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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는 중세 철학/한글 옥캄

옥캄의 "임의토론집" 6.6 실존하지 않은 대상에 관한 직관적 인식은 가능한

옥캄의 "임의토론집" 6.6

 

유대칠 옮김

(토마스철학학교)

 

실존하지 않은 대상에 관한 직관적 인식은 가능한가?

 

부정:하나의 봄이 실존하며, 그리고 아무 것도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봄이 실존하고 대상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반대:봄은 그것의 대상과 구분되는 절대적 성질이다. 그러므로 모순 없이 대상의 부재 가운데 실존할 있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질문에서 나는 가지를 전제한다. 하나는 신의 권능에 의하여 실존하지 않는 대상에 관한 직관적 인식이 가능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우선 "나는 전능한 신을 믿습니다"라는 신조에 의하여 해결한다. 나는 명백한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신의 권능에 수반되어진다는 것을 이것이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신에 의하여 야기되느것은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욱이 앞선 논의에서 우리는 신학자의 알려진 명제를 내세웠다. "신이 제이 원인의 중재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든 것은/605/ 그가 직접적으로 그러한 원인의 결핍 가운데 창조하고 보존할 있다." 이러한 명제의 근거에 의하여 나는 다음의 것을 귀결한다. 신이 제이원인의 중재에 의하여 창조될 있는 모든 결과는 그가 자신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창조할 있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 대상의 중재에 의하여 물질적 대상의 직관적 인식을 만들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인식이 만들 있다.

더욱이 장소에서 구분되는 모든 절대적인 것과 다른 절대적 대상과 구분되는 주체는 신의 권능에 의하여 실존할 있다. 다른 절대적 대상이 사라졌을때에도 말이다. 그러나 하늘 가운데 별의 , 감각적 봄과 지성적 양자는 이러한 종류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러한 논증을 견지하는 가운데 비록 그의 현존이 지성에게 현실적으로 그자체가 주어지는 대상의 형상 가운데 명백하지 않을지라도 신은 직관적으로 그리고 지복적으로 보여질 있다고 귀결되어지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 이것은 거짓이고 오류이다.

 

나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고 답한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신은 창조된 대상의 부재 가운데 봄을 야기할 있으므로 논증하고 있다. 이에 의하여 봄이 제이원인에 의존하듯이 말이다. 이로 인하여 신은 직관적으로 그리고 지복적으로 보여질 있다는 것이 추론된다. 비록 그의 현실적 현존이 지성에 현실적으로 현존하는 대상의 형상 가운데 명백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것에 의존하여 봄은 제일 원인에 의존하듯이 대상은 의존한다. 왜냐하면 박사들에 의하면, 신은 제이 원인의 부재 가운데 제이 원인의 고유한 결과를 창조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일 원인의 부재 가운데 어떤 결과를 창조할수는 없다. 색은 결과적으로 그것이 현실적으로 현존하지 않는 한에서 가운데 자체에 대한 봄을 야기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듯이 그렇게 신이 명백하게 있는 그의 현존 없이 지성 가운데 자체의 봄을 이야기할 있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두번 째는 만일 그것의 대상이 실존하지 않는다면, 직관적인식은 자연적으로 야기될 없고 보존될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실재적 결과는 존재 가운데 보존될 없고, 무에서 유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의하여 창조죄어질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결과는 실존은 자연적으로 말해서 생산하는 원인과 보존하는 원인 양자롤 요구한다.

당신은 만일 어떤 이가 태양을 보고 후에 어둔 방에 들어갔다면, 그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크기의 태양을 본다는 것이 그에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태양의 봄은 태양이 부재할 때도 남아있게 된다. 같은 이유에서 봄은 태양이 존재하지 않을 지라도 남아있게 된다.

 

나는 남겨진 태양의 봄은 없다고 답한다. 참으로 남겨진 것은 어떤 성질이다. 눈에 각인된 빛이다. 그리고 이것은 보여진 성질이다. 그리고 만일 지성이 "빛은 같은 장소에서 보여진다"라는 명제를 형성하고 주장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보이는 각인된 성질로 인한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주된 논의에 대하여 /607/나는 봄이 실존하며 아직 보여진 것이 실존하지도 않고 현실성 가운데 실존할 수도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답한다. 그러므로 키메라는 직관적으로 보여진다는 것은 모순이다. 보여진 것이 단지 그것의 원인 이외의 현실적인 것이라면 모순이 아니다.  그것이 현실성 가운데 혹은 시간에 실재성 가운데 실존할 있는 한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우가 논의 가운데 있는 방식이다. 영원성으로 부터 신은 창조되어질 있었던  모든 것을 있다. 그리고 시간에 그것이 아직 무가 되지 않음을 있다.

 

 

< 글은 유대칠이 번역한 것으로 모든 권한이 토마스 철학 학교 유대칠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용을 허락합니다. 다만 인용과 인터넷 사용시(홈페이지,카페,클럽,블로그,이미홈피...) 출처를 명시해 주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