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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유학장의 머리엔...

철학은 과거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과거에서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살아있는 지혜를 준다. 만일 그의 지혜가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온전히 과거의 이야기로만 들린다면 예수란 존재 자체도 과거형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는 지금도 현재형이다.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여전히 예수의 가르침은 많은 이들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현실에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살아있다. 
철학도 그와 같아야 한다. 철학이 과거형으로만 존재한다면, 그 철학은 더 이상 철학으로론 의미가 없다.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철학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지금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현재형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철학이다.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과거형으로 사라지지 않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움직이고 있는 철학이어야 한다. 그래야 철학이 철학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우에 따라 한 철학자의 철학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형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형은 타락이 아닌 새로움을 향한 창조적 몸짓이다. 변형되어 가면서 그 시대 그 공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그 철학은 철학으로 존재하게 된다.
성탄이다. 가난한 자로 우리에게 찾아온 예수는 가난한 이들의 언어로 우리의 벗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지배자가 아닌 우리의 벗으로 다가와 스스로 가난한 시간 노동자의 시간을 보내며 그 시대 그 공간의 아픔을 알고 그 아픔을 담은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철학도 그러해야 한다. 철학도 가진 자들의 지적 허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부른 이들, 스스로 누리고 살아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지적 허영이나 쓸데 없는 계급 의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그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의 아픔을 담아내는 눈물을 머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철학은 그 시대 민중의 철학이 된다. 
성탄...철학하는 이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2016년 성탄의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