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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는 중세 철학/한글 옥캄

옥캄의 "임의토론집"4,30 빵의 실체는 축성 이후 남아있는가?

옥캄의 "임의토론집" 4,30

 

유대칠 옮김

(토마스 철학 학교)

 

빵의 실체는 축성 이후 남아있는가?

 

/448/긍정:다양한 기적은 필요 없이 가정되어지지 않는다. 빵의 실체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필요없다. /449/왜냐하면 빵의 실체가 남아있지 않을 그것이 존재하듯이 그렇게 빵의 실체가 남았을 성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그곳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대: 이는 교회의 결정이다.

 

논의에서 오랜 가운데 가지 견해를 가진다. 명제집 4 11구분에서 선생(롬바르두스) 의하여 기록된 것이다. 호렌스티엔시스의 "대전" 의하여, 그리고 성사론에 성사에 관한 장의 주해에 의한 것이다. 무절제에 관한 주해과 미사의 성례론에서 마르타에 관한 장에 의한 것이다. 첫번째 의견은 앞서 있던 빵의 실체는 이후에 그리스도의 육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견은 빵의 실체와 포도주의 실체는 그곳에서 존재를 중단한다는 것이고, 당시 그것의 우유들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은 그러한 우유 가운데 실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견해는 빵의 실체와 포도주의 실체가 그곳에 남아있고, 그리스도의 몸은 동일한 장소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빵고과포도주의 실체와 함께 말이다.

 

첫번째 견해는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이 빵에 대하여 서술되어지는 모든 명제는 가능하지 않다.

두번째 견해는 모든 신학자들에게 공통된 견해이다./450/ 이는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여 그리고 어떤 논증에 의하지도 않고 내가 주장하는 견해이다. 앞선 무절제에 관하여의 논의 가운데 주장되어지듯이, -삼위일체론과 가톨릭신앙- 신의 권능에 의하여 빵이 몸으로 실체가 전환되고, 포도주가 피로 전환됨과 같이 인노센트 3세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것들의 드러남 가운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번째 견해는 교회의 결론은 그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견해는 그것들의 주체로 부터 우유의 분리가 귀결되는 모든 어려움으로 부터 이를 구하며, 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견해 가운데 상반되는 것은 성서의 교회법 가운데 찾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빵의 우유와 함께 존재하는 것에 의한 보다 빵의 실체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존재하는 것이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근거를 제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양은 실체가 다른 실체를 같은 장소에서 거부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다른 양을 같은 장소에서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지 성질은 즉각적으로 같은 장소에 있을 있다. 마치 같은 장소에 가지 육체가 존재하는 경우에서의 명맥함과 같이 말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실체는 성체의 실체와 같이 같은 장소 가운데 존재할 있다. 그러므로 동일한 이유에서 동일한 장소에 성체의 실체처럼 존재할 있다.

 

주된 논의에 대하여 나는 어떤 근거에서 많은 기적은 주어진 것에 의하여 가정되어진다. 이는 그것이 기적에 의하여 야기되어질 있는 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이 하고 싶어하는 이다. 그리고 내가 가정하는 이것은 계시의 어떤 종류에 의하여 교회에 의하여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가 그것이 가지는 방식을 결정한 근거이다. /451/

 

<간단 풀이-옥캄은 기존의 실체변화에 의한 논의가 진정 철학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묻는 것을 신앙의 문제를 넘긴다. , 그것은 신이 행한 기적인 것이다. 물론 이를 설명하는 것은 신의 권능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성서와 교회법에 근거하지 다른 논증에 근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적으로 그는 교회법이 거부한 세번째 노선이 합리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이 성사적 기적을 설명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서 옥캄은 자신의 학문과 신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흐리게나마 보여주는 듯이 보인다.>

 

< 번역은 토마스철학학교 유대칠이 번역한 것으로 자유로운 이용을 허락하지만, 인용이나 인터넷상의 사용시(카페,홈페이지,블로그,미니홈피,클럽...) 출처를 명시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