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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중세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따라서.

 

중세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따라서.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서론

중세철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몇 논의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이 보편자에 관한 논의이다. 중세철학을 다루는 어떠한 철학사에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보편자 논쟁은 중세철학의 가장 대표적인 존재론적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세인들의 다른 많은 논의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신학적 문제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 이는 뚜르네의 오도(Odo Turonensis)... 등의 논의에서 분명해진다. 신학적 논의에 의하면, 한 인간은 원죄를 가진다. 그의 행위와 무관하게, 첫 인간인 아담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다. 이 신앙의 결과물에 관하여 중세인들은 철학적 해명을 시도한다. 어떻게 한 후대의 인간은 선대의 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원죄를 가지게 되는 것인가? 오도와 같은 극단의 실재론자(radical realist)들은 인간을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실체(substantia)와 우유(accidens)를 가져와 설명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며 생성소멸 가운데 있는 이 인간들은 우유적인 것이고, 그 실체는 변화하지 않은 하나의 실체라는 것이다. 쉽게 인간은 그저 하나의 인간이며, 각각의 인간들은 우유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란 말이다. 여기에서 여럿에 대하여 서술되어지는 인간은 결국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토마스, 칸트, 데이빗슨 등 각각의 인간들에 관하여 서술되어지는 ‘인간’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인간이란 실체에 관한 것이다. 어찌 보면 여럿에 관하여 서술되어지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것에 관하여 하나의 것에 서술되어지는 것이라고 까지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실재론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은 하나이며, 이 하나는 실체와 같은 것이다. 결국 개별자들은 엄밀하게 우유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그렇기에 여럿이란 결국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입장에 의하면, 원죄의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아담의 죄는 후대 인간의 죄로 존재론적으로 이어진다. 아담과 후대 인간들은 실체적으로 하나의 인간이며,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다르게 존재한다고 여기는 개별적 존재들은 단지 우유적 차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재론은 로스캘리누스(Roscellinus)와 아벨라르두스(Abelradus)와 같은 이들에 의하여 비판받는다. 이들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보편자를 하나의 실체로 보지 않는다. 로스캘리누스는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들이지 하나의 보편적 실체라고 보지 않는다. 즉,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각각 이 인간 저 인간이지, 하나의 인간이란 실체의 우유적 현상이 아니란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화(vox)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벨라르두스는 존재하는 것은 이 인간 저 인간이며, 인간이란 보편자는 그저 개념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정의한다.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보편적 존재로 인간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개별적 존재일 뿐이란 말이다.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은 단지 개념이며, 그것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벨라르두스의 논의는 후에 옥캄에게로 이어져가면서 중세 개념론 혹은 유명론의 전통을 만들어간다.1) 옥캄은 매우 단호하게 보편자의 실체성을 거부하고, 이는 단지 지성 가운데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보편자의 문제가 단지 아벨라르두스와 옥캄(Ockham)으로 대변되어지는 노선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대에도 버얼리(Berley)와 위클리프(Wyclif)와 같은 실재론자들이 실재론의 전통을 이어갔다. 특히 위클리프를 중심으로 그의 영향 속에서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엔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옥스퍼드학파가 일어났으며, 이는 중세 후기 실재론의 대표적 흔적일 수 있다.

 이렇게 중세 보편자의 논의는 이어져갔다. 지금 필자는 이 글을 통하여 중세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그려보고자 한다. 보편자 논쟁에 관한 보다 분명하고 선명한 그림을 위하여 우선은 흐린 윤곽선을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보편자는 무엇이고, 이 보편자에 관한 중세인들의 이해와 그 논의가 어떻게 어떤 곳에서 드러났는지... 등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흐린 윤곽선을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더욱 더 세밀한 윤곽은 이후에 기대해 보더라도 말이다.



2.보편자(universal)와 형상(래금)의 차이

흔히 르네상스의 옥캄주의자라 불리는 아칠리니(A.Achillini, 1463-1512)는 『보편자에 관하여』(De universalibus)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나는 돌의 본성은 돌의 형상이며, 실재 가운데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존재자 가운데 현실적 보편자는 없고, 그저 개념적 존재가 가운데 있으며, 보편자는 지성 가운데 있고, 지성 외부에 있지는 않다고 답한다.”2)


여기에서 아칠리니는 돌의 본성은 돌의 형상이라 하면서, 돌 가운데 보편자는 없다고 한다. 죽 보편자와 형상은 서로 다른 것이다. 보편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중세인들이 줄곧 이야기하듯이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현대 존재론에도 의미를 가지며 이어지고 있다.3) 이러한 보편자를 두고, 중세인들은 보에티우스(Boethius)가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즉, 이러한 보편자가 실재적인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지성 속에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실재적이라면, 그것은 물체인가 비물체적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감각적 개별자로부터 분리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문제이다.4) 이 문제에 관하여 중세의 철학자들은 각각 실재론적으로 혹은 유명론적으로 답하였다. 실재론자들은 보편자를 하나의 실체라고 한다. 즉 보편자를 오도와 같이 하나의 실재적 실체 혹은 대상(res)으로 이해한다. 한편 유명론은 이를 그저 명사(nomen)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로스캘리누스는 보편자인 인간과 같은 명사를 하나의 발화라고 하며, 발화론(vocalism)을 전개한다. 한편 아벨라르두스와 옥캄과 같은 이는 이와 같은 명사를 개념이라고 정의하며 개념론(conceptualism)을 전개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일부는 보편자를 감각적 개별자를 떠나 있다고 하고, 다른 일부는 감각적 개별자 가운데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보편자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실재론자의 두 유파이다. 하나의 유파는 플라톤주의자라고 불리고, 다른 유파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라고 불린다. 많은 철학사는 플라톤을 두고 보편자를 개별자를 넘어선 형상(idea)으로 정의하고,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보편자를 개별자 가운데 형상으로 정의한다. 이는 형상을 보편자와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하여 얻은 결론이다. 하지만 형상과 보편자는 서로 다른 것이다. 물론 많은 철학사적 논의에선 이 둘을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하지만 말이다.5)

