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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철학사전

스토아 철학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전>

스토아 철학 (그리스어 : Στωικισμός, 영어 : Stoicism) 스토아 철학은 제논(Zeno of Citium)이 기초한 헬레니즘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철학의 사조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름은 벽화로 치장된 아테나이의 아고라에 있던 회당 복도(ή ποικίλη στοά)에서 기인한다. 제논에서 안티파테르(Antipater)에 이르는 시기를 초기 스토아 철학이라고 한다. 이어서 중기 스토아 철학엔 파네티우스(Panaetius)와 포시도니우스(Posidonius)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후기 스토아 철학은 무소니우스 루푸스(Musonius Rufus), 세네카(Seneca), 에픽테투스(Epictetus),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이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파괴적인 감성이 판단에서 오류로부터 야기된다고 가르쳤으며, 현인(賢人), 즉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완전성을 가진 사람은 그러한 감성에 당하지 않는 이라고 하였다. 스토아 철학은 우주론적 결정론과 인간 자유 사이의 능동적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였고, 자연에 따라 그 의지를 유지하려는 덕(virtuous)에 대해서도 고민하였다. 이로 인하여 스토아 철학은 그들의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것들은 개인의 철학에 따른 최상의 판단은 한 인간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위 할 것인가로 보았다. 세네카(Seneca)와 에픽테투스(Epictetus)와 같은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은 덕이란 행복에 족한 것이기에 현인은 불운에서 자유롭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스토아적 고요라는 표현의 의미와 유사하다. 비록 그 표현이 현인만이 참으로 자유롭다고 여겨질 수 있다고 하는 극단적인 스토아 윤리관을 포함하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모든 도덕의 소멸 혹은 사라짐은 악덕임을 포함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스토아 철학의 이론은 기원 후 519년 유스티니아누스 1(Justinian I)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어울리지 않은 것으로 규정됨에 의하여 그에 의하여 모든 철학 학교가 문을 닫게 되기까지 그리스와 로마의 환제에서 친숙했다. 예를 들어,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가 그러하다. 스토아 철학은 고정된 틀 속을 가진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학자에 따라서 서로 상당히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연학과 논리학 그리고 윤리학이란 세 가지로 자신들의 철학을 전개하였다. 윤리학의 측면에서 키니코스 학파(그리스어: Κυνικοί, 라틴어: Cynici)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연학에선 헤라클레이토스(Ήράκλειτος)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둘만으로 스토아 철학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그 가운데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가지 학파의 영향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권위와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금욕하며 지냈다. 이 가운데 실천적인 모습과 유물론적 일원론은 키니코스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토아의 근본 특징은 이 세계 혹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것은 물체라는 것이다. 그들의 자연학에 따르면 불과 같이 미세한 물질로 우주는 구성되어 있다. 신 역시 그러하며,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근원으로부터 생성과 그것으로의 환원이란 과정으로 결정 지워져있다. 이들에 따르면 물체로서의 신이 우주 만물을 관철하여 순환하는 것이 섭리이다. 이러한 섭리를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운명이다. 우주 가운데 모든 것은 동질(同質)이며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심지어 이들은 신과 자연, 그리고 운명과 섭리를 결국은 같은 것으로 본다. 동일한 것들이지만, 작용을 하는 것과 작용을 받는 것의 차이로 본다. 그들의 윤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바른 삶을 자연에 순종하는 삶이다. 우주의 지배 법칙을 통찰하여 그것에 순응하여 조화를 일구며 살아가는 주체적인 조화를 의미한다. 결국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덕에 대해서도 고민하였다. 논리학이란 바로 이러한 우주의 지배 법칙을 인식하는 수단이다. 여기에서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덕에 따른 삶, 그 삶은 마음의 동요를 받지 않는 상태, 아파테이아(ἀπάθεια)라고 한다. 에픽테투스는 이와 관련하여 나는 나 자신의 선으로 인하여 자연에 따라 여기 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악으로 인하여 여기 온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에픽테투스가 말하는 것도 결국은 아파테이아이다. 이러한 스토아 철학자들의 고민은 결국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였는가보다 어떻게 행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고민한 이들이다. 스토아 철학의 유물론에 의하면 우주의 근원 물체는 혼()이란 의미의 프네우마’(그리스어: πνεύμα 라틴어: Pneuma)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결국 유물론을 유심론(唯心論)으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을 열게 된다. 실제로 후대에 들어서 이러한 경향을 다소 보이기도 한다. <유지승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