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room)에 들어간다. 방은 열린 공간이다. 닫힌 공간, 즉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공간으로 ‘방’이라고 부를 순 없다. 상상해보자. 들어가기도 나가지도 못하는 안방이나 서재(書齋)가 가능한가? ‘방’이 되기 위해선 열린 공간, 즉 하나의 공간이 자신을 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열림으로 무엇이 들어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방이다. 이를 위해 방은 꼭 ‘문’(門)이 있어야 한다. 문이 없단 말은 열린 공간이 아닌 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방이 아니다. 문이란 장치는 외부와의 소통 수단이다. 문을 통하여 무엇인가 들어오고 또 나간다.
빈 방을 본다. 빈 방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다. 그러나 진정 비워진 공간일까? 문을 통하여 들어온 이들이 남기고한 수많은 몸짓들이 가득할지 모른다. 몸짓의 주체는 문을 통해 나갔지만, 그곳에 남겨진 몸짓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며, 기억이란 이름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오랜 성당이란 공간의 방도 그러하고, 오랜 절의 공간이란 방도 그러하다. 그 속엔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궁리하고 기원하며 바라던 그 몸짓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몸짓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며 기억이란 이름으로 인식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한 명의 철학자가 있다. 그의 철학은 하나의 방이다. 그 방에 수많은 철학자들이 들어와서 무엇인가를 가져가고 가지고 온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그 방은 오랜 시간 살아있는 방으로 기능한다. 열려있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인 포르피리우스(Porphyrius)와 교부 철학자인 보에티우스(Boethius)가 그 방에 들어가 고민했고, 중세 이슬람 철학자인 이븐 루쉬드(Ibn Rushd)와 이븐 시나(Ibn Sina)도 그 방에 들어가 자신의 방을 꾸미고 만들 소재를 가져가기도 하고, 그 방에서 다른 이들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에 머무르기 가장 적절한 것인가를 두고 논쟁하기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그리고 오캄(William Ockham)도 다르지 않다. 이들도 한결같이 그 방에서 고민하고 그 고민하여 얻은 자신의 결실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을 만들었다. 이렇게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방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하고 논쟁하던 공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이 더 이상 어떤 쓸모도 없어 버려진 유령의 집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방에서 고민하고 궁리한다.
열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은 독특한 다양화 과정을 걸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에서 궁리하던 이들은 그 문을 열고 나가 자신의 방을 만들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을 참고한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도 다르다.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서 기둥도 다른 곳에 세우기도 하고, 액자의 모양과 문의 위치도 달리한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에서 궁리한 이들은 저마나 독립하여 저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과 유사한 또 다른 의미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들을 만들지만, 이것은 동일한 것의 복제가 아닌 독특한 방식의 다양화가 이루어진다.
근대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만든 방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중세도 그렇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둔스 스코투스도 저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과 자신의 방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개성에 따라서 혹은 쓰임에 따라서 다르게 변화시킨다. 그 변화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에서 나온 다양한 서로 다른 방들의 개체화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서로 구분되어 존재하는 근거가 된 것이다.
방은 다양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이 있고, 플라톤(Platon)의 방이 있다. 이 두 방을 오가며 새롭게 만들어진 플로티노스(Plotinos)의 방도 있다. 그뿐 인가? 철학사엔 수많은 방들이 있다. 각자의 철학자들은 저마다의 방을 만들고 그 가운데 다양한 진화를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들어와 논쟁하기도 하고, 궁리하기도 한다.
사상사라는 지형도를 채우고 있는 그 수많은 방들 가운데 남아있는 추억들은 영혼 속이 남아있는 추억의 단상이 아니라 고전 문헌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억이 아닌 고전에 대한 연구로 인식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고전에 대한 연구는 결국 사상사의 방에 가득한 그 많은 몸짓을 기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또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 그 방에 가득한 고민과 궁리의 몸짓을 인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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