 플라톤에게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과 ‘형상’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그의 『정치가』(Politikos)에서 ‘이방인’과 같은 것은 형상이 아니라고 한다.6) 플라톤에게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공통명사는 전부 형상이 아니다. 또한 분명한 사실은 플라톤에게 있어서 형상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술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진정 인식하는 것은 ‘상기’(想起, anamnesis)로 가능한 것이다. 초월적 형상에 참여하는 하나의 개별자를 통하여 그 형상을 상기함으로 참된 인식을 행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인식되어지는 혹은 상기되어지는 형상은 여러 개별자들을 경험하고, 그 개별자에서 하나의 상을 추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즉, 플라톤은 반-추상론을 전개한 것이다.

 추상론(abstractionnisme)은 플라톤의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이다. 왜냐하면 추상론의 내적 틀은 질료와 형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에 근거한 존재론이기 때문이다.7) 철학사의 일반적 정의에 의하면, 추상(αφαιρεσις)은 구체적 감각적 개별자로부터 어떤 보편적인 것을 추출해내는 것이다. 이 보편적인 것이란 여럿에 대하여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 추상을 통하여 보편자를 얻어내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보편자를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며, 이는 개별적 실체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보편자의 실재적 존재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의 수적 단일성에는 문제점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일부 연구가는 그의 견해를 ‘빈약한 실재론’(tenuous realism)으로 해석하기도 한다.8) 하여간 그의 논의는 중세에 전해지면서 보편자를 이해하는 다양한 길을 열었다. 토마스는 보편자를 영혼 외부의 실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추상하여 얻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어떤 이는 우유와 실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가져와 보편자를 개별적 사물 가운데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중세 존재론의 논의에서 형상이 곧 무조건적으로 보편자인 것은 아니다. 외부의 한 인간을 형상과 질료의 결합체이지만, 이 형상은 곧 보편자인 것은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개별적 대상에서부터 추상하여 얻은 것으로 지성 가운데 있는 것을 보편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의하면 형상은 보편자인 것이 아니다. 형상은 존재론적으로 개별자 가운데 질료와 함께 있는 것이며, 보편자는 이러한 개별자들을 추상하여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중세철학자들은 보편자를 형상과 동일하게 이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에게 개별적 존재들은 우유적인 것이며,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실체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인간이란 형상은 모든 인간에 공통된 하나의 실체적 형상이며, 이는 보편자이다. 굳이 이러한 상황에서 추상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개별자로부터 보편자를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자로부터 개별적인 우유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9)

 중세 철학사에서 형상은 곧 보편자가 아니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형상은 보편자와 다르다. 그에게 보편적 개념은 인간의 지성 가운데 있을 수 있겠지만, 형상일 수는 없다. 플라톤의 철학에서 형상은 영혼 가운데 개념이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부 중세철학자들을 플라톤의 영향 속에서 이해하며, 초월적 보편자를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플라톤에게 형상과 보편자는 다르기 때문이다. 오도와 같은 이들이 개별적 존재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단지 하나의 보편적 형상을 주장하지만, 이를 온전한 플라톤주의라고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에게 형상과 보편자는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편자를 개별자와 구별되어지는가의 논의를 묻는 보에티우스의 물음은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서로 다른 노선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이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상이한 해석의 문제로 보아야할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보편자 논쟁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관한 중세인들의 상이한 해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논의의 처음에서 아칠리니의 글의 내세웠다. 그는 돌의 형상과 보편자를 구분한다. 돌의 형상은 개별적 돌을 돌로 규정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단지 그 개별자에 한정되는 것이다. 보편자는 아니다. 보편자의 존재는 영혼 외부가 아니라, 오직 영혼 내부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 나온 시대적 결과물이다.

 첫 번째 중세 철학에서 논의된 보편자 논의의 흐린 윤곽선은 형상이 보편자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역사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해석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4.보편자에 관한 다양한 태도들.

-아벨라르두스와 옥캄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에 관한 논의는 중세 철학에서 하나로 묶여지지 않는다. 혹은 어떤 하나의 것이 교조적으로 강제성을 가지며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초기 스콜라 철학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구분되어지는 상이하고 다양한 논의들이 다루어졌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음의 인물이 있다. 우선 로스캘리누스는 보편자를 발화라고 규정한다. 즉 ‘발화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모르타뉴의 월터(Walter of Mortagne)는 개별자와 보편자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라고 본다. 즉 플라톤은 그가 플라톤인 한에서 개별자이며, 그가 인간인 한에서 종이고, 그가 동물인 한에서 류이다. 이러한 월터의 견해는 상태의 실재론(status realism)이라 이해된다. 반면 요셀리누스(Jocelinus of Soisson)는 집합의 실재론(collective realism)을 전개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보편자는 같은 종류의 개별자들의 전체 집합이다. 즉, 보편자 인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집합이다. 옥캄과 같은 이들은 실재론에 반발하여, 유명론 혹은 개념론을 전개하였다. 이에 의하면 보편자는 영혼 외부의 실재가 아니라, 영혼 내부에 존재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유명론적 흐름은 14세기에 주된 흐름이 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이 14세기말과 15세기 초에 등장하는데, 이것이 영국 옥스퍼드학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기 중세철학자인 옥스퍼드학파의 수장인 위클리프는 보편자를 하나의 실재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실재론을 전개했다.

