있다고 본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하얀’과 ‘하양’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는 스코투스의 의미론에서 중요한 질문이 된다. 이 질문에 스코투스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 두 개의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즉 하얀 색의 본성 혹은 본질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 차이를 가지는 것인가? 그것은 서로 다른 의미의 양상으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단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에서 하얀 색의 본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51) 이렇게 옥캄과 기존 양상론자들의 언어이해는 종국에 존재론적 입장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스코투스가 양상론자와 같은 언어이론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의미의 양상을 주장하는 양상론자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것을 사실로 보이며, 또한 덴마크의 요한과 같은 양상론자들은 스코투스와 유사한 존재론적 입장을 가진다는 것에 주목할 뿐이다.52) 옥캄은 양상론자들과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3.0 나가는 말.
이상의 논의에서 필자는 대강이나마 중세 언어이론의 틀을 도모해보았다. 물론 그것은 양상론자와 이에 관한 옥캄의 반격을 더하여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에 관한 그들의 관심이 종국에는 존재론적 혹은 형이상학적 논의에 근거됨을 확인해 보았다. 중세인들에게 문법은 어떤 것인가? 특히 사변문법은 어떤 것인가? 의미의 양상은 어떠한 것인가? 이와 같은 중세 학자들의 문법에 관한 논의는 프리스키아누스와 도나투스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었다.53)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신학적 논의에 어떤 도움이 되었기에 중세 동안 그렇게 꾸준히 논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차후의 논의에서 중세 언어이론 혹은 중세 의미론이 신학과 어떻게 연관되고 발전되어 가는지를 도모할 것이다.
양상론자들의 사변문법은 단지 문법의 차원을 넘어 중세 당시 그들의 존재론 그리고 인식론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된다. 그리고 양상론자들은 의미와 존재 그리고 이해의 세 양상을 일치함으로 보편문법을 가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양상론의 핵심적 논의로 오랜 시간 다루어졌다. 그러나 옥캄은 존재론적 견해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새로운 존재론적 토대에서 새롭게 언어이론을 구성한다. 그리고 옛길에서 다루어진 의미의 양상을 폐기한다. 이러한 새로움은 보편문법의 거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차이는 단지 존재론적 차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논의와 깊은 연관을 가질 것이다. 앞으로 필자가 도모하는 것은 바로 그곳에 있다.
1) signinificatio는 현재, 표시(表示), 표기(表記), 의미(意味)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본서에서 필자는 significatio를 ‘의미’라고 번역한다. 그것은 레이크(L.Rijk)와 같은 인물이 이를 독일어로 bedeutung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발화언어를 중재하는 사물의 표상(vorstellung) 혹은 표시(bezeichnung)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bedeutung은 우리말로 의미라고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서 이렇게 옮겨본다. Cf. L.Rijk, "Die Bedeutungslehre der Logik in 13. Jahrhundert und ihr Gegenstueck in der metaphysischen Spekulation" In Methoden in Wissenschaft und Kunst des Mittelalters, ed. A.Zimmermann (Berlin: Walter de Gruyter, 1970), S.4; 참고로 같은 한문권인 일본의 Marinus de Dacia, 「表示の諸樣態」, ꡔ中世末期の言語․自然哲學ꡕ, 山下正男 옮김, (平凡社, 1994)에서 山下正男은 modus significandi를 ‘표시’라고 옮긴다.
2) Heidegger, M., "Die Kategorien- und Bedeutungslehre des Duns Scotus" In Gesamtausgabe 1 (Frankfurt a.M: Vittorio Klostermann, 1978).
3) Grabmann, M., Mittelalterliches Geistesleben (Muenchen: Max Hueber, 1926), S.115.
4) Ibid., S.141.
5) Kneepkens, C., "The Priscianic Tradition" In Geschichte der Sprachtheorie, ed. S.Ebbesen (Tuebingen: Guenter Narr Verlag, 1995), p.240.
6) Ibid., p.241.
7) Ibid., pp.242-243; Zupko, J., John Buridan - Portrait of a Fourteenth Century Arts Master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3), ch. 1, 1. 14세기의 학생들은 동사에 관한 주어로 어떤 것을 자리잡게 하는 행위로 지칭(suppositio)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당시 문법학은 근본적인 곳에서 기능하고 있었고, 이는 논리학의 여러 문제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8) Ibid., p.246.
9) Lecq, R., "Mental Language: a Key to the Understanding of Buridan's Semantics" (at http://www.phil.uu.nl/~lecq/), pp.1-2.
