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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중세 지중해 연안의 고민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형이상학의 여정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형이상학의 여정


<Charles Lohr, "Metaphysics," in The Cambridge History of Renaissance Philosophy, ed. Charles B. Schmitt and Quentin Skinn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537–638.을 읽고 난 뒤>


유대칠 오캄연구소장 정리함

 

 

찰스 (Charles Lohr) 논문 '형이상학매우 방대한 분량의 논문이며그 내용 역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는 탁월한 안내서다로는 기본적으로 중세의 정적인 형이상학이 동적으로 변화간다는 관점 혹은 추상적인 중세 세계의파악이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관점을 유지하며 이 형이상학의 역사에 관한 논문을 적고 있다평온한 중세를 벗어나 활동적인 인간의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생각하는 로의 관점은 그의 역사관이기도 한 듯 하다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키는 르네상스 철학자들 룰루스쿠사누스 피치노이며그 장소는 마요르카섬파도바 그리고 피렌체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중세 이슬람 철학의 존재론에서 신은 '필연적 존재자'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자들은 신에게 존재론적으로 의존한다신을 정점으로 그에게 유출 등의 방식으로 내려오며 상하층의 존재론적 위계를 형성한다이러한 존재론적 세계관은 사실 중세 시대 봉건 사회와 닮은 면이 있다또한 교회의 구조에서도 위계가 있어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사고의 구조는 닫힌 사회의 구조이며존재론적으로도 닫힌 존재론적 구조이다존재론적으로 사회 권력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위계의 사회였다위계는 단단하다견고하며 흔들리지도 부서지지도 않아 보인다


여러 종교가 공존하던 마요르카 섬의 룰루스는 닫힌 사회와 닫힌 존재론적 사고의 외부로 가려 한다그는 현실의 어떤 측면에서 신의 삼위일체성을 반영한  쌍의 활동을 이해할  있다고 했다 활동에 의해 규정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일정한 방법으로 영원한 지식을 얻을  있으며 이로 인하여 상승의 경험을 얻을  있다고 보았다이러한 룰루스의 사고는 중세 서유럽에 금방 전해지지 않았다우선 언어적으로 그는 카랄루냐어로 집필하였다그러나 언어의 문제보다 아마도 사회적으로 이미 닫힌 사고에 익숙한 이들이며존재론적이고 종교적으로도 이미 닫힌 세상에 익숙한 이들이다그러니 그 닫힌 사고의 외부로 나아가려는 룰루스의 생각이 쉽게 받아드려지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해 보인다그러나 비잔틴 세계와 교류하며 다른 세상으로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던 베네치아의 파도바 대학은 다를 수 있었다그곳에선 룰루스의 동적 형이상학이 수용될 수 있었다비잔틴과의 학문적 만남은 고정된 세상이 아닌 동적 세상이 가능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새로운 사상이 유입되고 라틴어권 사고의 오랜 정체에 대해 학자적인 목마름도 있었을 것이다이에 서유럽의 중세 지식 체계와는 다른 또 다른 어떤 것을 요구했을지 모른다파도바에서 공부한 쿠사누스는 룰루스의 형이상학과 신플라톤주의의 기본적인 구도를 조합한다그러면서 위계의 정적인 형이상학이 아니라반대의 일치를 외치면 열린 형이상학 동적인 형이상학을 제시한다마찬가지로 피렌체에서도 공의회가 개최되면서 중세 라틴 그리스도교 지식 틀을 벗어난 형이상학이 요구되기 시작했다이를 피치조를 통하여 드러난다그는 기존 스콜라 철학에 만족하지 않았다그는 정적인 닫힌 세계 속의 형이상학에 만족하지 않았다이미 기존 스콜라 철학 내부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알프스 북쪽 대학에선 유명론이 강세를 보였다유명론은 보편이 영혼 외부에 독립적으로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개체 뿐이며경험 사실만을 철학적으로 인정하였다인간 영혼의 불멸과 같은 것은 학문의 이론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 보았다한편 이탈리아의 친 아베로에스노선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철학의 문제에서 종교적인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이에 피치노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을 수용하지만이것이 정점에 있는 신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신의 의지의 결과하고 했다그러면서 신의 사랑을 중심으로 새로운 신플라톤주의를 내세였다과거 위계 속의 서로 다른 층의 존재들이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위계를 구성한다는 것이 아니라사랑이란 요소로 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보았다이러한 입장은 피토 델라 미란돌라에게 영향을 준다그는 성육신과 삼위일체와 같은 신비의 영역으로 간주한 것을 철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당연히 이러한 과도한 이성의 확대는 수용되지 못한다바로 교황에 의하여 금지된다교회는 이러한 동적 형이상학을 수용하지 않았다그들은 신에 대해선 이성으로 이해할 수 도 없고인식할 수 없다 한다이렇게 교회는 강하게 룰루스와 쿠사누스 그리고 피치노의 철학을 거부하였다

