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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교황만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의 흐름을 안으로 중세 신학과 철학에 다가가야 한다.

교황의 흐름을 따라 서유럽의 신학과 철학을 따라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동로마제국의 황제, 즉 로마제국의 황제를 따라 흘러가는 동서유럽의 신학과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중세는 서로마제국의 붕괴로 시작된다. 즉 서로마제국의 황제는 없다. 서유럽은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동로마제국은 신학과 철학의 역사를 이끌어간다. 초기 공의회와 초기 신학과 철학의 대표적인 성과들이 바로 이때 동로마제국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걸 기억해야 한다. 동로마제국은 스스로를 비잔틴제국의 사람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후대 서유럽의 사람들이 자신만이 로마제국의 역사를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름일 뿐, 우리가 비잔틴제국이라 기억하는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로마인이며 자신의 조국은 로마라고 생각했다. 성화상 논쟁을 비롯해서 삼위일체의 논의 그리고 그리스도론 등등 사상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성과들이 모두 그 시대 동로마제국의 영역에서 그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다. 11세기 이후 그리고 14세기까지 서유럽의 신학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성과들이 중세철학사를 채우지만 그들이 정통신앙이라 부르는 많은 성과는 이미 그 이전 오랜 동로마제국 영역 안에서 만들어진 결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중세의 흐름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의 흐름 역시 참고하여 이해하면 매우 흥미롭게 된다. 즉 교황, 즉 로마대교구의 주교만이 아니라, 새로운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대교구의 주교 역시 함께 중세 신학과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존으로 살피면 재미나단 말이다. 물론 이 둘도 황제와 왕 그리고 제후의 역사적 현실이란 조건에서 때론 참 무력하지만 말이다. 아니, 아주 빈번히 아주 무력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는 동로마제국의 사상을 나의 중세 신학과 철학에서 조금도 배제하거나 축소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아주 재미나진다. 정말로 말이다. 

 

유대칠 씀

 

​[대구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고전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삶에 녹아드는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면,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자 한다면, 연락 주셔요. oio-4231-o266로 꼭 문자를 먼저 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