10) 박승찬, 「유비 개념의 발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ꡔ가톨릭 신학과 사상ꡕ 26호 (1998), 156쪽; Markowski, M., "Sprache und Logik im Mittelater" In Sprache und Erkenntnis im Mittelater (Berlin: de Guyter, 1981) S.39. 마르코브스키(Markowski)에하면 합의미(consignificatio)는 부수범주적 표현(synkategorematische Ausdruecke)에 관한 논의와 어떤 관련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11) Rijk, L., “The Origins of the Theory of the Properties of Terms" In The Cambridge History of Later Medieval Philosophy, p.162.
12) Ebbesen, S., "Ancient Scholastic Logic as the Source of Medieval Scholastic logic" In The Cambridge History of Later Medieval Philosophy, pp.120-123. 문법학자들은 언어를 8가지 품사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전치사와 같은 합의미적 단어(consignificative words)를 다루었다. 이어한 것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에서도 보여진다. 그에게 명사는 사물을 의미하는 것이며, 고유하게 의미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발화적 표현이 사물을 지시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전치사나 접속사와 같은 것이 그러한 것이다. 이들은 그를 무의미한 소리(phone asemos)라고 하였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논의도 사변문법가들의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ꡔ시학ꡕ, 20장 1456b 38, 천병희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1996).
13) Aristoteles, de interpretatione, c.3, 이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사는 개별적인 의미를 포함하며 시제를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동사란 명제에 시제가 합의미됨으로 가능하며, 이로 명사와 구별되는 것이 된다. 이에 관한 현대어 번역은 Loeb판 가운데 첫번째인 다음의 것을 사용했다. Aristotle, The Categories, on Interpretatio, and Prior Anarytics, trans. H. Cooke et al.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38).
Tweedale, M., "Abelard and the Culmination of Old Logic" In The Cambridge History of Later Medieval Philosophy, p.144. 아벨라르두스는 동사가 시제의 합의미를 가짐으로 명사로부터 구별되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비판했다. 그러한 이유는 언어의 다른 품사로부터 구별되는 것으로 동사가 단지 행위나 수동을 의미한다는 것에 불만스러웠다. 아벨라르두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달림curre과 달리고 있음currens은 현실적으로 그 가운데 속하는 것으로 인칭과의 연관 속에서 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얀 것은 현실적으로 속하는 것으로 실체와의 연관 속에서 하양으로 확정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하양으로 인하여 하얀 것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아벨라르두스의 의미론에 자세한 논의는 매우 흥미 있는 논의이다. 이에 관해서는 차차 다루어보기로 한다.
14) Rosier, I., "Res significata et modus significandi: Les implicatione d'une distinction medievale" In Geschichte der Sprachtheolie, ed. S,Ebbesen, p.137.
15) Ibid., p.138. 여기에 소개되는 도표와 그 소개를 참고하며 읽어 가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6) Kneepkens, C., "The Priscianic Tradition", pp.243-244.
17)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문법학에 관한 논의에서 ‘발화적 표현’과 ‘심적 개념’ 그리고 ‘사물’의 삼중 구조에 관한 논의에서 발화적 표현은 하나의 언어군이 다른 언어군과 공유하지 않는 것이며, 반면 심적 개념은 모든 이에게 공통된 것이다. 아무리 상이한 발화적 표현을 가진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하여 ‘변방’이란 말은 한국어에서는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이 영어에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의 심적 개념은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문법학에 관한 논의는 다음의 것을 참고하였다. Barnes, J., "Grammar on Aristotle's Terms" In Rationality in Greek Thought, ed. M. Frede (Oxford: Clarendon Press, 1996), pp.176-202.
18) Jolivet, "Vues medievales sur les paronymes" Revue internationale de philosophie 29 (1975)
19) Kneepkens, C., "The Priscianic Tradition", p.244.
20) Ibid., pp.247-248.
21) Ibid., p.248.
22)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William Boukes와 Thomas of Cherminster이 단죄를 요청한 것의 내용은 차후에 자료가 마련되면 연구할 생각이다.
23) Georgiev, O., "The Rearrangenment of Liberal Arts" In Scientia und Ars im Hoch- und Spaetmittelater (Berlin: de Gruyter, 1993), p.24.
24) Ibid., p.26.
25) Markowski, M., "Sprache und Logik im Mittelater", S.39.
26) Zupko, J., John Buridan - Portrait of a Fourteenth Century Arts Master, ch. 1, 1.
