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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장의 고개넘기/허수한국학연구실의자리

추만 정지운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전>

추만 정지운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전>

 

허수 유대칠 적음 (토마스철학학교 허수강 연구원)


들어가는 말.

정지운(1509-1561)은 김정국과 김안국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혔으며, 이들이 죽자 다른 스승을 모시지 않고, 스스로 독학하였다. 그의 문하에는 자신의 동생인 정지림과 처남이 안홍 등이 있었으며, 안홍이 그의 학통을 이어 받아갔다. 그의 학문적 수준은 이미 넓리 알려져 이황과 이항 그리고 김인후 등의 학자와 교류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중종 38(1543)에 작성한 천명도도해가 있다.

 

사상.

정지운의 철학은 후에 이황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권근 이후 그는 체계적으로 다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의 천명도이며 도해이다. 이는 권근이 천인심성합일도설를 작성한 이유와 같이 인간이 어떻게 하늘과 합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선행 작업으로 하늘의 존재론적 위상을 유명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천명도이다. 정지운에게 하늘은 곧 리()이다. 리는 네가 덕을 가지는데, 그것은 원(), (), (), ()이며, 이는 각각 시작함자라남그리고 여물음이룸이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만물을 생성하게 한다고 정지운은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천도(天道)인 것이다. 이러한 하늘의 운행을 통하여 하늘은 각각의 개별자에게 그 고유한 본성()을 받게 된다고 보았다. 간단하게 그도 전통에 따라서 성을 보편적 원리인 리가 개별자에 주어진 것으로 본 것이다. 성이란 하늘의 논리에선 개별자에 명한 것이고, 개별자로서는 하늘로 받은 것이다. 그러니 성과 개별자는 각각의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의 이치는 하나의 리이다.

 

하늘의 실체()는 모든 개별자에 성을 부여하는 리이며, 하늘의 작용()은 만물의 형태를 이루게 하는 기()이다. 이와 같은 논리에 의하면, 리는 기의 실체이고, 기는 리의 작용이다. 그는 이렇게 리와 기의 관계를 실체와 작용의 관계로 설명한다. 이 세상의 모든 상이한 개별자는 하나의 실체인 리가 있으며, 이러한 하나의 실체의 상이한 작용인 기의 차이에 의하여 일어난 것으로 정지운은 이해했다. 그리고 인간과 다른 사물의 차이도 기의 차이로 설명하였다. 인간은 바른 사물 혹은 존재자보다 더 정하고 통한 기를 가졌으며, 다른 것은 편향되고 막힌 기를 가진 것이라 한 것이다.

 

그에게 마음은 리와 기의 합성체이다. 그리고 리는 하늘의 네 가지 덕인 원(), (), (), ()을 네 가지 인간의 성과 함께 배열하여 이해한다. ()과 시작함’, ‘()과 자라남’, ‘()와 여물음그리고 ()와 이룸을 함께 두었다. 그렇기에 사덕은 리와 관련되는 것이다. 반면 칠정은 기와 관련된다. 이는 칠정을 태극의 오행과 병행하여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우주의 모든 개별자는 보편적 원리인 리로부터 그 고유한 본성을 받은 것으로, 존재론적으로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리와 개별자의 원리인 성은 병행한다고 보았다. 태극은 우주의 원리인 리이며, 이러한 리가 개별자에 부여한 것이 성이라면 이들은 존재론적으로 구별되어지지 않으며 단지 논리상 구별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태극 가운데 어떤 규정이 없듯이 성 가운데 그러한 것이 없게 된다. 하지만 태극에서 음과 양 두 기가 나오듯이 선악이란 규정은 마음이 발한 후에 가능하며, 이 이전에 인간의 본성은 선악으로 규정되어질 수 없다. 마음이 발한 후에 기가 작동하여 인간 본성, 즉 성을 가로막음으로 선악의 규정이 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선악의 문제는 기의 문제이다. 마치, 태극과 음양이란 양기의 관계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그는 경()을 강조한다. 경으로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리에 준하여 행함에 인간 수양의 목적이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논의는 이황에게 영향을 준다. 이황은 리와 기의 관계에 관한 논의에서 정지운과는 다른 논리를 전개한다. 정지운은 리와 기를 실체와 작용의 관계로 이해함으로 일원론적인 면을 강조하였지만, 이황은 리는 장수와 같고, 기는 그 졸개와 같다고 하여, 이원론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황의 논의를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