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논쟁을 다루면, 특히 중세 보편 논쟁을 다루면, 항상 포르피리우스의 이름을 듣게 된다. 그가 '이사고게'에서 했다는 물음들... 보편, 즉 공통본성에 관한 물음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중세의 보편 논쟁이라는 식의 이야기... 정말 그런가... 그런데 포르피리우스 자신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겠다고 하는 데...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는 데... 그가 생각하지 않은 것... 지금 자신이 하려는 논의에선 굳이 할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하는 고민을 이어하는 이들이 답을 달면서 논쟁을 이어간다. 사실 중세 신학자들이 포르피리우스의 글을 읽고 보편 논쟁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의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시 자신이 살아간 현실이 그들에게 던진 물음, 즉 삼위일체의 문제와 교회론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보편 논쟁을 다룬 것이다. 즉 보편 논쟁의 시작은 포르피리우스의 질문, 그는 지금 이 논의에서 필요 없다는 그 질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중세 신학자들이 신학자로 살아가며 마주하게 된 신학적 질문이다. 바로 그 신학적 질문에 대한 논의가 보편 논쟁을 일으킨 거다. 중세 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의나 포르피리우스의 진의 같은 게 궁금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궁금한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것에 더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건, 성부, 성자, 성령을 보편 논쟁을 해결하려는 시도였고, 또 하나는 교회론을 보편 논쟁으로 해결하는 시도였다. 즉 중세 철학사는 어떤 문헌의 질문에 신학자가 답하며 이어진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간 현실이 강요한 물음에 그들은 답을 한 거다. 그런 거다.
유대칠 씀
[나는 중세 철학의 대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반론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ㅎㅎ 반론은 그냥 각자 머리 속에 담아 두고 그 반론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이어가며 각자의 생각을 만들어가면 된다. 나는 논쟁을 조금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나와 신나게 철학책, 인문학책 읽고 싶으면 독서 교실에 수강 신청하시면 된다. 논쟁보다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 자기 답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자리다. 수강신청은 0i0-44i4-o262로 꼭 문자 먼저 주시길 바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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