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지디우스 로마누스 혹은 로마의 자일스 (라틴어 Aegidius Romanus 영어 Giles of Rome (c.1243/7-1316) :
에지디우스 로마누스는 13세기 중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주석가이며 신학자였다. 아마도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제자였을 수 있을 듯하다. 이는 그의 철학에 보이는 토마스 아퀴나스 형이상학과 신학의 직접 혹은 간접적 영향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수용은 전적으로 추종적 수용이 아니라, 때때로 비판적 수용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가 중세 철학 연구가들에게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의 실재적 구분(realis distinctio)과 관련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존재와 본질은 두 개의 완전히 구분되는 실재(res)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모든 존재자들은 구성된다. 이러한 논의에서 그는 그와 동시대 인물인 강의 헨리(Henry of Ghent)와 대립된다. 에지디우스는 이 문제를 합성 실체의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에서 논의를 확대하며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주석가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연 철학의 전통에 있어 의미 있는 기여를 했으며, 특히 장소, 시간, 진동에서의 운동, 연장(extensio)에 대한 논의에서 더 그렇다.
1. 생애 에지디우스는 아마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강의를 1269년에서 1272년 사이 듣게 된다. 에지디우스는 신학 학사(bachelor of theology)로 파리 대학에서 첫 학문적 삶을 시작했으며, 1270년과 1277년 사이 그는 롬바르두스의 『명제집』 4권을 강의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한 주해 대부분을 적게 된다. 1277년 그는 그의 관점 가운데 일부가 이단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heterodox Aristotelianism)로 금지 된다. 이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 째 그의 이론이 주된 비판과 금지의 대상이던 시제 브라방(Siger of Brabant)과 같은 인문학부 교수들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둘째 그가 일부 신학부 교수들에 대하여 비판적이란 이유다. 예를 들어, 강의 헨리가 그렇다. 반면 강의 헨리는 이 1277년 금지령의 진행에 일조한 철학자이기도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우주 영원성의 가능성과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에 대한 이론 등에서 일부 토마스 아퀴나스 노선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당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역시 일부 금지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면이다. 이러한 1277년 금지령에 대한 이론적 논박을 위해 그는 『형상들의 다수성과 등급에 반대하여』(Contra gradus et pluralitatem formarum)라는 저술을 집필한다. 이 가운데 그는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은 건전한 이론이며, 신앙과 조화되는 이론임을 주장한다. 1277년 이후 에지디우스의 삶을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아마도 파리를 떠났을 것이며,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 그는 『왕의 통치에 대하여』(De regimine principum)를 집필한다. 1285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신학 교수로 지명된다. 『논쟁된 질문들』(Quaestiones disputatae)과 임의토론집(Quodlibeta)은 이기에 집필되었다. 그리고 강의 헨리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존재와 본질의 구분에 대한 논의가 주된 논제가 된다. 1287년 그의 이론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공식 이론이 된다. 그리고 1292년 그는 수도회의 최고 지도자(prior general)로 선출된다. 그리고 1295년 교황 보니파치오 8세는 그를 부르주(Bourges)의 대주교에 임명한다. 그리고 당시 교황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는 『교황의 양위에 대하여』(De renuntiatione papae)을 집필하였고, 여기에서 교황의 편에 선다. 또 그는 『교회의 권력에 대하여』(De ecclesiastica potestate)를 집필하였고, 1316년 아비뇽에서 임종을 맞는다.
