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지중해 연안의 고민들
유지승
(토마스철학학교)
20세기 후반, 아직 대학생인 나는 세계 철학사를 기획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에 겁 없이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원 공부를 하고 석사가 되고 학회와 학술지에서 논문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작은 인간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읽어야할 책들은 너무나 많았고, 정리하며 확인해야할 논문과 학술지는 또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거기에 외국에서 최신의 수준 높은 연구물을 일군 이들을 보면서 혼자 대구 대봉도서관이나 중앙도서관을 돌아다니며 공부한 나의 수준이 함 없이 형편없음도 알게 되었다. 그런 자각 속에서 나는 남들에게 보이는 공부가 아닌 나에게 당당한 공부를 선택, 아직 강압 받았다.
나는 후기 중세 철학자 오캄을 중심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근대의 구분 없이 자유로이 나의 관심에 따라서 흘러가며 공부 한다. 오캄을 공부하려니 버얼리와 뷔리당을 알아야했고, 이들을 알기 위해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을 알아야 했다. 또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강의 헨리를 이해해야 했다. 둔스 스코투스와 강의 헨리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13세기와 14세기 서유럽의 철학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인 아베로에스와 아비첸나 그리고 알 파라비 등의 글을 일어야했다. 그 이외 14세기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금 석사 때 읽던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을 꺼내어 읽고 공부해야했고, 그를 조금이라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알베르투스 마뉴스와 보나벤투라 그리고 시제 브라방과 할레의 알렉산더에 대한 이해도 요구되었다. 오캄을 연구하다가 서유럽을 넘어 중세 무슬림으로 흘러가고 중세 무슬림은 다시 중세 유대 철학으로 그리고 서유럽 철학에 대한 궁리는 당시 다마쉐누스와 같은 동로마 제국의 철학자들에 대한 궁리도 흘러갔다. 석사 이후 지금까지 나의 연구는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었고, 내가 학술지를 통하여 발표한 논문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공부하고 다시 나의 입장에서 해석하며 나의 인문학적 지식, 즉 지중해를 둘러싼 오캄을 둘러싼 이 다양한 논의를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것을 일종의 중세 지중해 연안의 철학과 신학 등을 둘러싼 고민의 역사책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은 바로 그러한 고민의 일부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오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2003년, 나는 미혼의 20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결이와 은결이 두 아이의 아빠이고, 한 여인의 남편이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다. 그뿐인가? 2009년 1월 나는 대구 문화방송 앞 큰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뇌출혈이 있었고, 왼쪽 안면 골절과 왼쪽 발목이 부러지고, 여기저기에 외상을 입었다. 그렇게 2009년 병원에서 수술 몇 번을 하며 보냈다. 병원은 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때의 변화는 지금 나의 철학과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때 날 찾아온 첫 아들 한결이는 나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가져다준 희망이었고, 그때 나의 곁에서 날 응원해준 아내는 사랑이었으며, 밤낮으로 찾아와 돌봐준 부모님은 눈물의 고마움이었고, 나 대신 이런 저런 일을 봐주며 늦은 밤이라도 나의 일이라면 찾아와준 동생은 든든함이었다. 병원에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하며 무지의 자각을 이루었다면, 병원에서 왼쪽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나는 주변의 고마움을 자각하게 되었다.
2012년 둘째 은결이를 통하여 나는 다시금 더 힘차게 웃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미래 가운데 더욱 더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나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누구 몇 명이나 읽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나의 노트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그 속에서 나만의 기억으로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이 글의 독자의 수보다 적어도 이 글을 읽으며 고민한 나의 고민 앞에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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