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후 신학부와 법학부 그리고 의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굳이 인문학부를 통과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제 철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신학자(혹은 성직자 혹은 목회자)가 될 수 있고 법학자(법률가)가 될 수 있으며 의학자(의사)가 될 수 있단 말이다. 그러면 사실 누가 철학과에 들어오겠는가? 철학이란 고귀한 학문을 배우고 익혀 신학자와 법학자 그리고 의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철학 하는 이의 편에서 하는 욕심이다. 1750년 할레 대학과 예나 대학은 철학을 공부하는 인문학부 혹은 철학부에 입학하는 이들이 없었다. 학생들은 바로 신학부와 의학부 그리고 법학부에 입학했다. 괴팅겐 대학에서도 665년의 입학생 가운데 단 60명만이 철학부를 선택했다. 학생이 오지 않으니 교수의 월급도 함께 떨어졌다. 철학부 당시 교원은 연봉 100~175탈러를 받았다. 이 정도의 연봉은 당시 신학부의 338~557탈러의 연봉보다 낮았고, 법학부의 200~500탈러보다도 낮았으며, 의학부의 100~200탈러 보다도 낮았다. 상위 학부인 의학부와 같은 곳은 대학 이외의 공간에서도 소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철학부는 그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즉 교수이며 신부 혹은 목사인 신학부의 교수나, 교수이면서 법률가일 수 있는 법학부의 교수 그리고 교수이며 의사인 의학부 교수와 달리 교수이며 철학자인 철학부의 교수를 당시 독일 사회는 그렇게 필요한 존재로 보지 않았고, 돈을 주고 부탁할 일도 많지 않았다. 자연히 철학과는 쇠퇴하게 된다. 서서히 근대 신생 독립 학문의 눈부신 발전 앞에서 철학은 과거와 같은 위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수학과 자연학(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철학은 이들 학문의 성과를 따라가기 힘들었고, 아직도 과거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려는 고집이 가톨릭 계열 대학에선 유지되었으며, 개신교 대학에서도 철학을 이와 같이 신학부에서 독립시켜 버림으로 철학의 독자 생존을 위한 차가운 이별을 선택했다.
그 결과 철학과는 점점 가난해졌다. 돈이 없었다. 입학자는 점점 감소하고 당연히 탁월한 교수를 데려올 수도 없고 양성할 수도 없었다. 정부의 지원도 그렇게 크게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
이때 철학자를 중심으로 한 몇몇 대학의 비판가들이 등장한다. 그러니 과거와 같이 귀족들만 다니는 귀족학교를 만들어 그곳에 자신의 자녀를 보낸 귀족들이 이러한 대학 비판가와 뜻을 함께 했다. 누구나 입학해 교육받고 연구하는 공간, 각국가의 개별 언어로 이루어진 학문이 이루어지고, 고전 속 오랜 과거의 지식을 탐미하고 정리하기보다는 새로운 학문적 개념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던 당시 대학이 그들 귀족에겐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학의 비판가와 귀족들은 대학이란 특수화된 전문 개별 학문의 공간에서 보편학으로 철학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위한 대안의 공간을 궁리한다. 이때 등장한 것이 새로운 학술 기관인 '아카데미'다. 이름부터 고전적이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연상하는 이름부터 말이다. 극단적인 이들은 1760년 이후 대학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생각한 이상적 대학, 즉 중세 파리 대학과 18세기 독일의 대학은 너무나 달랐다. 전문화된 개별 학문이 발전하고 신학과 철학이 분리되어가고, 심지어 1810년 베를린 대학은 철학과를 다른 분과학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학과로 독립시켜 버린다. 이제 철학은 독자적인 박사를 양성하는 독립 학문이 되지만, 오랜 시간 신학과 의학 그리고 법학의 도구로 있던 철학은 자기가 무엇인지를, 자기 자신이 도대체 어떤 행위인지를 말해야 했다.
1920-1930년, 20세기 초 그리스도교 철학인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오랜 시간 신학의 도구로 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철학이 분과학문이 되면서 철학은 신학의 도구로 철학이 아닌 철학으로 철학을 궁리하게 되고 이러한 궁리 속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그리스도교 철학, 즉 계시 진리에 의하여 완성된다는 그 그리스도교 철학이 철학인지 묻게 된다. 이러한 물음은 중세철학에 관한 의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중세 철학의 성과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는 정말 철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신학의 성과가 아닌가? 그렇게 철학과 없던 시절, 신학부 교수에 의하여 신학의 도구로 철학 하던 시대의 철학을 다르게 기억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대학의 철학과 근대 철학과의 시작인 베를린 대학의 철학은 다르다. 그리고 일본 대학의 영향을 받아 시작한 한국의 대학, 그 가운데 철학은 파리대학과도 베를린 대학과도 다르다.
<계속>
2023년 03월 02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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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PR의 시대라니... 이렇게 저를 소개해 봅니다.
저의 책 <신성한 모독자>(추수밭, 2018)은 한겨레 신문 등에 소개되었고, 그 책을 들고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철학사>(이상북스, 2020)은 한겨레 신문, 서울신문, 교수신문 등에 이 책과 관련된 그리고 저의 철학 하는 삶과 관련된 인터뷰 기사가 소개되기도 하였고, 그 이외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많은 신문에서 저의 책 <대한민국철학사>를 소개하였고, 소설가 장정일 작가님의 서평으로 <시사인>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외 2021년 인문사회과학 추천도서에 추천되었고,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청년 위한 100권의 책' 가운데 인문 분야 20권에 선정되었습니다. 2019년 청주 대성초등학교 학부모 철학 강좌, 2019년 광주 시민자유대학에서 중세철학 강좌를, 2019년 경향신문의 시민대학에서 중세철학을 강의했고, 이후 여전히 중세철학을 연구하며 동시에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이란 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가톨릭 일꾼'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또 함석헌 철학에 관한 고민을 <씨알의 소리>를 통하여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치열하게 중세 신학과 철학을 그리고 우리 시대를 위한 철학을 위해 애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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