27) Grabmann, M., Thomas von Erfurt und die Sprachlogik des mittelalterlichen Aristotelismus (Muenchen: Verlag der Bayer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1943), S.43.
28) Ibid., S.78.
29) Ibid., S.79.
30) Ibid., S.80.
31) Ibid., SS.86-95.
32) Sirridge, M., "The Science of Language and Linguistics Knowledge" In Geschichte der Sprachtheorie, p.111.
33) Ibid., p.112; 이에 관한 더욱 더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논의를 참고하기 바란다. Pinborg, J., "Speculative grammar" In The Cambridge History of Later Medieval Philosophy, pp.262-267.
34) Sirridge, M., "The Science of Language and Linguistics Knowledge", pp.113-114; 박전규, 「유명론자들에 있어서 언어이론」, ꡔ철학연구ꡕ 32 (1981), 46쪽. 이러한 것은 의미양상론자들에게 중요한 입장이며, 이와 관련된 것은 위의 연구에서 읽을 수 있다.
35) Sirridge, M., "The Science of Language and Linguistics Knowledge", p.114.
36) Ibid., p.115. 사물과 발화적 표현 그리고 심적 개념이라는 의미론적 삼중 관계의 일치는 사변 문법의 이론적 기반이다. 그리고 이러한 삼중의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보에티우스 노선을 거쳐서 사변 문법에서 옥캄과 뷔리당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다루어진다. 그리고 언어 이론의 차이는 바로 이러한 삼중 관계 사이의 관계의 새로운 이해와 해석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37) Ibid., pp.113-114.
38) Ibid., pp.115-116. 이와 관련된 논의는 필자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지만, 아직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 차후 때를 기다려 볼 뿐이다.
39) 박전규, 「유명론자들의 언어이론」, 46쪽.
40) Pinborg, J., "Speculative grammar", p.262.
41) Cf. Aristoteles, de interpretatione 1.
42) 여기에서 dictio에 관한 마땅한 역어를 미진(未盡)한 필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dictio는 양상론자들의 의미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여기에서 양상론자들의 몇몇 개념을 정리해 보자면, vox는 ‘발화적 표현’, signum은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모든 것’이며, pars는 품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dictio는 단순히 그 표현을 구성하는 발화소리와 동일하지 않다. 또한 의미(significatio)는 dictio의 본질적 형태인데, 왜냐하면 어떤 우유적 상황에 의하여 제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dictio는 발화소리와 동일하지 않으며 우유적 상황에 의하여 제거될 수 없는 의미이다. 특히 이는 양상론자들의 화용론적 논의에 중요한 개념인데, 이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Marmo, C., "A Pragmenic Approach to Language in Modism" In Geschichte der Sprachtheorie,
43) Jolivet, J., "Rapport entre la grammaire et l'ontologie au moyen age" In Sprache und Erkenntnis im Mittelalter (Berlin: de Gruyter, 1981), p.153. 이 자료는 중세 시대의 문법학의 세 양상에 관한 흥미 있는 논의를 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존재론적 논의와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다.
44) Enders, H., Sprachlogische Tractate des Mittelalters und der Semantikbegriff (Muenchen-Paderborn-Wien: Veroeffentlichungen des Grabmann-Instituts, 1975), SS.227-228.
45) 박전규, 「유명론자들에 있어서 언어이론」, 46쪽.
46) 박전규는 vox를 음(音)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이는 너무나 광범위하여 필자는 감히 이를 풀어서 그 의미를 살리려고 한다.
47) 이에 관한 논의는 다음의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Boethius of Dacia, Quaestiones super priscianum majorem, ed. J.Pinborg et al. (Copenhagen: Gad, 1969).
48) Ockham, Summa logicae I, c.3. 이에 관한 영어번역은 다음의 것을 따른다. William of Ockham, Ockham's Theory of Terms - Part I of the Summa Logicae, trans., J.Loux (Indiana: St. Augustine's Press, 1988).
49) Boehner, Ph., "Theory of Significantion" In Collected Articles in Ockham, ed. E. Buytaert (New York: The Franciscan Institute, 1992(2ed)), pp.201-231.
50) 박전규, 「유명론자들에 있어서 언어이론」, 49쪽.
51) Perler, D., "Duns Scotus's Philosophy of Language"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Duns Scotus, ed. Th.William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p.172.
52) Ibid., p.173.
53) 호세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게레로 외, ꡔ수사학의 역사ꡕ, 강필운 옮김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1), 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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