 그 외에도 중세 철학자들은 매우 다양한 이론을 선보인다. 중세 철학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이론들이 있었지만, 한 개인에 있어서도 보편자에 관한 입장은 변화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아벨라르두스와 옥캄 등이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보편자는 개별자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다. 명사(terminus)는 여러 개별자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사는 일반적으로 언어적 차원에서 혹은 의미론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실재론에 의하면, 이렇게 여러 가지의 것에 관하여 서술되어지는 술어가 영혼 외부의 존재성을 가진다고 한다.10) 그러나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가 술어가 될 수 있는가? 술어는 순수하게 하나의 심적 개념이나 명사가 아닌가? 하여간 이러한 보편자가 언어적인 것이나 의미론적인 것이 아닌 어떤 영혼 외부의 실재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이들이 실재론자이고 부정적인 이들이 유명론자라고 할 수 있다.

 아벨라르두스와 옥캄은 부정적인 답을 제시한다. 그들에게 보편자는 영혼 외부의 실재적 존재일 수 없다. 필자는 아벨라르두스와 옥캄 그리고 15세기 반-개념론을 통하여 중세 보편자 논쟁의 다양성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또 다른 흐린 윤곽선을 그리려 한다.



4.1.아벨라르두스. 

-중세 초기 보편자 논쟁의 설정.

아벨라르두스의 보편자에 관한 존재론적 입장을 위해선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해야한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이 두 논의가 모두 아벨라르두스의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에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를 라틴어 vox로 표기한다. 즉 보편자를 vox라고 한 것이다. 또한 후기는 이를 sermo라고 한다. 그러면 전기와 후기의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벨라르두스 시대의 vox는 현대 영어의 word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즉 word로 옮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vox는 voice로 옮겨질 수 있다. 당시 중세인들의 이해에 의하면 vox는 발화와 관련된다. 이는 짐승의 것일 수 있고, 인간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vox는 의미 있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의는 당시 문법학의 근간이 된 프리스치아누스(Priscianus)에게도 적용되어지는 것이다.11) 그러면 아벨라르두스는 이러한 vox를 보편자라고 한다. 그런데 vox, 즉 발화는 말하고 들을 때 존재한다. 이때, 의미의 주체인 발화는 시간적 존재로 여겨진다. 이러한 논의는 안셀무스에 의하여 소개되어지는 로스캘리누스의 논의에서도 보여진다. 안셀무스의 『말씀의 육화에 관하여』(De incarnatione verbi)에 의하면, '발화의 소리'(flatus vocis)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지만, 시간적 존재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인다.12) 하지만 이러한 것이 보편자일 있는가? 아벨라르두스는 『논리학』(Logica 'Nostrorum petitioni sociorum')에서 류와 종은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한다.13) 즉 시간적 존재인 발화가 보편자일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를 말(sermo)이라고 한다. 말은 규약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의미의 담지체이다. 규약에 의하여 의미를 가지는 ‘말’은 발화의 어떤 현실적 행위가 없어도 존재하며, 그것은 화자와 청자가 없어도 존재한다. ‘말’이란 것의 존재는 규약의 역사적 사건들에 의존한다.14) 이렇게 아벨라르두스의 보편자에 관한 견해는 발화론에서 유명론(혹은 개념론)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벨라르두스의 보편자에 관한 존재론적 입장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예를 들어, 1982년 말로니(J.Ch.Maloney)는 그의 존재론을 개념론과 유명론의 혼합으로 규정하였고,15) 킹(P.King)은 반실재론이며, 유명론이라 규정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크게 아벨라르두스가 실재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많은 논의는 그를 실재론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다음의 논의를 살펴보자. 그는 상태(status)를 말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인간존재 가운데 일치된다. 이때 이는 인간임의 상태에서 일치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인간에 대한 술어의 공통된 원인이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인간임의 상태를 가지는 한에서 인간이라 서술될 수 있다. 그러면 이 상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가운데 하나의 요소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임은 모든 개별적 인간에 공통된 것이지만, 그들 개별적 인간의 요소로 인간존재를 논의하지는 않는다. 즉 아벨라르두스에게 구별되어지는 각각의 개별자는 분명하게 공통된 요소를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태는 이들에 공통된 어떤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에게 공통된 술어로 보편자는 영혼 가운데 있는 ‘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아벨라르두스의 영향력은 당시 유명론의 전파로 이어진다. 현재 남겨진 당시 수사본 가운데 하나엔 “우리는 유명론자이다”(nos nominales)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수사본의 저자는 스스로 유명론자라고 하면서, 아벨라르두스의 보편자 이론에 큰 영향을 받은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다.16)

 당시 실재론은 류와 종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물을 지칭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제일 명명(first imposition)의 것으로 가정되어진다. 반면 유명론은 류와 종을 어떤 방식으로든 동사적 표현을 지칭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제이 명명(second imposition)의 것으로 가정되어진다.17) 그리고 당시 실재론자들이 보편자를 제이 명명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때, 그 맘에는 아벨라르두스를 두고 있었다. 만일 이렇다면, 아벨라르두스는 당시 유명론의 선구자와 같은 이로 여길 수 있겠다.

 아벨라르두스에게 보편자는 직접적으로 지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 자체로 가공적 대상인 개념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혼돈된 유사성이며, 모든 개별자에 참으로 서술되어지는 공통된 것이다.18)

 아벨라르두스의 시대, 실재론과 유명론 그리고 발화론이 혼돈된 채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로스캘리누스의 발화론과 오도를 비롯한 샤르뜨르학파와 샹포의 윌리엄의 실재론 그리고 아벨라르두스의 유명론 혹은 개념론이 혼재해있었다.

 보편자는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편자는 술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술어가 하나의 사물일 수 있는가? 영혼 외부의 어떤 실재적인 것일 수 있는가 말이다. 이에 관하여 아벨라르두스는 회의적이다. 즉 실재론을 거부한다. 한편 아벨라르두스는 발화론도 거부한다. 인간이라는 보편자가 단지 발화라면, 이는 시간적인 것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은 말하거나 듣거나 하는 순간이 아니고도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단지 발화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벨라르두스는 발화론을 거부한다.

