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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유학장의 머리엔...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때... 그 합리성의 기준을 달리하면 보일 수 있다.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때... 그 합리성의 기준을 달리하면 보일 수 있다.

... 나는 그렇더라...


모로코의 잔인한 술탄인 물레이 이스마일(1646~1727)은 여러 명의 아내에게서 888명의 자식을 두었다. 브라질의 막달레나 카나우바는 열세 살에 결혼을 해서 32명을 가졌다. 지금으론 엄청나지만 이스마일의 눈엔 그냥 장난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반전이 있다. 카나우바는 여성이다. 그는 32명의 생명을 임신했던 셈이다. 여성은 남성과 다르다. 임신 기간도 있고, 임신한 아이의 수도 제한되어 있다. 그리 본다면 32명은 정말 대단하다. 진짜 대단하다. 2015년까지 100명의 자녀를 가지겠다고 공언한 아랍 에미레이트의 예순 살에 다리가 하나뿐인 다드 무하마드 무라드 압둘 라만이 있고, 네 번째 아내에게서 21번째 아이를 가진 인도의 농부인 아흔 살의 나누 람 요기 역시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 중이다. 특히 람 요기는 “여자들은 날 사랑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했으며, “자식을 더 많이 낳고 싶어, 십년을 더 살 수 있고, 백살이 될 때에도 자식을 낳고 싶어라고 했다.
대단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식을 많이 낳으려고 할까? 그것은 남성 혼자서 결정할 순 없는 문제다. 물론 이러한 국가들이 대체로 남성이 여성에 비하여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성이 자녀를 많이 가질 수록 남성다움의 과시로 여겨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자녀의 수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고민한다. 경제적인 것을 고민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많은 것을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렇게 많은 자녀를 가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많은 자녀는 재산의 상속에서 많은 나누어짐을 낳을 것이다. 분배되는 재산이 적어진단 말이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가 합리적으로 이해되기 힘든 것은 이들의 이러한 행위 자체가 자본주의의 틀 외부에 있어서가 아닐까?
돈이 되지도 않고, 키울 돈에 대한 고민에 대한 합리적 사유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 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 그들의 행위 자체가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돈으로 세상을 파악하려는 우리에겐 그저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우리의 합리적 기준은 돈이기 때문이다.

유 암브로시오 씀


수전 핀커, <성의 패러독스> , 291쪽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