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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유학장의 머리엔...

조선 성리학의 한원진과 교회법의 그라티아누스

조선 성리학의 한원진과 교회법의 그라티아누스

명나라가 망하고 이제 동아시아에서 유교 국가는 조선 뿐이게 되었다. 조선만이 공자의 유교 사상이 지도 이념인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위험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조선 사회는 서서히 변화되고 있었다. 이에 더욱 더 확고한 성리학의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더욱 더 확고한 주희, 즉 주자의 이념이 구현되는 국가를 구성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주희의 저작 자체에 이런 저런 모순들이 보이는 것이다. 조화되지 않아 보이는 여러 이야기들이 발견된 것이다. 송시열과 같이 주희는 수정을 거부하는 절대 지성인 한에서 조선의 선비들은 모순들 조차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희의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 모순들을 조화하기 위한 새로운 주자학이 필요했다. 아미 조선 후기 이미 많은 성리학자들은 주자학이라기 보다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주자주의가 성립된 이상 그의 모순도 모두 조화할 수 있는 새로운 주자주의의 교과서가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한원진이다. 그리고 그가 이 일을 해낸다. 바로 <주자언론동이고>다. 이 책으로 한원진은 송시열을 이루고자 한 것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책은 후기 조선성리학의 탁월한 업적이며, 성과다.
갑자기 유럽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그라티아누스가 생각난다. 그의 저작은 <부조화되어 있는 캐논(교회법)의 조화>(Concordantia Discordantium Canonum)다. 말 그대로다. 그는 대립되고 조화되어 보이지 않는 카논들을 서로 조화시키려 했다. 그는 로마법과 교황의 교령등 그리고 공의회와 주교회의 문허와 그 이전의 법과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이러한 작업으로 인하여 등장한 <부조화되어 있는 캐논의 조화>, 흔히 <그라티아누스의 교령집>으로인하여 이후 교회법이 볼로냐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가르쳐졌다.
무엇인가 모순되어 보이는 것을 하나의 통일성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특히 둘 다 참된 것으로 믿는데, 그 참된 것 사이에 조화되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하나를 포기할 수 없으니 말이다. 주희라는 한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르게 흘러갈때 이 사이의 조화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교회법이란 하나의 논리 속에서 서로 다른 논리를 가져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하나의 조화 속에서 구성할 것인가?

한원진은 이이에서 송시열로 이어진 노선을 더욱 더 단단한 초석 위에 서게 했다. 물론 이 시대에 미수 허목과 같이 주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주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했지만, 적어도 한원진이 하려고 한 것! 조화 가운데 일치를 추구한 것은 다음 단계의 철학을 구성하기 위한 초석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라티아누스도 그렇다. 그에 의하여 교회법은 또 다른 차원에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나는 동양 사상도 잘 모르는 무식한 놈이고, 교회법도 그냥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전부인 무식한 놈이다. 혹시 나의 무식을 욕하고 싶은 사람 있지만, 욕은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냥 무식할 뿐이다. ㅎㅎ

유대칠 오캄연구소 & 토마스철학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