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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철학 학교 중세 철학 자료 2003.04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과 그의 아랍에로의 유입
유대칠
(토마스 철학 학교)
1.0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저서 가운데 유독 {기상학}(Meteorologica)은 나의 눈에 그리 잘 들어오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연철학을 이해하고, 그의 자연철학의 아랍에로의 수용을 다루기 위하여 나는 이 책을 잡아든다. 기상에 관한 인간의 관심은 고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중세 아랍인들에게 그러하다. 그리고 이는 중세 아랍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걸출한
인물의 {기상학}을 읽게 하였다. 이러한 지적 관심은 많은 아랍인들에게 {기상학}에 관한 주해(Commentary)와
부연(Paraphrase)를 낳게 하였고, 알 킨디(Al-Kindi)와 아비첸나(Avicenna) 그리고 아베로에스(Averroes)와 이븐
바자(Ibn Bajja)와 같은 철학자로 하여금 이에 관한 글을 적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이에 대한 이슬람 철학자들의 해석과 이해 그리고 반응이다.
2.0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기상학적 논의는 그의 자연철학적 배경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그가 {기상학}을 시작하는 첫 머리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자연의 제일 원인과 모든 자연적 운동을 다루었다. 또한 우리는 우주 가운데 별들의 질서정연한 운동과 네 원소들의 구성과 종류 그리고 상호 전환을 다루었다. 모든 우리의 선배들이 기상학이라고 부른 현재 연구의 부분을 숙고하는 것이 남았다.
여기에서 그는 기상학이 자연학의 논의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기상학적 논의에 관한 논의는 그의 자연학 혹은 자연철학의 이해를 위한 새로운 장을 마련하게 해 줄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원인 혹은 원리를 추구한다. 그것은 즉 제일 원인과 모든 자연적 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기상학}도 이러한 논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이슬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이븐 수와르(Ibn Suwar)의 저서인 {기상학적 현상에 관한 논고}(Maqala Fi L-Atar Al-Mutakayyila Fi L-Jaww)에서 분명해 진다.
원인과 원리를 가지는 모든 것은 그들의 원인과 원리가 얻어진 이후에 잘 그리고 고유하게 알려진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확실한 지식을 원한다면, 우리는 우선 그들의 원리와 원인을 진술해야한다. 그들의 원인이 가까운 것이 있고 먼 것이 있을 때, 이를 공부하는 질서에서 우리는 가까운 원인과 비교하여 먼 원인을 진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함을 결심해야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기상학의 방법론은 다분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잘 알려지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다 가까운 원인에로 다가가려는 이러한 태도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초기 저작인 {존재자와 본질에 관하여}(De ente et essentia)에서 보인바 있다. 토마스는 아비첸나를 들면서 지성에 보다 먼저 포착되는 것에서 논의는 시작되어야하며, 또한 후행(後行)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선행(先行)하는 것을 다루는 것을 학문의 적절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븐 수와르도 후행하는 것에서 선행하는 것을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기상학적 논고에 적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이러한 방법론적 논의를 토대로 기상학적 현상인 바람에 관하여 다루어보자.
3.0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기상학}에서 바람( , 風)에 관하여 다룬다. 그는
우선 1권 13장에서 잠시 보이던 바람에 관한 숙고는 본격적으로 2권 4-6장에서 드러난다. 그의 많은 자연학적 논의가 그렇듯이 이도 선배들의
견해를 논박하며 시작한다. 그는 바람이 운동 가운데 있는 공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건조한 발산(dry exhalation)이라 한다.
이는 태양의 열에 의한 대지(大地)로부터 분해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지의 습기는 그러한 발산을 지지한다. 그러므로 바람은 폭우와 눈이 녹은
이후에 특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바람의 질료는 건조한 발산이다. 그렇기에 비(雨)와 바람은 같은 실체라는 것은 거짓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발산의 두 가지 종류를 제시한다. 그것은 습한 발산과 건조한 발산이다. 전자는 비를 일으키고, 후자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습한 발산은 건조함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건조한 발산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습한 발산이 어느 지역과 시기를 지배하면, 그곳은
우기(雨期)가 된다. 상대적으로 건조한 발산이 어느 지역과 시기를 지배하면, 그곳은 바람이 이는 시기가 된다. 대체적으로 한 지방은 건조하거나
습하다. 그렇기에 지방마다 서로 반대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불구하고, 모든 지방은 태양과 일정하고 동일한 관계를
가진다. 그렇기에 한 지역의 습하거나 건조한 발산이 인근 지역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논의를 근거로 바람은 비 이후에 온다고
한다. 그리고 비가 오는 동안에 바람은 없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비가 그치면, 땅은 내부 열에 의하여 건조해진다. 그리고 그 열은 상승 기류가
된다. 그러면 건조한 발산이 바람으로 된다.
이러한 바람은 비록 발산이 수직적이라도 수평적으로 분다. 바람은 지구
주위를 불며 지구 주변의 공기의 전체가 천체의 운동을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천체는 바람의 동적(動的) 원인이 된다.
