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철학 학교 틀밖 교실 성서 번역
[토마스 철학 학교는 고전을 사랑하는 글벗들이 인문학적 지식을 소비하여 새롭게 생산하는 소비자가 생산자이며 생산자가 소비자인 그러한 공간이다. 본 번역은 바로 그러한 토마스 철학 학교 틀밖 교실 구마라집 번역단의 것이다. 토마스 철학 학교가 성서를 번역한 까닭은 성서가 토마스 철학 학교가 연구하는 중세 철학과 문화 그리고 예술 일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상의 체계이며 체계가 담긴 문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토마스 철학 학교 틀밖 교실 구마라집 번역단은 중세 철학과 깊은 연관을 가진 성서의 구절들을 발췌하여 번역할 계획이다.]
[위의 글은 2007년에 쓴 것이고, 그 이후 나의 교통사고로 나의 기획은 중지되었다. 그런 가운데 과거 노트북에서 이 글을 발견하고 이렇게 7년만에 블로그에 올린다. 참으로 신기하다. 타인머신을 타고 온 글이란 생각이 든다. 혹시 이 번역에 대하여 생각이 다르다고 댓글을 적을 필요는 없다.]
창세기 1장 1-10
- 칠십인 헬라어 역본에 준한 번역
유 대칠 암브로시오 옮김
(토마스철학학교 틀 밖 교실 구마라집 번역단)
《본문》
1. 처음에(ἐν ἀρχῇ)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2. 땅은 보이지도 않으며, 정돈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둠이 심연 위에 있었고, 신의 바람(πνεῦμα θεοῦ)이 물 위를 떠다녔다.
3. 신이 말하였다. “빛아 생겨라!” 그리곤 빛이 생겼다.
4. 신이 그 빛 보기에 아름다웠다(καλόν). 신이 빛의 사이와 어둠의 사이를 나누었다.
5. 신이 그 빛을 낮이라 하고, 그 어둠을 밤이라 불렸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ἠμἑρα μιά)가 지났다.
6. 신이 말하였다. “물의 가운데 궁창이 생기고 물과 물 사이가 나뉘어라!” 그리곤 그렇게 생겼다.
7. 신은 궁창을 만들고 궁창 위에 있는 물과 궁창 아래 있는 물의 사이를 신은 나누었다.
8. 신은 그 궁창을 하늘이라 불렀다. 그리고 신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틀이 지났다.
9. 신이 말하였다. “하늘 아래 물은 하나의 무리로(εἰς συναγωγὴν μίαν) 모이고, 마른 토양이 드러내라(ὀφθητω). 그리곤 그렇게 생겼다. 하늘 아래 있는 물이 그것들의 무리로 모여 마른 토양이 보이게 되었다.
10. 신이 그 마른 토양을 땅이라 부르고, 그 물의 무리를 바다라 불렀다. 신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 절의 문헌학적 설명(Philological Analysis)
1절. 역자는 ‘처음에’라고 옮겼다. 이는 칠십인역 헬라어의 ἐν ἀρχῇ를 옮긴 까닭이다. 하지만 칠십인역이 아닌 다른 헬라어 사본엔 이와 다르게 번역되기도 한다. 아퀼라 역본에 의하면 κεφάλαιον라고 번역한다. 이에 의하면 우리말로 ‘첫 머리에’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아퀼라 역본이 칠십인역과 다른 헬라어를 그 번역어 선택한 것은 히브리어 원문에 등장하는 תישׁאר(처음)이란 말이 어원적으로 שׁאר(머리)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해석한 까닭으로 보인다.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 역본에 의하면 이는 in principio로 번역된다. 이는 아퀼라 역본보다 칠십인 역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 이외 많은 이후 번역은 바로 이러한 번역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근대 성서번역에 있어 큰 전환점을 이룬 루터의 독일어 역본에서도 ‘처음에’에 준하는 am anfang으로 번역하고 있다.
2절. πνεῦμα θεοῦ은 ‘신의 영’으로 번역되곤 한다. 라틴어 불가타 역본은 이를 spiritus dei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서 칠십인역의 πνεῦμα과 불가타 역본의 spiritus는 모두 영(靈)과 정령(精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어원상 바람이나 기운 혹은 호흡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들 번역어가 히브리어인 חור의 역어이기 때문이다. חור는 그 어원상 바람과 관련된다. 본 역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를 신의 영이나 정령이 아니라, 신의 바람이라 번역하였다. 역자의 이러한 해석에 대한 성서상의 증거들은 시편 104편에서 찾아 읽을 수 있다. 시편 104편은 창세기 1장의 첫 머리와 병행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본 역자가 번역한 시편 104편을 보자.
3. 물 위에 자신의 자리를 세우는 이, 구름을 자신의 수레로 삼았으며, 바람 날개를(πτερύγων ἀνέμων, pennas ventorum) 타고 거니는 이.
4. 바람(πνεύματα, spiritus)을 자신의 사자(ἀγγέλους, angelos)로 삼고, 타오르는 불을 그의 하인으로 삼은 이.
5. 그는 그의 굳건한 기반 위에 대지를 다진 이. 언제까지나 그것이 기울러지지 않게 하였다.
이 부분이 창세기의 첫 부분과 병행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가들에 의하여 다루어진 바이다. 신은 물 위를 거닐고 있다. 신은 바람 날개를 타고 거닐고 있다. 그리고 4절에선 창세기에선 영이나 정령으로 번역한 단어를 현대어론 바람이라 번역하고 있다. 결국 물 위를 거닐 수 있는 그것은 신의 영이 아니라, 신의 바람이라 함이 문헌학적으로 정확하다.
