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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는 중세 철학/한글 중세철학문헌

롬바르두스의 '명제집(Sententiae)' 서언 1~3 읽기

Libri Quattuor Sententiarum

Petri Lombardi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 4권

 

Prologus

서언

 

페트루스 롬바르두스 씀

유대칠 옮김

 

INCIPIT PROLOGUS

서론의 문을 열다.

 

1. 가난한 여인과 함께 우리의 궁핍과 가난에서 주님의 곳간에 무엇이라고 맡기길 원했기에 우리는 감히 가파른 올라야 했고, 우리 힘을 넘어서는 일을 감히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에서 이 힘든 일의 완수와 그 노력의 보상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반쯤 죽은 이를 데려와 돌봐 달라 맡기며 은화 두 닢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주고는 혹여 돌보는 이가 더 많은 돈을 들어 돌보게 된다면, 돌아오는 길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약속한 그의 진실함에 기쁘지만, 해야 할 일의 크기에 그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로 나아가 이루고자 하는 열망에 용기를 얻지만, 금방 무너질 듯한 우리의 나약함을 생각하면 또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집을 향한 우리의 열정은 이런 낙담을 이겨내도록 했습니다.

1. Cupientes aliquid de penuria ac tenuitate nostra cum paupercula in gazophylacium Domini mittere, ardua scandere, opus ultra vires nostras agere praesumpsimus, consummationis fiduciam laborisque mercedem in Samaritano statuentes, qui, prolatis in curationem semivivi duobus denariis, supereroganti cuncta reddere professus est. Delectat nos veritas pollicentis, sed terret immensitas laboris ; desiderium hortatur proficiendi, sed dehortatur infirmitas deficiendi, quam vincit zelus domus Dei.

 

2. 열정으로 불타는 우리는 육감적인 것에 매여있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이들의 잘못에 맞서 다윗의 망대에 방패를 둘러 막아내듯 우리 믿음을 막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가서 4장 4절) 아니 이미 우리는 단단한 요새(要塞)를 세워 잘 막아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린 신학 탐구에 있어 드러나지 않은 그 숨은 깊이를 드러내고자 하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진 이해력의 이 초라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사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연구하려는 우리 형제의 바람을 막아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언어와 펜으로 칭찬받을만한 연구에 힘쓸 수 있도록 청하고 있기에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이륜마차를 이끌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III, 서언, n.1)

2. Quo inardescentes, fidem nostram adversus errores carnalium atque animalium hominum Davidicae turris clypeis munire vel potius munitam ostendere, ac theologicarum inquisitionum abdita aperire, necnon et sacramentorum ecclesiasticorum pro modico intelligentiae nostrae notitiam tradere studuimus ; non valentes studiosorum fratrum votis iure resistere, eorum in Christo laudabilibus studiis lingua ac stylo nos servire flagitantium : quas bigas in nobis agitat Christi caritas.

 

3. 우리는 사람의 말은 항상 시기하는 이들의 비난과 거부 대상이 되어 왔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지의 움직임이 서로 어긋날 때, 우리 영혼의 이해 역시나 서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진리의 편에서 말한 모든 게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그것을 두고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른 것을 선호할 수 있듯이, 불경스러운 오류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쾌한 것이라 여기는 진리에 저항할 수 있으며, 고의로 시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악신(惡神)이 자기 의지를 이성에 복종치 않고 교리 공부를 자기에게 적용하지 않는 그런 불경스러운 이들의 자녀에게 행한 것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장 4절;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2절)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꿈 꾼던 것에 지혜의 말씀을 맞추려고 했으며, 진리의 이성이 아니라, 자신을 기쁘게 하는 걸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의롭지 않은 의지는 진리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을 지키라 부추깁니다. 그들은 진리를 배울 마음은 없고 진리에서부터 귀를 돌려 허망한 이야기로 향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일이란 게 배우기보다 즐기는 게 더 크며, 배울 욕심은 없고, 자신이 욕심내는 것에 가르침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신에서 지혜의 근거를 발견합니다.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23절) 거짓 위선은 믿음에서 벗어나 이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4장 1~2절) 그들은 양심을 잃어버린 신심을 적어도 그들의 말에선 유지될 수 있도록 온갖 거짓말로 그들 자신의 거짓 심신을 불경스럽게 만들고, 거짓 교리로 신앙의 거룩함을 무너뜨리고자 계략을 꾸미고, 그들 자신의 욕망으로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다른 사람의 귀를 가렵게 합니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장 3절) 논쟁하려는 이들은 진리에 맞서 거리낌 없이 다툽니다. 진리의 주장과 의견의 방어 사이는 점점 더 치열한 다툼이 될 겁니다. 진리는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의지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한에서 말입니다.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X, nn.1~2)

3. Quamvis non ambigamus omnem humani eloquii sermonem calumniae atque contradictioni aemulorum semper fuisse obnoxium. Quia dissentientibus voluntatum motibus, dissentiens quoque fit animorum sensus, ut cum omne dictum veri ratione perfectum sit, tamen dum aliud aliis aut videtur aut complacet, veritati vel non intellectae vel offendenti impietatis error obnitatur ac voluntatis invidia resultet. Quam Deus huius saeculi operatur in illis diffidentiae filiis qui non rationi voluntatem subiciunt, nec doctrinae studium impendunt, sed his quae somniarunt sapientiae verba coaptare nituntur : non veri, sed placiti rationem sectantes. Quos iniqua voluntas non ad intelligentiam veritatis, sed ad defensionem placentium incitat: non desiderantes doceri veritatem, sed ab ea ad fabulas convertentes auditum. Quorum professio est magis placita quam docenda conquirere, nec docenda desiderare, sed desideratis doctrinam coaptare. Habent rationem sapientiae in superstitione, quia fidei defectionem sequitur hypocrisis mendax, ut sit vel in verbis pietas quam amiserit conscientia ; ipsamque simulatam pietatem omni verborum mendacio impiam reddunt, falsae doctrinae institutis fidei sanctitatem corrumpere molientes, auriumque pruriginem sub novello sui desiderii dogmate aliis ingerentes. Qui contentioni studentes, contra veritatem sine foedere bellant. Inter veri namque assertionem et placiti defensionem pertinax pugna est, dum se et veritas tenet et se voluntas erroris tuetur.

 

유대칠 옮김 

 

# 많이 부족한 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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