2. 형이상학 에지디우스는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사고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단순한 추종자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몇몇 사안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을 비판한다. 비록 대부분의 경우 그의 비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온전히 거부하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정하고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더욱이 철학적 문제에 대한 에지디우스의 방법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에지디우스는 언어적 분석과 논증의 논리적 구조에 많은 신경을 쓴다. 에지디우스의 형이상학은 주로 두 가지 입장을 정리된다. 첫 째는 존재와 본질의 실재적 구분이다. 그리고 하나는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이다. 에지디우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에서 본질과 존재의 구분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구분에 대한 자기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렇게 마련된 그의 입장은 더욱 더 극단적이다. 그는 본질과 존재가 두 개의 완벽하게 구분되는 실재(res)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존재론적 구조는 바로 이 본질과 존재의 합성으로 이해한다. 에지디우스에 따르면, 가능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기 위해, 존재가 본질에 더해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러한 논의에 근거해 에지디우스는 ‘지향적 구분’을 주장한 강의 헨리를 강하게 비판한다. 에지디우스의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에 대한 입장은 완벽하게 단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철학자들의 오류들』(Errores philosophorum)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모든 합성 실체 가운데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 이론을 비판한다. 그러나 『형상들의 다수성과 등급에 반대하여』에선 합설체 가운데 형상의 다수성을 거부한다. 그의 후기 저작에서 그는 이를 인간 존재에 적용하고 있다. 그는 인간 존재를 제외하고 합성체 가운데는 오직 하나의 실체적 형상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개별성의 본성은 에지디우스의 형이상학에서 중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따라 그는 제일 질료는 순수 가능태이며, 실체적 형상의 다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양적 원리(quantitative principle)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질료가 더해져야 한다. 개별화의 원리는 그저 질료로부터 구분되어 있는 양이 아니다. 그러나 존재자의 양적 방식(modus quantitativus)이며, 이것은 무규정적 차원(dimensio indeterminata)이 질료와 함께 한 존재자의 양적 방식이다.
3 영혼과 지식에 대하여 에지디우스의 심리학과 인식론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리를 반영한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 혹은 아베로에스의 입장을 향한 어떤 경향성을 보이진 않는다. 영혼에 대한 이론에서 에지디우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혼과 그것의 기능(faticulty)들 사이의 실재적 구분을 따른다. 지식의 이론에서 에지디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따라 감각 경험으로 지식들이 형성된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생득 관념(innate ideas)과 같은 플라톤노선이나 조명설(theory of illumination)과 같은 것을 거부한다. 그는 지적 지식의 시발점은 감각 실체에 대한 감각 인식인 반면 그것의 고유한 대상은 실체의 비질료적 무엇임(the immaterial quiddity)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서 그는 감각 인식으로 부터의 추상(abstractio)하여 얻은 지식을 이야기한다. 에지디우스는 능동 지성(intellectus agens)과 사고가 가능하게 하는 가지상(species intelligibilis)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는 진리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선을 따라 ‘사고와 실재의 상응’(adaequatio intellectus et rei)이라고 정의한다. 또 지성의 단일성에서 에지디우스는 강하게 능동 지성의 단일성을 반대한다. 이는 그가 아비첸나의 것으로 돌리는 입장이다. 또 아베로에스의 것으로 돌리는 가능 지성의 단일성 등을 반대한다. 에지디우스는 개별적 지식과 질료적인 형상과 비질료적 형상 사이의 중간적 존재성으로 지성의 존재론적 구조와 개별적 지식은 상이한 실체 가운데 내재함으로 다양화된다는 논리와 신체의 형상이 이성적 영혼일 때 해결된다고 본다.