 발화론도 개념론도 보편자를 하나의 명사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단어의 뜻으로만 보았을 때, 발화론도 개념론도 유명론의 일부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둘은 분명하게 다르다. 발화론의 명사는 발화명사이며, 개념론의 명사는 심적명사이다. 그렇기에 아벨라르두스는 개념론에 서 있다고 할 있다. 아벨라르두스는 개념론을 통하여 실재론의 어려움과 발화론의 어려움을 피해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려 하였다. 이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는 지금 남은 당시 수사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벨라르두스의 이러한 해법은 중세 철학사의 수많은 해법 가운데 하나이며, 당시 매우 지도적 영향력을 가진 해법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세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보편자에 관한 보다 분명한 여러 상들이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단비 발화인가, 개념인가, 아니면 실재하는 것인가에 따라서 각각 다른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편자에 관한 중세의 입장들이 아벨라르두스의 시대에 보다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물론 이후 이 각각의 논의는 또 다른 진화를 이어간다. 그러한 진화 가운데 발화론과 같은 것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리하여 14세기에 이르러 발화론은 힘을 쓰지 못한다. 한편 개념론과 실재론은 이후로도 새로운 형태를 가지며 진화를 계속해 나아간다. 아벨라르두스의 시대는 중세 보편자 논쟁의 큰 상들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시기인 듯이 보인다.



4.2.옥캄.

-14세기 보편자의 의미론적 타당성.


4.2.1.‘1277년’ 이후 체계.

옥캄을 흔히 중세의 막을 내리고, 중세 철학의 부흥기에 찬물을 부은 이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옥캄이 주장하였다는 보편자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로 보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옥캄과 옥캄의 철학은 그 시대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13세기 유럽의 철학계를 흔든 1277년의 단죄는 철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1277년의 단죄는 보편자와 개별자의 문제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아베로에스에 의하면, 신은 개별자를 인식하지 못한다.19)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 근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를 학문적 지식의 대상이라고 단언하며, 이는 지성의 대상이라고 한다. 개별적 차이를 일으키는 우유적 요소들은 감각의 대상이며, 이는 지성의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20)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이어가며, 지성의 대상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불변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감각을 가지지 않는 신은 자연스럽게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불변한 것만을 인식한다는 논리가 귀결된다.21) 하지만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렇기에 신이 개별자, 즉 각각의 개별적 인간인 오윤아와 현영 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전지전능하다는 신앙의 내용에 어울리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1277년 이 논의는 단죄된다. 만일 이 논의가 단죄의 대상이 된다면, 지성의 대상이 단지 보편자라는 것도 회의의 대상이 된다.

 1277년 이후 등장한 실재론자인 마테우스(Matthew of Aqasparta)는 지성이 직접적으로 개별자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하며, 개별자에 관하여 보다 긍정적 사고를 연다.22) 즉, 마테우스에 의하면, 질료적 개별자의 통성원리(무엇임, quidditas)는 가지적이다.23) 또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역시 실재론에 입각하여 개별자가 지성의 인식 대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개별자에 관한 보다 긍정적 사고는 옥캄에 이르러 개념론으로 전개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의 대상이며 학문의 대상은 보편적인 것이며, 이는 역시 필연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필연성에 관한 긍정은 회의주의에 관한 회의이다. 학문의 필연성이란 보편자의 필연성이다. 보편자에 관한 회의는 필연성에 관한 회의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보편자를 부정하는 이들은 학문의 필연성을 회의하게 되고, 이는 중세인들에게 쉽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24) 그들에게 세계는 필연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세 후기 개념론은 중세 황금기 철학을 타락시킨 이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1277년 단죄의 자연스러운 역사적 귀결이다. 이 단죄는 신의 절대적 권능을 강화한다. 왜냐하면 신의 절대적 자유를 가지며, 이는 신의 절대적 권능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신의 절대적 권능은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것이며, 이를 변경하게 할 수 있다. 즉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자연의 필연적 법칙을 무너뜨린다. 즉, 필연성의 세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정리해보자. 1277년 단죄는 개별자에 관하여 긍정적 사고를 유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자에 대한 긍정은 보편자의 실재적 존재를 거부하는 개념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영혼 외부에 실재하는 보편자에 관한 부정은 필연성을 부정으로 이어진다. 필연성이란 보편자의 필연성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1277년 이후 옥캄과 같은 이에게 이 세계의 필연성은 단지 신이 허락한 상황 가운데 주어진 조건적 필연성이지, 절대적 필연성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세계는 신의 의지에 따라서 언제나 다르게 되어질 수 있으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새로워질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절대적 필연성을 약화하게 하였고, 다른 한편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야기하였다. 절대적 필연성이 사라진 곳에선 보편성도 회의적이다. 하나의 동일성이란 필연성에 근거하며, 이 동일성은 보편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필연성이란 보편자들의 법칙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필연성의 회의는 보편성을 회의로 이어진다. 분명 신의 절대적 권능은 세계의 자연적 필연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필연성을 넘어 보편성을 회의하게 한다. 그런 결과 중세 후기 개념론 혹은 유명론은 바로 이러한 1277년 이후 철학사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필연적 인과성을 회의하며 동시에 개별자의 세계를 지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1277년 이후 철학계는 개별자를 고민한다. 그리고 개별자에 관한 인식과 이 세계의 인과성에 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다. 스코투스와 옥캄은 개별자를 지성의 대상이라 하였다. 그리고 옥캄은 신은 절대적 권능로 존재하지 않은 것에 관한 직관적 인식이 가능하게 하는 존재라고 한다. 즉 신은 인식대상이란 원인 없이 직접적으로 인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277년 이후 이와 같인 개별자 인식과 신과 세계의 인과성이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한다.

