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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는 중세 철학/한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 나눔은 하느님 자녀의 징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 나눔은 하느님 자녀의 징표입니다.


"자 어디 한번 사랑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볼까요? 그대가 아직 형제를 위해 생명을 내어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지금 그대가 가진 제물 가운데 얼만큼을 형제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사랑이 그대의 맘을 움직이지요. 그것은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마음 깊이 올라오는 자비 때문이지요. 그렇게 가난하여 힘든 상황에 형제를 염려해야 합니다... 만일 그대가 이 세상의 소유물을 소유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비심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게 자신의 삶에 무슨 소용인지 의문하나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괴로움으로 아파해도 돈을 줄 것인지 망설이나요? 혹시나 그대의 맘이 그렇게 의문하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 속엔 하느님이 머물지 않으시며, 그대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이가 아닙니다." (요한서간강해 5강해 12절)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입니다.

나누지 않고 이를 두고 고민한다면, 그의 마음 속에선 하느님이 있지 않으신 것이고 그는 하느님 앞에서 다시 태어난 이도 아닙니다. 하느님에게 다시 태어나 하느님 가운데 머무는 자는 자신의 것만 고유하고 가난하고 아파하는 이에게 자신의 재물을 내어 놓는 것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그것을 내어 놓아도 그것으로 자랑질삼지 않습니다. 그냥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녀로 당연한 것이니 말입니다.

스스로 신앙을 가진 이라면서 비정규직의 아픔과 그들의 눈물을 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물과 그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에게 분노할 것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다"


2015년 7월 28일 오캄연구소 유대칠 소장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