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subject)'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인식'을 통하여 '주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자기 인식만이 유일한 주체의 인식 수단이었을까?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절대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틀을 마련하고 그 틀 위에서 나는 나가 되어 있음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방식 이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중세 보편 논쟁에서 실재론은 보편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나는 나라는 생각보다 나는 '그리스도교인'이라거나 나는 '사람'이란 식의 보편적 서술의 주어 그리고 보편적 존재의 일원으로 나를 확인받았다. 주어라고 하지만 그 주어는 술어에 의하여 서술되어야 의미를 가진 주어이며, 보편적 존재에 참여할 때 의미를 가진 개체일 뿐이었다.
그러다 13세기 몽골의 침략과 흑사병 등등 민중은 보편적 질서의 무력함을 확인했다. 몽골의 침략과 흑사병 앞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의 그리스도교인이라 이야기하는 교회의 현실 인식 능력은 무력했다. 그리고 막상 하나라고 하지만 교회 권력자는 고난 속 민중의 편에선 너무나 멀리 있는 존재였다.
정말은 저 무력한 교회라는 보편의 구조를 통해서만 나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개인은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의심은 신과 나의 일대일 만남이란 신비신학을 일으키게 하였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손에 의하여 서로 다른 모습의 다양한 신비신학이 등장했다. 결코 에크하르트의 아류라는 식으로 묻어 버릴 수 없는 신비신학이 등장하였다. 그 신비신학은 자기를 버리고 신을 향한다고 하지만, 신과 나의 일대일 만남이란 신비 속에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나의 긍정을 만들어냈다. 술어에 의하여 지배당하는 주어가 아닌 당당한 주어로 '나'가 소리 내기 시작했고, 보편적 존재에 속하지 않으면 무의미할 것 같은 개인으로 '나'가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주교에게 소리치는 여성 신비주의자! 그것은 보편과 술어 중심의 사회에 대한 분노였다.
분노는 주체로의 자기 존재 증명이다.
중세 후기 베긴네를 보자. 일반의 수녀도 아니다. 즉 지금의 수녀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버림으로 신을 향한다고 하지만 그 버림의 행위는 교회와 같은 보편의 구조가 아닌 자기 자신과 신의 일대일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자기 긍정이다. 진정한 자기 긍정은 밖에서 주어지는 이런저런 명령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헛된 것을 버림으로 가능하며, 그것을 버림으로 온전히 나 자신,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상태에서 신과의 만남이 가능하다.
2023년 03월 01일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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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PR의 시대라니... 이렇게 저를 소개해 봅니다.
저의 책 <신성한 모독자>(추수밭, 2018)은 한겨레 신문 등에 소개되었고, 그 책을 들고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철학사>(이상북스, 2020)은 한겨레 신문, 서울신문, 교수신문 등에 이 책과 관련된 그리고 저의 철학 하는 삶과 관련된 인터뷰 기사가 소개되기도 하였고, 그 이외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많은 신문에서 저의 책 <대한민국철학사>를 소개하였고, 소설가 장정일 작가님의 서평으로 <시사인>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외 2021년 인문사회과학 추천도서에 추천되었고,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청년 위한 100권의 책' 가운데 인문 분야 20권에 선정되었습니다. 2019년 청주 대성초등학교 학부모 철학 강좌, 2019년 광주 시민자유대학에서 중세철학 강좌를, 2019년 경향신문의 시민대학에서 중세철학을 강의했고, 이후 여전히 중세철학을 연구하며 동시에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이란 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가톨릭 일꾼'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또 함석헌 철학에 관한 고민을 <씨알의 소리>를 통하여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치열하게 중세 신학과 철학을 그리고 우리 시대를 위한 철학을 위해 애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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