 1277년 이후 옥캄 이전 시대를 이끌던 여러 인물이 있지만, 굳이 세 명을 내세우자면 둔스 스코투스와 두란두스(Durandus of Pourçain) 그리고 아우레올리(Peter Aureole)를 들 수 있겠다.25) 또한 이들 셋은 옥캄의 선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가운데 두란두스와 아우레올리를 간단하게 살펴보겠다.26)

 두란두스는 개별자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는 개념론을 선보인다. 영혼 외부의 실재적 존재를 가지는 모든 것은 단수자이며, 보편성은 단지 개념적 현상, 즉 심적 개념(verbum mentis)이다. 그는 옥캄에 앞서 경제성의 원리를 사용하였으며, 보편성이 영혼 외부에 실재적 존재라는 것을 잘라버린다.27)

 아우레올리는 실재론을 거부한다. 그의 해법은 개념론적이다. 그에게 영혼 외부의 세계는 옥캄이나 두란두스 그리고 아벨라르두스와 마찬가지로 개별자의 세계이다. 그는 개별자의 우선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편자는 단지 개념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아우레올리의 논의는 옥캄의 전기 철학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아우레올리는 보편자를 대상적 존재로 보았다. 즉, 이는 만들어진 것(fictum)이다. 이러한 논의는 옥캄 전기 철학으로 이어지고, 후기 철학에 이르러 거부되어진다. 아우레올리는 당시 옥캄을 비롯한 많은 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다.

 개념론은 두란두스와 아우레올리를 걸쳐 옥캄에 이른다. 둔스 스코투스와 스코투스학파의 인물과 같이 실재론을 고수하며 개별자에 관한 인식을 주장하며, 개별자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두 선생은 보편자의 실재성을 면도날로 자르고 논의를 시작한다. 옥캄은 그 노선에 서 있다. 옥캄에게 세계는 개별자의 세계이며, 보편자는 단지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그는 이러한 자신의 개념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전개한다. 그의 실재론은 인식이론에서 지칭론 그리고 논리학, 등 그가 다룬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개된다.


4.2.2.보편자 논쟁의 대결지점, 지칭론.

 14세기 중세철학계는 혁신논리학의 발전 속에 다양한 논리학적 의미론적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학적 의미론적 논의는 존재론적 사유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실재로 14세기 보편자 논쟁은 의미론의 연장선과 마주한다. 이는 지칭론(supposition-theory)에서 분명해진다. 당연히 실재론의 지칭론과 개념론의 지칭론은 그 길이 달랐다. 즉 버얼리와 같은 실재론자는 지칭론에서 개념론자인 옥캄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실재론에 정당성을 준다. 이제 14세기의 실재론과 개념론을 살피고, 이들의 서로 다른 의미론적 논의를 정리해보자.

 단순지칭은 명사가 보편자 혹은 의미대상을 지칭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species)이다”라는 예를 통하여 중세인들은 이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지 않을 것이다. 개별적 존재는 종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개별자를 지칭하지 않는다. 이 인간은 보편자일 때 이해되어진다. 보편자 인간은 종이기 때문이다. 보편자가 등장한 이상 이 단순지칭은 실재론과 개념론의 대결지점이 되기 충분했다.

 13세기 철학자인 샤우드의 윌리엄(William of Sherwood)은 “인간은 종이다”로 단순지칭을 설명한다. 윌리엄에 의하면 여기에서 ‘인간’이란 명사는 개별적 인간을 지칭하지 않으며, 그것이 의미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다.28) 또한 스페인의 페트루스(Peter of Spain)는 실재론에 보다 충실하게 단순지칭을 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단순지칭의 주어는 개별자를 지칭하지 않으며, 공통본성을 지칭한다.29) 스페인의 페트루스는 단순지칭을 자신의 실재론을 지지하는 수단으로 삼으며, 동시에 자신의 실재론을 지칭론에 담는다.

 반면, 옥캄에게 단순지칭은 단지 영혼의 지향 혹은 개념을 지칭할 뿐이다.30) 그렇기에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이 지칭하는 것은 개별자도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보편자도 아니라, 영혼의 개념을 지칭한다. 이렇게 보자면, 위의 명제는 인간이라는 개념적 기호가 하나의 종이라는 것이다.31) 그렇기에 실재론과는 다르다. 이를 통하여 옥캄은 자신의 실재론을 실천하고, 또한 실재론을 증명한다. 이러한 옥캄과 달리, 버얼리(Burley)는 단순지칭을 다르게 해석하고 전개한다.32) 그는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은 단지 영혼의 개념이 아니라, 나름의 의미대상을 지칭한다고 한다. 버얼리의 이러한 단순지칭에 관한 해법은 이의 실재론 선배인 샤우드의 윌리엄과 스페인의 페트루스 그리고 오세르의 람베르투스(Lambert of Auxerre)와 로저 바콘(Roger Bacon)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들 실재론적 전통에선 단순지칭이 옥캄의 그것과 같지 않다.  버얼리는 명사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의미대상)을 지칭하거나, 그 명사에 의하여 표상되어지는 개별자를 지칭하거나 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전자를 단순지칭이라 하고, 후자를 인칭지칭이라 한다.33) 또 단순지칭이 적용되는 명사는 의미대상을 지칭하는데, 이는 보편자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종이다”라는 명제 역시 이러한 단순지칭의 정의로 적용된다. 여기에서 ‘인간’은 그것이 인간 종 가운데 모든 개별자에 대하여 서술되어는 한에서 보편자를 지칭한다. 쉽게 인간 보편자는 종이라는 사실을 위의 명제는 말한다. 실재론자인 버얼리는 철저하게 실재론의 눈으로 “인간은 종이다”라는 명제를 해석한다.