 

그러면 동적 형이상학과 달리 정적인 형이상학이라고  중세의 형이상학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자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다시금 서유럽에 전해지면서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란 최신의 철학적 혹은 학문적 지식에 근간하여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려 한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하나의 사물 본질을 고정된 것으로 본다그것은 변화하지 않는다이 자체로 고정된 닫힌 세계의 존재론에 적합하다또 인간의 인식이란 것은 감각에서 시작해서 지성으로 향한다감각에서 출발하지 않은 지식은 가질 수 없다인간의 모든 지식은 감각에서 시작된다감각이 아닌 신앙적인것은 계시가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의하면 신자는 신에 대한 우리의 계시는 요청되게 되어있다삼위일체와 같은 것은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일 뿐이다이것은 피토 델라 미란돌라와 같이 인간 이성으로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존재를 온전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형이상학을 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자의 원리를 대상으로 한다고 보았다신은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존재자가 아니라존재의 원인이기 때문이다신과 피조물은 존재라는 동일한 술어가 적용되어도 사실은 유비에 따른 것이기에 그는 신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형이상학이나 철학이 아니라계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둔스 스코투스는 형이상학을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에 대한 것이라보 보았다존재는 신과 피조물에 일의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존재의 일의성으로 논의되는 신은 계시로 믿어지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아니다.  신앙의 대상으로 신은 계시가 필요하다

 

룰루스와 쿠사누스 그리고 피치노와 같은 이는 동적인 형이상학을 꿈꾼다반면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는 정적인 형이상학을 꿈꾼다이제 파리대학 등을 중심으로  스콜라 철학은 정적이다이탈리아 대학을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을 동적이다이제 논의의 사상적 공간은 로마의 예수회와 스페인의 대학으로 움직인다예수회는 철학에선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른다그리고 신학에선 토마스 아퀴나스를 따른다이 둘을 조화를 쉽지 않았다비그리스도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리스도교도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조화를 위해선 새로운 형이상학이 필요했다베니토 페레이라(Benito Pereira)는 형이상학을 두 부분으로 구분하였다첫번째 부분은 존재에 대한 제일 철학이고 두번째 부분은 신과 지성적 인간 영혼 등을 다룬다이 가운데 전자는 이후 존재론이 된다스페인은 논리학과 자연철학에 형이상학을 신학부의 교과과정에 삽입한다그로 인하여 형이상학에 대한 다수의 저작이 등장한다이 가운데 하나가 바오 수아레즈의 <형이상학 논구>이다이는 당시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수아레즈는 페레이라와 생각이 달랐다그는 통일성을 강조하여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를 다루는 것을 형이상학이라 보았다구분하지 않았다

 

16세기 개신교권에서 철학의 주요한 발전이 이루어진다루터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불신감으로 인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의 연구를 정당성을 부여하기 쉽지 않았다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의 자연철학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당시 의학 등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성과를 무시할 수 없었다형이상학을 무시하고 자연학을 수용하고 그에 근거하여 의학을 이룬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체잘피노(Cesalpino)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신앙과 양립가능하며 문제가 없다하였다그의 철학 저작에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 노선특히 아베로에스노선과 무관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개신교의 성과는 상당 부분  독일의 남부에서 이루어진다그것에선 양주와 친밀했고영주의 뜻이 강하게 반영되었다영주들은 신앙와 이성의 근본적인 불일치를 주장하는 급진적인 입장에 반대하고계시와 이성의 조화 혹은 일치를 원했다이에 따라서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원칙을 다루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러한 일이 논의된다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정되고 정적인 체계를 사회 질서에 적용하고 유지하게 하는 영주교회 그리고 목사를 교육하는 대학을 원했다이때 수아레즈의 <형이상학 논고>가 사용된다칼빈 노선에선 인간이 다가갈 수 있는 신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자연신학과 존재의 원리인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이 분리된다여기에서 후자는 모든 학문의 학설을 정리하고 체계를 정비하는 것으로 활용된다이제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노선에서 이야기한 논증적 학문이라기 보다는 모든 학문의 정비에 필요한 기술(technologia)가 된다이들에게 더 이상 존재론은 과거와 같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수아레즈 이후 대학 내부에 스콜라 철학을 이어져간다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형이상학도 그리고 현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형이상학도 여전히 존재에 대한 고민을 논증적으로 이어가고 있다로는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그 여정을 매우 잘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