4.0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 역시 바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가진다. 날마다 동(東)에서 서(西)로 움직이는 태양이 공기가 압축되어 있는 북과 남으로 공기를 민다고 한다. 그러면 공기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것이 바람이며, 그렇기에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공기는 한 곳에 모여지며, 그러므로 이것은 다른 측면으로 흐른다. 그것은 진공(vacuum)에 의하여 다른 측면으로 움직이게 강제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예로 빨대를 사용할 수 있다. 물은 입에 의하여 빨대 위로 빨려 올라간다. 여기에서 공기는 빨대로부터 빨려지고, 물은 진공의 힘과 관련하여 빨대를 채운다. 이러한 논의는 계속 이어진다. 그에 의하면, 한 장소에서 압축되면, 그러면 진공의 힘에 의하여 다른 면으로 움직이게된다. 여기에서 바람은 수평 운동을 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무거운 습한 안개는 자연스럽게 하강하며, 그런데 가벼운 발산은 이때 일어난다. 그리고 그에게 공기는 자연적으로 습하거나 차가운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하강 운동을 한다. 그런데 태양의 열기가 공기를 위로 올린다. 그렇기에 바람은 수평적 운동을 하게 된다. 알렉산더(Alexander)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하여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만일 바람이 천체의 운동에 원인을 된다면, 그러면 모든 바람은 동에서 서라는 단지 하나의 방향만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거짓-올림피오도루스(Pseudo-Olympiodorus)도 이 논의에 한 몫을 한다. 그는 상승하는 발산은 습한 공기를 담은 공기에 의하여 밀리고, 여기에서 상승하는 발산은 다른 상승하는 발산을 만난다. 그리고 하강과 상승의 상호 작용에서 수평적인 바람이 일어난다고 한다.
5.0 알-킨디 역시 기상학에 관한 논의를 남겼다. 그는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이지도 테오프라스투스이지도 않다. 그는 바람의 기원에 관하여 논의를 제시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태양이 특정 정소 위에 있을 때, 그것을 달구고 공기는 팽창한다. 그러면 공기는 그 장소로부터 더 차가운 장소로 흐른다. 이 공기의 흐름이 바람이다. 그 둘째는 발산이 대지로부터 수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대기의 차가운 층에 도달할 때, 그것은 밀도가 높아진다. 그러면 습한 발산은 물이 되고, 건조한 발산은 흙이 된다. 이러한 흙의 입자가 그의 무게에 의하여 공기를 빈다. 그리고 이 공기의 운동이 바람이다. 그외에도 앗 사파(Ikwan as-Safa)와 같은 이들은 바람이 건조한 발산에 의한 운동 가운데 있는 공기이라 하고, 알 마수디(Al-Masudi)와 같은 이들은 확산되는 장소에서 수축되어는 에로 공기의 흐름이라는 알 킨디의 개념을 인용한다.
6.0 이븐 시나, 즉 아비첸나는 건조하고 연기 나는 발산이 바람의 질료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른다. 그리고 한편에선 수평 운동의
확산에 있어서 거짓-올림피오도루스에게 영감을 받았다. 그에게 상승하는 발산은 수평 운동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승하는 공기의 주기 운동에
의하여 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차가운 층 가운데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무거운 것이 되고, 이는 다시 하강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평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바람의 근거는 비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습한 발생이 비를 낳으며
바람은 이와 다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설명으로 해결되어진다. 하지만 비는 바람의 발생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도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하다.
그것이 대지를 축축하게 하면, 그것은 바람이 일어나기 적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비는 바람을 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람도 비의 형성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바람의 원인에 관한 설명에선 상당부분 발산에 의하여 설명함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
노선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람의 수평 운동에 대한 설명에선 그렇지 않다.
7.0 이에 관하여 비록 아비첸나에게 많은 덕을 입었지만, 아불 바라캇(Abu l-Barakat)은 알 킨디에도 아비첸나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태양의 열기로 인한 확산 때문에 움직여진다는 알 킨디의 이론을 거부한다. 그는 그러면서 천체의 힘에 의하여 원인 되는 바람의 운동을 이야기하며, 지구에 열기나 냉기에 의하여 것이라는 학설을 마다한다. 그러한 그는 바람의 원인이 뜨거움에 의하여 상승하는 운동이나 차가움으로 하강하는 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바람의 원인은 다른 자연적 힘이 아니다. 그가 생각한 바람 운동의 원인은 바람 그 자체 가운데서 찾아져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요소 혹은 원소의 자연적 힘과 다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별에서 기인하는 천체의 어떤 힘을 가정한다. 그는 지상에 일어나는 많은 자연 현상의 배후에 그러한 힘을 인정한다. 지상의 생성 소멸의 과정 가운데 식물의 씨앗과 구름 그리고 나무, 습기, 비 그리고 과일과 습하고 건조한 발산과 그 힘은 관련되는 것이다.