 버얼리는 보편자의 존재를 긍정한다. 하지만 그 역시 1277년 이후 철학자이다. 한마디로 개별자의 인식과 존재에 관한 철학적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버얼리의 고민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개별자에 관한 인식을 감각에 의하여 제공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주어진다고 하는 것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당시 개별자의 편에 있던 프란치스칸 학파에 가깝다. 그는 지성이 개별자를 일차적이고 직접적으로 인식한다고 본다.34) 하지만 이렇게 개별자에 관하여 그 이전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동시에 보편자의 존재를 긍정한다. 그렇기에 그는 단순지칭에서 보편자를 부정하는 옥캄의 논의에 동조할 수 없음을 당연하다.

 옥캄은 보편자가 여럿에 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정의를 수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술어가 영혼 외부의 실재적 존재성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한다. 그러면서 이는 단지 영혼 가운데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간단하게 그에게 보편자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은 영혼 외부의 어떤 것을 지칭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혼 외부의 것이란 옥캄에게 개별자일 뿐이기에, 만일 영혼 외부의 것이라면, 개별자 인간이 종이라는 것이 귀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귀결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옥캄은 이 명제에서 ‘인간’은 영혼 내부의 개념을 지칭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렇기에 단순지칭은 보편자와 같은 의미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개념을 지칭하는 것이라 정의된다.35) 그런 옥캄은 버얼리의 단순지칭 이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들 각각은 서로 개념론과 실재론의 측면에서 단순지칭을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14세기 보편자 이론에서 동일한 개념론이라고 하여도, 동일한 노선을 가는 것은 아니다. 유명론학파이 옥캄학파니 하는 단순한 이해로 14세기를 이해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옥캄과 뷔리당은 동일한 개념론자라 하여도, 이들이 개념론을 전개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뷔리당은 옥캄과 단순지칭을 다르게 이해하였다. 비록 그 역시 개별자의 세계를 주장하였지만 말이다.36) 그것은 이들이 비록 개념론이란 동일한 노선에 서 있지만, 의미론에선 서로 다른 길을 가기 때문이다.

 1277년 이후 체계는 개별자에 관한 다양한 입장들이 등장한 시기이다. 실재론과 개념론은 각각 나름의 자리에서 개별자에 관한 입장을 정한다. 실재론의 경우도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등과는 많은 경우 다른 논의를 하며 개별자를 정의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살핀 버얼 리가 그렇고, 14세기 철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둔스 스코투스가 그렇다. 아벨라르두스 이후 개념론 13세기의 오랜 침묵을 깨고 1277년 이후 당당하게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개별자만의 세계를 구상한다. 아울레오리와 두란두스 그리고 뷔리당과 옥캄 등이 그러한 인물이다. 이들 실재론와 개념론은 지칭론에서 서로 자신의 논리 속에 지칭론을 완성하려고 한다. 이는 실재론와 개념론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이들의 보편자에 관한 이해에 근거하여 진행된다. 이는 위에서 버얼리와 옥캄의 논의로 확인하였다.

 14세기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보자면, 우선 1277년 체계 이후로 개별자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로 실재론과 개념론의 논의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실재론을 등장하게 하였으며, 또한 개념론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1277년 이후 체계이다. 그리고 또 다른 14세기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보자면, 보편자 논쟁은 보편자 논쟁을 넘어서 의미론적 논의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14세기 중세 철학은 다양한 의미론적 논의와 논리학적 논의가 다루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근저에는 저자의 보편자에 관한 존재론적 입장이 놓여있었다.


4.3.반-개념론의 비판.

옥캄은 이후 강한 비판을 받는다. 맥을 같이 하여, 개념론도 역시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어. 위클리프에 의하여 세워진 영국의 옥스퍼드 학파는 강한 반-개념론을 전개하며, 실재론을 구사한다. 그 외에도 유럽의 각처에서 실재론의 논의가 진행되며 반-개념론이 등장한다. 이들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을 보편자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수용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언어적 차원 혹은 의미론적 차원을 넘어서 스스로의 독립적 존재를 가진다고 여긴다.

 옥캄 이후 반-개념론의 대표적 형태는 위클리프를 수장으로 하는 옥스퍼드학파이다. 위클리프는 보편자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라고 해석을 수용한다. 그는 이러한 보편자를 술어의 한 형태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모든 현실적 보편자는 그 본성 가운데 하위의 모든 것에 관하여 서술되어지는 것이라고 진술한다.37) 이런 의미에서 위클리프는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술어인 보편자의 실재성을 인정한 분명한 실재론자이다. 또한 그는 보편자와 개별자는 실재적으로 동일하며, 단지 형식으로 구분되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위클리프의 보편자는 영혼 외부에 실재적 존재이며,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재적으로 존재하며, 또한 수적으로 단수자와 같은 것이다. 즉 단수자와 보편자는 수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기에 단수자와 보편자는 실재적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단지 형식적으로 구분된다.38) 그렇기에 “오윤아는 인간이다”라는 명제는 옥캄과 그 해석이 다르다. 옥캄에 의하면 ‘오윤아’는 영혼 외부의 개별적 존재를 지칭하는 인칭지칭과 관련되며, 영혼 외부의 것을 향한 제일 지향이다. 반면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개별자가 아니라, 제일 지향에 대한 이차적 지향인 제이 지향이다. 그러므로 옥캄에게 제일 지향인 ‘오윤아’와 제이 지향인 ‘인간’은 동일한 존재성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위클리프에게 위 명제는 옥캄과 다르다. 왜냐하면 그에게 연계사 ‘이다’(est)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개별자인 ‘오윤아’와 보편자인 ‘인간’은 실재적으로 동일하며, 단지 형식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39) 이러한 위클리프의 논의는 15세기 초반 옥스퍼드의 학자들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옥스퍼드학파의 인물로는 요하네스 샤르페(Johannes Sharpe)와 로버트 알링통(Robert Alyngton) 그리고 윌리엄 밀버리(William Milverley) 그 외에도 윌리엄 펜비굴(William Penbygull) 등 당시 여러 학자들이 속한다. 이들은 위클리프가 펼친 보편자와 개별자가 실재적으로 동일하지만, 형식적으로만 구분된다는 것을 수용한다.40) 이러한 옥스퍼드학파는 옥캄과 다른 길에서 보편자를 이해하고 정의한다.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는 15세기 초중반에 걸쳐 활동한 철학자로 실재론을 구사한다. 그는 옥캄이 주장한 영혼의 지향이나 개념 등을 거부한다. 또한 발라의 제자인 루돌프 아그리꼴라(Rudolph Agricola)는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에서 소크라테스 가운데 인간적 본질이 실존한다고 하면서, 동일하게 플라톤에게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모두에게 공이 진술되어진다고 본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양자를 유사하다고 귀결한다. 아그리꼴라는 옥캄이 선사한 보편자 이론을 모두 거부하며, 나름의 극단적 실재론을 구사한다.41)

