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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투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마리아론에 관한 글입니다.
그냥 지적 호기심에 적은 것입니다.
스코투스와 토마스의 마리아론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0 스코투스와 토마스를 이렇게 놓는 경우는 대개 대립적 논의를 행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마리아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세 많은 철학자들은 철학자인 동시에 신학적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신학자였다. 철학자로서 그들이 존재하였듯이
그렇게 동시에 신학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둘은 서로 분리하여 보는 것보다 이 둘을 함께 살피는 것은 중세 철학을 행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세 시대 마리아론은 중요한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었다. 의지의 문제에서 그렇듯이 마리아론 역시 프란치스칸과
도미니칸의 서로 다른 주장이 있었고, 당연히 이들의 사상적 수장인 스코투스와 토마스는 서로 다른 주장으로 맞서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마리아론에서 우리는 스코투스의 손을 교회가 들어줌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1854년 발표된 교황 비오 9세의 『형용할
수 없는 신』(Ineffabilis deus)에 등장하는 스코투스에 관한 언급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룰 마리아론의 핵심은
무염시태(無染始胎)이다. 즉 원죄 없는 마리아의 탄생이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난 것인가 아닌가? 이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로 들어가 보자.
2.0 항상 그렇듯이 바로 이 두 사람에 관한 논의에 들어가는 것 보다, 우선 주변 사정을 아는 것이 좋다. 그것이 더 재미있게 논쟁을 구경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여기에서 제외할 수 없다. 그는 인간의 생식작용으로 인하여 죄가 유전된다고 하는 유죄(遺罪)주의 신학을 주장한다. 이에 의하면 인간은 성적 작용에 의하여 인간의 육체가 더럽혀지고, 그 가운데 영혼 마저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안나와 마리아 역시 이러한 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한 그의 논의에 따르면, 마리아의 무염시태 신앙은 축일로 거행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안셀무스는 그의 『동정적 잉태와 원죄에 관하여』와 『왜 신은 인간이 되었는가』(Cur deus homo)에서 원죄를 원초적 죄라고 하며, 마리아 역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마리아에 관한 무염시태를 거부한다. 베르나르두스는 예수만이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그렇기에 수태 이전과 이후 모두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라고 한다. 그렇기에 마리아가 그렇게 잉태되었다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토마스 역시 무염시태 신앙과 그에 따른 축일을 거부한다. 하지만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관한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며 이를 찬성한다.
3.0 그렇다고, 토마스가 마리아를 그저 여느 여인과 같은 존재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한 유죄신학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동정녀라는 것도 지쳐야했다. 우선 만일 마리아가 무염시태에 의한 존재라면, 그녀는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보편성에서 배재되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그리스도론에 반대되는 것이다. 토마스의 그리스도론에 의하면, 혹은 전반적인 그리스도론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반면 인류의 죄를
대신 진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의 회생에 의하여 우리는 은총과 구원을 받게된다. 그런데 만일 마리아가 원죄(原罪)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 즉
무염시태라고 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품위에 어울리지 않은 것이 된다. 토마스는 분명히 마리아의 구원자 역시 그리스도여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토마스는 마리아의 무염시태 신앙을 거부한다. 하지만 분명히 마리아는 여느 여인과 다른 여인이야 했다. 그것은 그가 마리아에
관한 성성(聖性, sanctitas)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동정녀란 신앙적 측면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죄신학을 접목하였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적 작용에 의한 우리의 육체는 더러운 것이며, 이 가운데 영혼도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원죄가 후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토마스는 이러한 이론을 수용한다. 그리고 이는 마리아론에 적용한다. 그는 마리아가 만일 이러한
유죄신학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것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에 따르면, 남녀의 성적 결합으로 인하여 그녀가
잉태되었을 때, 그때 그녀는 원죄에 물들어있다. 이는 토마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노선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영혼의 주입(animatio) 이후에 동정녀가 되는 것이다. 즉, 마리아의 육체에 영혼이 들어감 후에 성화(聖化)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성모로서 마리아에 관한 마리아론과 구원자로서 그리스도론을
화해시키려한 것이다. 하지만, 섬나라인 영국의 소수 몇몇은 이와 달랐다.
4.0 영국의 몇몇 신학자는 이러한 성모의 무염시태를 찬성하였다. 그 가운데 '선행 구속론'을 주장한 둔스 스코투스가 있다. 그는 마리아의 무염시태가 그리스도론의 구원 보편성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영원으로부터 신에 의하여 계획된 구속 사업으로 인하여 성자(聖子)가 보내졌다. 그리고 그러한 중재자인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마리아는 미리 보호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선행 구속론의 골자이다. 그는 『복된 동정년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관한 질문들』(Quaestiones disputatae de immaculata conceptione beatae mariae virginis)에서 마리아는 다른 어떤 이보다 가장 완전한 중재의 단계를 실현하였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중재자인 그리스도는 마리아가 원죄에 사로잡히지 않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선행은총을 입은 것이다. 이러한 스코투스의 마리아론은 현대 마리아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울리아니는 특히 이러한 것을 지적한다. 그는 스코투스의 마리아론은 동정녀 마리아론의 논쟁을 해결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스코투스의 마리아론을 선행 구속론으로 요약하며 다룬다. 그리고 이 이론이 비오 9세의 『형용할 수 없는 신』(Ineffabilis deus)에 등장하는 것의 토대인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서 신의 의지(voluntas)는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행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신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행한 것이다. 적어도 스코투스에 의하면 말이다. 이렇게 스코투스는 신의 의지를 내세워 마리아의 무염시태가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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