4 자연 철학 : 에지디우스의 자연 철학 역시 근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그의 체계적인 자연학적 개념에 대한 논의는 그의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주해』와 관련된다. 그리고 이 저작은 이후 많은 주석가들에 의하여 애용된다. 예를 들어, 연장, 장소, 시간 그리고 우주 영원성 등에 대한 논의가 그러하며, 이들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따라서 주해되고 전해졌다. 응축(condensation)과 희박(rarefaction)을 다루기 위해, 에지디우스는 자연적 물체 가운데 내재하는 두 개의 분리된 성질이 있다는 것을 보인다. 육체적 차원은 물체가 응축되고 희박해질 때, 변화하는 것은 물체적 차원(corporeal dimension)이다. 질료의 양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은 현대 부피(volume)과 질량(mass) 사이의 강한 유사성을 가진다. 에지디우스는 질료적 장소(locus materialiter)와 형상적 장소(locus formaliter)를 구분한다. 질료적 장소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장소이며, 이는 물체를 포함하는 내적 표면이다. 그리고 형상적 장소는 우주 가운데 장소를 차지하는 물체와 확정된 지점 사이의 질서(ordo) 혹은 거리(distantia)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따르는 에지디우스는 형상적 장소 개념을 장소의 불변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다. 그러나 그는 질료적 장소와 형상적 장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에지디우스의 관점에서 형상적 장소는 질료적 장소의 속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독립된 어떤 것이다. 질료적 장소와 형상적 장소를 구분하는 그의 발상은 장소의 개념을 지배하는 두 법칙 사이의 구분에서 발견된다. 첫째, 장소를 가진 물체의 연장의 범위 혹은 한계, 둘째, 물체의 운동과 정시를 서술하기 위한 틀. 이 두 가지에서 발견된다.
5. 신학 에지디우스의 신관은 단일성에 집중된다. 신의 단일성은 특히 삼위일체 문제와 관련된다. 이 가운데 그는 신적 관계에 있어 다수성을 넘어선 신적 본질의 단일성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신의 단일성은 신적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을 포함하진 않는다. 반대로 그의 신적 관계에 관한 이론은 더욱 더 복잡하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것보다 더 분명하다. 에지디우스의 이론은 관계의 세 종류, 즉 ‘반대’, ‘이격’(離隔, disparate) 그리고 ‘유사’에 근거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삼위일체 논의를 다룸에 있어서 매우 강력한 개념적 장치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신적 관계, 그들의 실재적 구분과 그들의 다수성(multiplicatio) 가운데 선(priority)과 후(posteriority)의 관계가 그렇다. 신적 속성 가운데 무한성(infinitas)은 단일성에 이어 두 번째다. 신의 무한성의 중요성은 특별히 신학의 대상에 대한 문제에서 논의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그는 꾸준히 신학의 대상은 신으로 신일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유한한 지성은 신의 무한함을 포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신학의 대상은 “우리가 행하는 영광을 기림의 우리의 성취와 회복의 원리”(principium nostrae restaurationis et consummatio nostrae glorificationis)라고 한다. 이러한 형식에 따라서 에지디우스의 입장은 강의 헨리와 폰테인의 고트프리(Godfrey of Fontaines)가 관련하여 오랜 시간 논쟁하게 된다. 에디지우스가 주목하는 점은 유한한 피조물과 무한한 신 사이의 존재론적 거리다. 말로 표현 조차 할 수 없는 이 거리감에 의하여 인간은 신에 대하여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그는 신적 본성에 대한 이성적 지식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결론을 내어놓는다. 다른 신학적 문제에서도 그는 삼위일체는 온전히 신비이며, 인간의 자연 이성으로 온전히 논증되고 증명되며 최종적 답안을 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에지디우스는 설교가이기도 하다. 그는 13세기의 대표적인 설교가이다. 그가 남긴 설교(sermon)는 간단한 그의 신학 논구로 여겨지며, 그의 신학적 사상의 최종적 판단에 대한 간단한 글로 여겨지고 있다.
6. 정치학 에지디우스의 정치 사상은 시간 속 권력을 넘어선 정신적 권력의 우위에 집중된다. 그는 그의 『왕의 통치에 대하여』에서 ‘국가’란 시민 사회 가운데 살려고 하는 인간 본성의 성량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의 권력에 대하여』에서 그는 국가는 정신적 권력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지디우스의 입장에 따르면 시간 속 권력과 정신적 권력 사이의 구분은 인간 존재의 육체와 영혼의 구분에 근본적으로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시간 속 권력에 대한 정신 권력의 우위는 우주의 질서에 근거하기도 한다. 오직 정신적 권력만이 집적으로 신으로부터 유래되고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편 시간 속의 권력은 정신적 권력에 의존되어야하는 것일 뿐이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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