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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는 중세 철학/한글 중세철학문헌

쿠사누스의 <박학한 무지> 1권 1장 유대칠 번역

쿠사누스의 <박학한 무지> 1권 1장
유대칠(토마스철학학교=오캄연구소+서양중세학연구) 옮김
제1장 어떻게 아는 것을 두고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주신 은총으로 모든 것의 본성의 상태가 그 가운데 허락하는 가장 좋은 상태로 있고자 하는 자연적인 욕망이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이 이러한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며, 유용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들은 지식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판단의 선천적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욕망이 좌절당하지 않고 각자의 자신의 본성의 경향성에 의하여 욕구되어지는 대상 가운데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질병을 얻게 된다면,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게 되면 이성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이, 언젠가 판단의 선천적 감각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아마도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전하고 자유로운 지성이 따스한 사랑의 포옹에 의해 파악되어지는 것이 참으로 안다고 이야기한다. 지성은 추론의 선천적 능력으로 모든 것을 조사함으로 만족 없이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즉, 건전한 정신은 이러한 사실을 동의하는 것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의심할 수 없으며 가장 확실한 참입니다. 그러나 탐구하는 모든 이들은 확실한 것이라 여겨지는 것과 비교함으로 불확실한 것을 비례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탐구는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관계를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즉 탐구되는 것들은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추적해 간 근사한 비율에 의하여 비교될 수 있을 때, 우리의 판단은 쉽사리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매개의 단계를 요구 받을 때, 어려워지고 고된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은 수학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수학에서 앞선 명제는 상당히 쉽게 처음 그리고 가장 명백한 원리로 추적하여 되돌아 갈 수 있지만, 그 뒤에 나온 명제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서 처음의 원리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오직 앞서 나온 명제의 매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탐구는 상대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이 쉬운 것이든지 아니면 어려운 것이든지 말입니다. 무한인 한에서 무한은 인식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관계는 어떤 측면에선 같다고 판단하며, 이와 동시에 다르다는 판단하기에 이것은 수를 독립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수는 상대적으로 관계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관계라는 필연적 조건인 수는 양과 마찬가지로 어떤 식이든 실체적으로 혹은 우유적으로 같거나 다른 모든 것 가운데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이 수의 힘으로 구성되고 이해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물체 가운데 정확하게 결합하는 것과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적합한 관계함이란 이 둘은 인간의 이성을 넘어섭니다. 소크라테스가 그 자신이 자신이 모른다는 것 이외에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현명한 솔로몬은 모든 것은 어려워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성스러운 이는 지혜와 이해는 모든 생명을 가진 것의 눈엔 가려져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가장 심오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형이상학』에서 우리가 명백한 것을 본성적으로 마주할 때 일어나는 어려움은 한 밤 중에 올배미가 태양을 볼 때의 어려움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앞선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가윤데 욕망은 헛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우리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박학한 무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배움으로 지식에 정통하였다고 하여도 인간은 무지에서 배운 것보다 더 온전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더 알면 알수록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배움에 열심인 사람이라도 원래 자신의 것인 무지 가운데 가장 잘 알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 보다 더 완전함은 인간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그만큼 더 잘 알게 됩니다. 내가 아는 무지에 대하여 몇 마디를 쓰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이 번역은 유대칠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함부로 인용하지 말고 유대칠판 번역이라 확실하게 표기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