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의 철학
허수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허수당 연구원)
들어가는 말.
정몽주는 조선에 반대한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며, 조선 유림(儒林)의 모범이 된 인물이다. 그의 집안은 영천 등에 거주하며 무신정권에서 무신정권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중앙에 진출한 적이 없는 평범한 사족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뛰어난 정치가이며, 외교관으로 고려 말기의 마지막 충신으로 역사 속에 기록되어있다.
조광조, 류성룡, 송시열 등이 입을 모아 칭송한 동방 성리학의 시조가 바로 정몽주이다. 그의 절개는 그를 죽인 조선의 초기 세력들에게도 칭송의 대상이었으며, 이는 조선 태종 1년에 정몽주에게 '문충공'의 시호를 내리고 높이 평가한 것을 보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고려 말기 신진 개혁 세력으로 스스로의 조국을 주자학의 이념으로 새롭게 구축하려 하였지만, 그 근거는 국가 자체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것에는 반대하였다. 그는 개혁은 인정하였지만, 혁명이나 쿠테타를 인정하지는 않은 것이다.
정몽주는 특별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주자학을 익혔으며, 그 가운데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대학?과 ?중용?이었다. ?중용?은 ?심성? 수양에 대학은 실천에 의미를 두고 이에 깊이 공부하였다. 그렇다고 다른 경전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삼봉 정도전은 그의 ?대학?, ?중용? 그뿐 아니라, ?논어?와 ?맹자? 등에 깊은 지식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역경?에 대해서도 탁월한 이해를 가졌다는 기록이 여럿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자학에 관한 직접적인 문헌은 그리 많이 많아 있지 않으며, 지금의 우리는 그의 몇몇 글 속에 녹아든 철학적 조각을 모아 다시 맞출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그 정도에서 마칠 뿐이다.
사상.
정몽주는 당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불교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에게 유학의 가르침은 일상의 것이며, 일상을 떠난 것은 아니다. 정몽주의 철학은 철저하게 현실 참여적인 것이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벗어나서는 진정한 철학적 논의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학문이란 앎을 실행하는 것이며, 이러한 앎은 현실에 관한 앎이어야했다. 『대학』에서 정몽주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읽었을 것이다. ‘격물치지’에서 ‘격물’이란 인식대상인 ‘물’(物)에 인식주관인 마음이 이르러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지’란 사고의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유추해서 인식대상인 사물의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를 볼 때, 『대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식론의 지식은 사물에 다가가는 것이며, 그 이후에야 그 사물에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론은 행위에로 이어져야한다. 주자는 『대학혹문』에서 『대학』과 『소학』의 관계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소학』을 익힌 이후에 『대학』을 익혀야하는데, 그것은 청소와 같은 일상의 일에서 분명한 답을 얻고 그 후 육예(六藝), 즉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익히고 나서 『대학』을 공부해야한다고 한다. 이도 격물치지에서 사물에 대한 다가감에서 사물의 지극함이 나오듯이 일상과 인간사의 알고 그에 다가감이 먼저이고 이후 앎이 가능하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여 우주의 궁극적인 것을 다루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주자가 생각하는 교육의 방법이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마치 사물에 먼저 다가가고, 이후 그것에 진리를 얻을 수 있듯이 말이다. 정몽주도 이와 하나의 맥에서 유학자는 일상의 지식을 다룬다고 한다. 그렇기에 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는 불교의 실천적 모습은 부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주자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역경』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실체(體)와 작용(用)임을 『역경』을 통해 알았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의 『포은집』에서 그가 생각하는 『역경』에 관한 작디작은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정몽주는 하륜과 김구용에게 적어준 글에서 『역경』을 읽기를 권하며, 그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정몽주는 주자학과 유학의 근본에 매우 익숙한 인물이며, 그 재료가 되는 경전에 매우 뛰어난 인물로 보인다. 이러한 정몽주를 조선의 학자들은 ‘동방 성리학의 시조’라 하며 평하였다.
정몽주가 이집에서 준 「호연권자」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황천(皇天)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그 기(氣)는 크고도 굳세다.
사람이 스스로 이를 살치지 않으면,
심상하게 여겨 버려두더라.
고유한 도를 기른다면
호연한 기를 누가 감당하겠는가.
