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김창흡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전>
허수 유대칠 적음 (토마스철학학교 허수당 연구원)
들어가는 말.
김창흡(1651-1708)은 “인물동이성론”의 첫머리에 선 인물이다. 이 문제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리(理)가 기(氣)에 주어져 개별자의 성(性)이 되어진다는 성리학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과 사물의 성은 동일한 것이 된다. 단지 개별적 차이가 기에만 한정된다면, 인간과 사물의 본질적 차원에선 차이가 없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이황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리의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과 사물의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이것이 조선 성리학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인 인물동이성논쟁의 내용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에서 김창흡은 시작에선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노론과 여러 가지로 관련되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핵심인물인 김수항이었다. 또한 그의 형 김창집은 임인사화에서 희생된 노론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노론의 인물인 송시열을 만나 수 십 년 간 교류하였지만, 많은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 자신은 자신의 장인인 이단상의 문인이라 한다. 그는 낙론의 문을 연 인물이며, 그의 논의는 이재에 의하여 계승되어 낙론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였다. 하지만 그 자신의 논의는 난론의 논의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에 대하여 다루어보자.
사상.
낙론(洛學)은 인간과 사물의 성이 동일하다고 보았으며, 호론(湖學)은 인간과 사물의 성이 다르다고 보았다. 그러면 낙론의 시작에 영향을 준 김창흡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는 기본적으로 이이의 노선에 선 철학자이다. 그도 기호학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호학파의 한계를 김창흡은 피해야했다. 이이의 노선은 리의 주재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리가 어떤 형태든 기에 의존한다는 논의는 마치 기대승의 논의와 같이 리가 그저 기의 단순한 법칙이 되어버릴 위험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황의 노선에선 이이의 논리를 결코 수용하지 않았다. 이이의 노선, 즉 기호학파에 선 김창흡에게도 이러한 한계는 극복의 대상이었다. 이런 김창흡은 부분적으로 이황의 논의를 수용한다. 이러한 김창흡의 논의는 사단칠정의 논의에서 드러난다. 그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주리와 주기로 해석했다. 이이는 맑은 기에서 발한 것은 선이며, 탁한 기의 발은 악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악에 관한 이러한 이이의 논의에서 선악은 기에 의하여 결정이 되며, 리는 단지 수동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여기에서 리의 역할은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김창흡은 리가 규정되지 않은 것이기에 규정됨에서 기를 타지만, 기도 리의 명령을 필요로 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그는 이이에 온전히 기울어지지 않으며, 이황의 논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는 성은 리가 기에 부여될 때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 보편적 리가 개별자 가운데 주어질 때, 즉 성이 가능한 것이다. 개별자는 리와 기의 합에서 가능한 것이며, 기가 없다면 개별자는 사라지고, 개별자에 주어진 리인 성도 사라진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이다. 여기에서 인물동성은 인간과 사물의 성이 같다는 것이다. 성이 리에 개별자에 주어진 것이라면, 성은 존재론적으로 리와 병행하는 것이고, 이렇다면, 리가 각각의 개별적 차이를 가지는 기에 따라 주어진 성도 리와 같이 같다는 것이 귀결될 것이다. 인간성(人間性)과 물성(物性)은 보편적 원리인 리가 차이를 가지는 각각의 기에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기의 차원에선 서로 다르지만, 리의 차원에선 같은 것이며,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물동성론의 핵심이다. 반면 인동이성론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리가 부여될 때, 그것을 수용받은 기는 그것을 제대로 구현할 수도 있지만, 구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성의 차이로 이어진다. 성이란 기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의 차이는 곧 성의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호론, 즉 인물이성론은 성은 곧 기에 내재한 리라고 하면서, 기의 차이에 따른 성의 차이를 말한다. 반면 낙론, 즉 인물동성론은 성은 곧 리라고 한다. 이러한 차이에서 호론은 인간성과 물성을 그리고 중화와 오랑캐 그리고 성인과 범인은 존재론적 차이를 가진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낙론은 성인과 범인의 본질적 본성은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낙론의 논의는 남인과 소론 그리고 소북의 인물들이 수용하여, 탕평을 논의하는 기초가 되었다. 낙론에 의하면 모든 인간의 본성은 동일하게 선하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인간 본성의 회복을 통하여 사회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평등으로 이어지고, 타인에 대한 포용으로 이어져 탕평이란 정치적 행위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 것이다.
김창흡에서 이러한 논의는 그저 동일한 문제의 상이한 측면에로의 다가감의 차이뿐이다. 기질의 차이에서 보면, 인간 본성은 다르다고 여겨지지만, 리의 통일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인간성과 물성은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인간성과 물성의 논의는 이중적인 관점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는 오랜 시간 그가 초지일관 유지한 태도이지만, 그 강조점에 있어서 초기의 「상우재문목」을 제외하면 리의 통일성에 의한 관점에 더 무게를 두었다. 이러한 논의는 이후 호론의 한원진과 낙론의 이간등의 논의에서 더욱 더 분명하게 갈라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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