히브리어 원문에선 사용되는 חור는 우가리트어와 히브리어의 어원적인 면에서 “새가 날다”라고 할 때 ‘날다’와 관련되어 사용된다.(참조✑ 신명기 32:11) 즉 ‘바람’과 ‘날다’라는 말이 이와 같이 셈어 계통에선 유사 어원을 가진단 말이다. 즉 우선적으로 חור는 바람이란 말로 당시 히브리어 사용자들은 인식했다. 이는 시편의 논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세기와 시편을 위의 논의를 근거로 살펴보자.
시편 104:3-4 →처음 신은 물 위에 바람 날개로 혹은 신의 바람이 떠다녔다.← 창세기 1:1-2
시편 104:5 →신은 물위로 대지를 드러나게 하였다.← 창세기1:9
적어도 문헌학적으로 그리고 비교역사언어학적으로 창세기의 חור는 영 혹은 정령이 아니라, 바람이다. חור을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 역본은 πνεῦμα이라 번역하고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 역본은 spiritus라 번역하였다. 이들 역어들은 바람이란 의미도 영 혹은 정령이란 의미도 포함하는 역어이다. 하지만 근대 성서번역의 전환점이 되는 루터의 독일어 역본엔 창세기의 이 구절을 확실하게 신의 영, 즉 Geist Gottes로 확정되게 표현함으로 바람을 그 단어의 의미에서 제외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우리말 성서에도 이어지고 있다.
4절. 아퀼라 역본은 이를 좋은 것, 즉 ἀγαθόν이라 번역하지만, 역자가 원본으로 삼은 칠인십 역본은 καλόν이라 번역한다. 이는 좋은 것을 물론이며, 미학적인 아름다움 역시 포함하고 있다. 서구 중세 철학자에 의하면 좋은 것 가운데 봄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이 보기에 좋은 것, 즉 이를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5절. ‘하루’라고 번역한 것은 칠십인 역본이 ἠμἑρα μιά, 즉 ‘하나’라고 번역하였으며, 첫째를 의미하는 προώτη라고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칠십인 역본에 의존하여 이를 텍스트로 삼아 번역하였기에 ‘하루’라고 번역하였다.
9절. 9절은 2절의 병행된다. 2절에서 물은 신의 바람이 그 위를 떠다니는 존재로, 하늘과 땅이 창조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근원적 존재이다. 반면 대지 혹은 땅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 꼴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9절에 이르러 대지 혹은 땅은 물과 구분되어 자신의 모양을 가지며 드러나기 시작한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신의 행위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근거이다. 신은 처음에 하늘과 대지를 만들었다. 물은 대지와 하늘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들 대지와 하늘은 물을 조절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을 나누고 조절하는 신적 행위 가운데 드러나는 것이다. 물은 이들 대지와 하늘에 앞선 존재이며, 우주론적 존재이다. 궁창으로 물을 나누고, 이로 하늘을 만들고, 다시 물을 모으고 바다며 대지를 드러나게 하였다. 이 모든 산의 행위는 물을 다루는 신적 행위이며, 이 물을 다루는 신적 행위는 하늘과 대지를 창조하는 근거가 된다. 물은 고대부터 오리엔트 지방에 있어서 근원적인 것이었다. 많은 설화와 신화들이 물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이 창세기에도 베여들어 있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어의 철학자 탈레스는 바로 이러한 물에서 모든 것이 생성되었다고 보았다. 즉 물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물은 있던 것 가운데 가장 먼저 있던 것이다. 창세기에서도 물은 있던 것 가운데 가장 먼저 있는 것이며, 이 물을 신적 행위로 조절되고 나누어짐으로 모든 것이 근거하는 하늘과 대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아래의 자료를 번역과 위의 본문 이해에 길잡이로 삼았다.
Septuasinta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70).
- 이 책은 역자가 기본적으로 번역의 대본으로 삼은 것으로 일차적 대본의 역할을 하였다.
Liber genesis (Stuttgart: Deutsche Bibelstiftung, 1969).
- 이 책은 창세기의 히브리어 원문이다. 본 번역 이후 이차적으로 대조하며 본 역자가 본문을 이해함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Die Bibel Luther-Uebersetzung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99).
- 이 책은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이다. 번역이란 역자의 의도와 관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그리고 서구 사상계의 역사에서 그뿐 아니라, 인쇄문화의 역사에서도 매우 기념비적인 책이며, 동시에 번역이 역자의 의도와 관점을 잘 보여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우선 독일어 번역이란 대중언어를 선택함으로 희미하지만 대중 중심 사회의 시작을 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이들이 성서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구에선 거의 처음으로 인쇄기를 통하여 대중에게 확산되어 읽혀져 대중의 마음에 변화를 야기한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칠십인역 창세기』, 정태현 외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6).
- 우리말로 칠십인 역본 창세기를 전문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일 수 있다. 특히 다양한 고전학적 각주와 뛰어난 헬라어 번역에 관한 여러 식견은 본 역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J.Day, God's conflict with the dragon and the sea (Cambridge: University of Cambridge Press, 1985).
- 이 책은 창세기와 창세기 주변의 여러 논의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주는 책이다. 특히 가나안족의 다양한 문헌과 창세기를 비교하여 다양하며 흥미로운 해석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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