...
이 말을 아는 자 드무니
그대를 위해 이 글을 짓는다.
여기에서 황천은 태극(太極)의 개념에 상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몽주는 태극에서 파생한 ‘기’가 인간을 생성한다고 한다. 이 기는 지고지선(至高至善)한 것으로 이를 잘 배양하는 것이 인간이 지향해야할 것이라 한다. 이색은 이를 본연지선(本然之善)이라 표현하지만, 포은은 이를 ‘고유한 도’(固有道)라고 표현한다. 포은은 위의 글에서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하여 고유한 도를 살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실상 주자학의 것과 매우 깊은 연관을 가진다. 주자학은 “성즉리”(性卽理)와 이기성(理氣性)을 다루고 있다. 성즉리라고 함은 대우주 가운데 조화된 리(理)가 있고, 그것이 인간의 본성(性)에도 깃들어 이성(理性)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자학은 리(理)와 기(氣)를 구분한다. 리는 형이상(形而上)의 것이며, 기는 형이하(形而下)의 것이라 보는 것이다. 또한 인간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정욕은 기의 소산이며, 이러한 정욕이 이성을 가릴 때 악(惡)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정욕을 이성으로 지배해야한다고 하면서 강한 윤리적 성향을 가지는 윤리학적 내용을 가지게 된다. 정몽주도 이러한 흐름에서 인간의 본성(性)에 충성하여, 우주의 원리인 리(理)에 상응하는 삶, 즉 고유한 도를 일굼으로 인간의 본성이 우주의 원리인 리와 상응하는 삶, 즉 도덕적 완성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본래적인 선으로 돌아가야만 하고, 이러한 본래적인 선이 바로 ‘고유한 도’이다. 정몽주는 하늘에서 받은 기를 양(陽)의 기라고 하고, 땅에서 받은 기를 음(陰)의 기라고 한다. 여기에서 정몽주는 양의 기가 음의 기에 의하여 약해지면 고유한 도를 상실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양의 기에 의하여 지배받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희망하였다. 그는 자신의 한 시 구절에서 “양은 하늘의 마음이며, 나의 마음”이라고 한다. 이는 정몽주 철학의 중심에선 명제이다. 이때 ‘하늘의 마음’(天心)이란 지고지선한 양의 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때 ‘나의 마음’(吾心)이란 이 지고지선한 양의 기를 받은 인간의 ‘고유한 도’를 말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일면을 따르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인 지고지선한 ‘리’가 주어진 ‘성’, 그렇기에 인간의 인간성은 우주의 원리와 같이 선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다. 이는 분명 맹자의 성선설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 정몽주는 그의 시에서 맹자의 가르침이 가지는 중요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준하여 그는 인간은 본시 하늘의 기를 받아 선한 고유한 도를 가지며, 이를 잘 보전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다른 시에서도 보여 진다.
물 위에 땅이 있으니, 땅에서 샘이 나네.
시내로 바다로 흠을 남기지 않는구나.
마음이 본디 비었으니 곧고 맑구나.
서리와 눈에 견디어 내니 너를 훌륭히 이루었는데 상인(上人)이 여기서 무엇을 취하려나.
한편 물리(物理)의, 묘함을 보고 한편 도행(道行)의 곧음을 나누려는가.
‘마음이 본디 비었으니’라는 구절과 ‘곧고 맑구나’라는 구절은 ‘도행’, 즉 고유도에 준하는 행을 말한다. 고유한 도의 근본은 마음을 비우고, 곧고 맑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을 비음과 곧고 맑음’은 서리와 눈을 견디어 이겨야하며, 이를 통해서 고유한 도를 지킬 수 있다. 여기에서 서리와 눈은 음의 기를 암시하는 것이며, 이러한 음의 기가 양의 기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간이 고유한 도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길이다. 이것이 포은 성리학의 핵심에 선 것들이다.
또한 그는 국가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사대주의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 외교는 사대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일 뿐이다. 중국, 세계의 중심인 나라는 지역의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명을 이루는 사람, 즉 스스로의 주체성을 자각하는 국가와 개인은 누구나 중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심과 오랑캐의 구분은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성 각인의 여부라고 보았다. 이러한 주체성의 자각은 조선 후기 성리학에서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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