8.0 이븐 루쉬드(Ibn Rushd)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에 관한 주해들에서 기상학의 문제를 다룬다. 그도 근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바람은 연기 나는 발산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습한 발산이 비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거짓-올림피오도루스의 것도 일부 수용한다. 발산이 대기(大氣) 가운데 차가운 것 그리고 습한 것에 다다르면, 그것은 차갑게 된다. 그러면 무겁게 되고, 하강하게 된다. 여기에서 상승하는 발산과 연결되고, 이 연결이 수평 운동을 야기한다고 그는 본다.
9.0 혜성의 출현마저 기상현상으로 이해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은 과연 참이라고 여길 수 있는가? 여기에서 지금의 바람에 관한 정의를
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칼을 대는 것은 그리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의 기상학이 지금의 기상학에 이르는 잠정적인 상태였으며,
지금의 기상학이 미래의 기상학에 잠정적 상태라는 말을 할뿐이다. 탈레스는 하늘을 관찰하고 올리브의 풍작을 예견했다. 이러한 그의 재치에서
기상학은 첫 걸음을 내딛는다. 이어서 아낙시만드로스는 "공기의 운동"을 바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열에 의하여 공기가 상승하며, 이러한 공기가
냉각되면, 구름이 된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그의 고도가 올라가면, 냉각이 이루어진다는 견해는 현대의 학문을 배운 우리에겐 자명한 사실이나
상식일 수 있지만, 19세기의 말까지 학자들에게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그의 과학적 연구는 매우 흥미 있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4 원소설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어진다. 그에 의하면 서로 간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며, 흙을
중심으로 물 그리고 그 다음이 공기 그리고 마지막이 불이라는 질서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자연학적 논의가 그의 기상학을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 간단하게 비가 떨어지는 것은 그것의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비에 관한 설명에서 확인된다. 그에
의하면 이미 위에서 이야기하였듯이 공기는 상승하면서 냉각된다. 지구 주변의 물은 태양의 열에 의하여 상승한다. 그러나 상승하게 하는 열이
사라지면, 수증기는 냉각되고 다시 응축되어 물이 된다. 그리고 이 물이 다시 지표면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비의 원리가 있다. 이러한 비의
원인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습한 발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람은 이와 다른 건조한 발산에 의하여 일어난다. 이러한 건조한 발산에 의한 바람에 관한
설명은 바람이 운동하는 공기라는 것과 다르다. 그는 태양의 열에 의하여 대지로부터 분해되어지는 것이 건조한 발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일어나는 바람은 수평적으로 움직인다. 왜냐하면, 발산은 상승하는 공기의 운동과 함께 움직여지는 것이며, 차례로 천체의 주기 운동과 함께
움직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대기의 기상 현상에 관한 지금의 관점에선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비에 관한 것은 상당히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에 관한 그의 견해는 이후 많은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그 가운데 바람의 수평 운동에 관한 설명은 후에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는 이슬람의 철학자와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도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큰 자연학적 원리를 수용하였다. 우선 아비첸나와 아베로에스 등도 근본적으로 건조한 발산이라는 것을 바람에 적용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관한 고민이다. 예를 들어, 바람의 수평 운동이다. 이에 관하여 서로 비판하고 논박한다.
진공과 관련된 공기의 운동을 이야기하는 테오프라스투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르다고 해도, 그의 이론이 완전히 자연학적 근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결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같은 근거에서 다른 설명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도 자연의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적 공리에 의하여 설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어떤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넘어선다. 그것은 알렌산더에 의하여
설명되듯이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다면 모든 바람의 방향이 동일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 우리는 상식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여기에서 테오프라스투스의 설명이 더 적당한 것이 된다.
10.0 이슬람의 학자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 혹은 학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의 저서를 통하여 학문을 익혔다.
그렇다고 그들의 성과가 전적으로 그로 인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알 킨디는 과감하게 그리스의 많은 기상학적 유산에
반론을 제기한다. 물론 아비첸나 역시 그러하다. 이미 위에서 논의하였듯이, 아비첸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의 원인으로 건조한 발산이라는 것을
따랐지만, 수평 운동에 관한 문제에서는 다른 길을 간다. 물론, 여기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다른 이의 것에 의지하지만, 이를 통하여
아비첸나의 기상학적 논의를 완성한다. 그리고 알 킨디도 그러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테오프라스투스도 아닌 길을 모색했다. 물론 그가
테오프라스투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둘의 차이는 여전하다. 그리고 이슬람 학자들이 바람을 공기의 운동을 바람이라고 할 때,
이는 테오프라스투스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차라리 알 킨디의 영향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기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충실한 이가
아닌 자연에 충실한 이가 되고자 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근간에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학이 남아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한 근거에서 이들은 보다 정확하게 자연의 현상 엄밀하게 기상 현상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슬람 학문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기상학}의 유입은 단순한 고대 기상학적 논의의 유입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기상학의 유입이 아니라, 이슬람적 기상학의 성립을 위한
도구의 성립과 이을 위한 공통된 토대의 마련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자연을 이해함으로 보다 나은 기상학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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