 이러한 실재론과 함께 개념론 혹은 유명론도 15세기 보편자 논쟁에 한 몫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아칠리니가 그러한 인물이다. 마르쿠스(Marcus de Benevento)는 아칠리니에 관하여 옥캄과 유명론의 길을 열어준 인물로 감사를 표한다.42) 그는 보편자를 지성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으로, 영혼 가운데 있지, 영혼 외부에는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43) 그 외에도 15세기 크라카우에는 옥캄과 함께 개념론의 거장인 뷔리당의 가르침을 중시여기는 뷔리당학파라 불리는 일군의 무리가 등장한다.44) 이들은 15세기 개념론의 한 면을 구성하며 철학사를 채운다.

 이와 같이 15세기에 이르러도 보편자에 관한 실재론과 개념론 혹은 유명론의 다툼을 여전히 지속된다. 1277년도 이후 체계의 대안으로 마련된 옥캄과 뷔리당을 따르는 개념론의 유파와 역시 1277년 이후 체계 속에서 자신의 논리를 만들어가며 개념론을 반대한 실재론이 15세기 보편자 논쟁의 역사를 채워나갔다.



5.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

보편자는 무엇인가? 많은 중세인들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수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하게 중세 보편자는 플라톤의 형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형상은 술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인들이 대체로 인정한 보편자는 술어와 관련된다. 이러한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술어인 보편자에 관하여 그것의 실재성을 인정하면 실재론이고, 부정하면 유명론이다. 유명론자들은 보편자를 단지 명사라고 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그 명사는 발화명사 정도로 이해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이를 심적명사, 즉 개념으로 이해한다. 여기에서 전자는 발화론이고 후자는 개념론이다. 그리고 흔히 철학사가 옥캄이나 뷔리당을 두고 유명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후자의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세 보편자는 크게 실재론과 개념론으로 구분되는 이들의 논의 혹은 논쟁으로 채워진다.

 그러한 논쟁의 역사적 분기점은 1277년 단죄라고 할 수 있다. 단죄는 개별자에 관한 인식을 긍정하게 하였고, 신의 절대적 권능에 관한 더욱 더 세밀한 논의를 요구하였다. 절대적 권능에 의하면 신은 자연의 질서를 다르게 할 수 있다. 즉 기적을 야기할 수 있다. 성찬식에서와 같이 실체 없이 우유만이 잔존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체라는 원인 없이 신의 절대적 권능이 직접적으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학문의 대상이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은 다시 생각해 볼 것이 된다. 사실은 그 필연성이란 신이 허락한 한에서, 그러한 상황 속에서만 필연성을 가지는 조건적 필연성이지 절대적 필연성은 아니게 된다. 절대적 필연성은 학문을 학문이게 하는 것이라고 중세인들은 믿었다. 왜냐하면 학문이란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연성의 세계는 절대적 권능으로 인하여 도전받는다. 이제 절대적 필연성의 세계라는 하나의 상은 도전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세상은 신에 의하여, 만일 신이 지금의 필연적 세계를 포기하고 다른 세계를 원하면 바로 다르게 되어질 수 있는 그러한 곳이 되어버린다. 즉 새로운 세계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필연성뿐 아니라, 보편성에 관한 회의도 야기하게 된다. 필연성은 자연의 동일성을 설명하게 해 주며, 이는 보편성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45) 이렇게 1277년 이후 철학의 세계는 보편자보다 개별자에 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실재론이나 개념론이나 할 것 없이 말이다. 그리고 등장한 인물들이 스코투스, 아우레올리, 두란두스 그리고 옥캄과 뷔리당 등이다. 이 가운데 개념론자들은 보편자를 단지 개념이라 하고, 영혼 외부의 실재성을 가진다고 보지 않는다. 즉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술어는 단지 영혼 가운데 존재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개별자에 긍정적인 사고는 14세기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14세기말에 이르러 서서히 위클리프와 같은 이들은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술어이지만, 그것은 존재를 가진 보편자라고 주장하며, 버얼리와 유사한 형태의 실재론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클리프의 논의는 옥스퍼드학파의 기본 신조가 되어 이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옥캄의 논의는 옥캄학파란 이름으로 15세기에도 존재하였으며, 크라카우와 같은 곳에선 뷔리당과 같은 개념론이 여전히 실재론의 다른 축으로 존재하며 15세기 스콜라 철학을 채워갔다.

 이 정도로 중세 스콜라 철학의 보편자 논쟁의 흐린 윤곽선을 그려보았다. 아직은 흐리다. 앞으로 각각의 윤곽선을 따라 더욱 더 세밀한 선을 그려야할 일이 남았다.


