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전>
허수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허수당 연구원)
들어가는 말.
이황(1501-1570)은 연산군(1501년)에 태어난 조선 성리학의 절정에 선 철학자이다. 그 이후 철학은 거의 가 그의 철학적 논의와 무관할 수 없었으며, 이는 20세기 대한민국의 성리학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이다. 그는 조선 성리학의 절정이었으며, 그 이후 그는 하나의 권위로 이해되었으며, 그의 철학은 철학함에 기초였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일찍 아버지를 여이고 홀로 농사와 누예치기로 생계를 일군 홀어머니와 성장하였다. 6살에 이웃 노인에게 ?천자문?을 익혔고, 그 후 숙부에게 ?논어? 등을 배웠다. 그는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길로 나선다. 충청도어사와 사헌부장령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학문을 위하여 중앙 관직이 아닌 풍기군수과 단양군수와 같은 외직을 지냈으며, 신병을 이유로 벼슬을 떠나 학문에 힘썼다. 이후로도 여러 번 정부는 그를 불러 들렸지만, 그는 은퇴하고 학문에 힘썼다. 그는 주자학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주자서절요?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성학십도? 등을 비롯하여, ?계몽전의? 그리고 ?자성록? 등을 남겼으며, 김성일, 류성룡, 조목 등과 같은 뛰어난 제자들을 남겼다.
사상.
이황의 철학은 주자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완성시킨 의의를 가진다. 그는 리를 기의 수장(氣之帥)이며, 기는 리의 병사(理之卒)라고 하였다. 이것은 리가 기를 주재하며, 기는 리에 순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리는 동하게 하는 것이고, 기는 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그에게 리기의 구별은 동정하게 하게 하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에 있다. 여기에서 기의 동정은 리의 동정에 근거한다. 이러한 논리는 리는 기를 낳고,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리의 주재적 작용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희의 주자학이 가진 문제를 조선 이황의 성리학이 해결한 한 부분이다. 주희는 리는 동정이 없으며, 단지 정하다고 하였는데, 또 다른 부분에는 리에 동정이 있으므로 기에도 동정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리에 대한 서로 다른 정의가 주어진 논리적 문제를 가진다. 이러한 문제 가운데도 주희는 대체로 절대적 원리로써 그리고 절대자로써 리는 운동하는 것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절대자가는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황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이황은 운동과 존재를 반대 개념으로 보지 않으며, 리의 운동을 긍정하였다. 이로써 주회의 주자학과 이황에 의하여 극에 달한 조선 성리학은 차이를 가지는 것이다. 이황은 리의 운동을 긍정하면서, 리가 운동하여 기를 낳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존재론적 입장은 이황의 철학이 중국에서 유입된 철학이 조선의 고유한 철학적 사고로 발전해 나아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황의 리와 기에 관한 논의는 고봉 기대승과의 논쟁 속에서 더욱 더 체계화되며 그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기대승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인 ?맹자?에서 유래한 사단, 즉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과 칠정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칠정이란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 욕심(欲) 혹은 기쁨(喜), 노여움(怒), 근심(憂), 생각(思), 슬픔(悲), 놀람(驚), 두려움(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이 종국에는 같은 것이라고 한다. 사단이란 칠정 가운데 선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칠정이란 선한 것과 악한 것 모두는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칠정만 외부의 감각에 의하여 내부에서 응함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단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칠정과 사단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추만 정지운과 같이 리를 사단과 기를 칠정과 관련시켜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황은 이러한 기대승의 논변의 논리성을 상당히 인정하면서 사단과 칠정을 분리하여 설명하려는 마지노선(Maginot線)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분명 기대승의 논박은 상당한 논리성을 가지고 있다.
타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과 옮고 그릇을 아는 마음(시비지심)과 겸손한 마음(사양지심) 그리고 거짓을 가려 아는 마음(시비지심)이란 사단은 기쁨과, 노려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음, 욕심이라는 칠정과 다른 것인가? 기대승은 칠정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면 하면서 그 가운데 선한 것만을 끄집어 말하는 것이고, 칠정은 선악 모두를 싸잡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이러한 논변이 타당하다면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분리하여 설명하려는 것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이황은 기대승의 반론에 영향을 받아 리와 기를 사단과 칠정으로 나누어 설명하던 것을 포기하고, 사단이나 칠정을 모두 리와 기가 발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논의한 대로 그는 사단과 칠정을 분리하여 설명하려는 마지노선을 사수한다. 즉 사단은 리와 기가 다 함께 발한 것이지만 리가 주된 것이라고 반면 칠정은 기가 주된 것이란 것이다. 또한 사단은 그 근본이 인간 본래적 본성에 있으며, 칠정은 그 기질의 본성에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황은 사단이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란 것을 수정하여, 사단이란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른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리가 따른 것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왜 이황은 기대승의 논변에 마지노선을 정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사단과 칠정이 그 근본이 서로 다른 이유이다.
인간에게 경(敬)이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는 개별자의 본성인 성은 곧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리와 같다고 보았다. 즉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였다. 인간이란 순수하게 선한 리로부터 성을 받은 존재이다. 그리고 성과 리는 존재론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질이란 상황을 넘어서 인간의 이성, 즉 그 선한 본성에 돌아가야 하며, 그러한 돌아감의 수단이 ‘경’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경의 철학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의 맘으로 수양을 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단으로 자신의 행동을 이끌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각각의 사람이 가지는 개별적 차이인 기질의 차이를 넘어서 성인의 경지, 즉 인간의 이상향인 완전한 인간이 되어 질 수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는 대학에 등장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근대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하여 도덕의 문제를 다룬다. 도덕의 당위성을 위하여 그는 왜 해야하는가의 문제를 넘어서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도덕을 본다. 왜 도덕을 지켜야하는가? 그것은 칸트에게 행복하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덕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황은 어떻게 이를 볼 것인가? 그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인간 본성에 적당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우주 속에 사는 인간이 혹은 우주의 원리를 받아 사는 인간이 우주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철학적 확신은 기대승의 논변에서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마지노선을 긋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황은 개별자의 차이는 기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정한 기는 인간을 편하고 색한 기는 사물 그리고 그 사이에 금수가 있다고 했다. 서양 중세 철학에선 보편자가 어떻게 개별자로 드러나는가의 문제가 핵심적 문제였다. 모든 인간을 인간으로 불리게 하는 그 인간이란 보편자가 어떻게 각각의 차이를 가진 개별자가 되어지는가의 개별화의 원리에서 많은 철학자는 질료를 이야기했다. 간단하게 각각의 인간은 인간이라는 보편자의 관점에서 같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질료(재료)의 측면에서 서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모든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리’가 각각 다른 기에 주어져 각각의 개별자의 ‘성’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모든 개별자는 그것의 보편적 원리인 ‘리’의 측면에선 동일하지만, 그 기의 차이로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이황은 돌, 말 그리고 인간이 가지는 각각의 본성(性)인 석성(石性)과 마성(馬性) 그리고 인간성(人間性)은 보편적 원리인 리가 색하고 편한 기에 주어진 것이 석성이고, 편하고 색한 것 가운데 정한 기에 주어진 것이 마성이고, 가정 정한 기에 주어진 것이 인간성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황이 개별자가 보편의 관점에선 같지만, 개별자로 서로 다른 것은 기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황에 의하면, 리는 보편화의 원리이고, 기는 개별화의 원리로 이해될 수 있다. 간단하게 리에선 같고, 기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논의는 이후 이재와 김창흡 등에 의하여 다루어진 조선 성리학의 주된 논의 가운데 하나인 인간과 사물의 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다루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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