1) 이 글에서 우선 개념론과 유명론 그리고 발화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크게 보편자를 명사라고 하는 것에서 유명론이란 큰 테두리에 놓을 수 있지만, 아벨라르두스와 옥캄은 이 명사를 개념이라고 한다. 즉 개념론을 전개한다. 반면 로스캘리누스와 같은 이는 명사를 발화라고 한다. 이는 심적 명사가 아니다. 이를 최근 연구가들은 발화론이라고 한다. 이글에서 필자는 아벨라르두스를 유명론 혹은 개념론이라고 한다. 이는 발화론과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2) A.Achillini, De universalibus f.63. 이는 다음에서 재인용하였다. H.Masten, Alessandro Achillini (1463-1512) and His Doctrine of Universals and Transcendentals (London: Associated University Press, 1974), 50.


3) 이좌용, 『존재론 연구1』(서울:철학과 현실사,2005), 21-22.


4) 요셉 드 프리스, 『스콜라철학의 기본개념』(왜관:분도출판사,1997), 35-36; Porphyrius, Isagoge, c.de genere, ed. L.Minio Paluello, (Aristoteles Latinus 1, 1966), 13.


5) 요셉 드 프리스, 『스콜라철학의 기본개념』, 36-37.


6) Platon, Politikos 262c10-e3. 필자는 다음의 우리말 역본을 참고하였다. 플라톤, 『정치가』 김태경 옮김 (서울:한길사,2000).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공통명사, 즉 여럿에 관하여 공통되게 서술되어지는 것은 무조건 형상이 아니다. 형상은 정확한 기준에 의하여 마련되어지는 것이지, 여럿에 관하여 서술되어지는 것이 형상은 아닌 것이다. 그리스인의 형상과 그리스인이 아닌 이의 형상을 구분하는 것은 마치 10000을 하나의 형상으로 다른 수(數)의 형상에서 구분하여 형상으로 삼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를 플라톤은 부정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플라톤의 후기 존재론이 전개되는 『정치가』와 『소피스테스』 등에서 다루어진다.


7) Alαin de Liberα. L'αrt des gènèrαlitès (Paris:Aubier,1999), 48.


8) M.Tweedale, "Aristotle's Realism" Canadian Journal of Philosophy 18 (1988), 501.


9) Alαin de Liberα. L'αrt des gènèrαlitès, 118. R.Sharples는 중세의 추상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개별자로부터 보편자를 추상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자로부터 개별적 우유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매우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 P.Spade, "The Problem of Universals and Wyclif's Alleged Ultraraelism" Vivarium 43,1 (2005), 115.


11) J.Marenbon, The Philosophy of Peter Abelard (Cambridge:Cambridge University Press,1997), 176.


12) S.Tetsuro, "From Vocalism to Nominalism: Progression in Abaelard's Theory of Signification" Didascalia vol.2 (1996), 31; cf. Anselmus, De incarnatione verbi, ed.Schmitt (Opera Omnia 2), 9.22.


13) Anselmus, De incarnatione verbi, 524.21-24.


14) S.Tetsuro, "From Vocalism to Nominalism: Progression in Abaelard's Theory of Signification", 35.


15) J.Maloney, "Abailard's Theory of Universals" Notre Dame Journal of Formal Logic 23 (1982), 27.


16) Y.Iwakuma, "Nominalia" Didascalia 1 (1995), 70.


17) Ibid., 69.


18) J.Maloney, "Abailard's Theory of Universals", 32.


19) 이재경, 「해제-아베로에스, 이슬람에서 합리주의를 외치다」『결정적 논고』이재경 옮김 (서울:책세상,2005), 83-86.


20) Aristoteles, De anima 2, 417b 20-25. 이에 관한 우리말 역본을 참고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영혼에 관하여』유원기 옮김 (서울:궁리, 2001).


21) 이재경, 「해제-아베로에스, 이슬람에서 합리주의를 외치다」,83.


22) G.Payne, "Cognitive Intuition of Singulars Revisited" Franciscan Studies 41 (1981), 346-384.


23) Ibid., 350-351.


24) 에티엔느 질송, 『존재와 사유』박영도 옮김 (대구:이문출판사,1985), 67-128.


25) G.Leff, The Dissolution of The Medieval Outlook (New York:Harper Torchbook,1976), 33.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하클레이와 같은 이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기에 우선은 레프의 정의에 따라 세 명만을 열거한다.


26) 스코투스에 관한 논의는 차후로 미루어둔다. 스코투스의 공통 본성에 관한 논의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박우석, 「공통 본성의 귀환:아리스토텔레스를 원용한 스코투스의 현묘한 논변들」『중세철학의 유혹』(서울:철학과현실사,1997), 152-183.


27) R.Friedman, "Durandus of Pourçain" In A Companion to Philosophy in the Meddle Ages, ed.J.Gracia et al. (Oxford:Blackwell,2003), 249-253.


28) William of Sherwood, William of Sherwood's Introduction to Logic, trans. N.Kretzmann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apolis Press,1966), 111.


29) Ph.Boehner, Medieval Logic (Westport:Hyperion Press,1988), 34.


30) Ockham, Summa logicae 1.12 (OP.1, 1.41-44).


31) C.Panaccio, Les Mots, Les Concepts et Les Choses (Monteal:Bellaraium;Paris:Vrin,1991), 40.


32) J.Biard, Guillaume d'Ockham - Logique et philosophie (Paris:Puf,1997), 48.


33) Ph.Boehner, Medieval Logic, 47.


34) 이반 보, 「월터 버얼리」『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 조지 그라시아 엮음, 이재룡 이재경 옮김 (서울:가톨릭출판사,2003), 635.


35) Ockham, Summa logicae 1,64 (OP.1, 196.26-32).


36) Ch.Kann, Die Eigenschaften der Termini (Leiden:Brill,1994), 61. 칸은 옥캄과 삭소니의 알베르투스 그리고 뷔리당의 단순지칭을 서로 구분하고, 이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개념론 혹은 유명론적 흐름에 동참하였지만, 분명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단순지칭을 이해하고 있다.


37) J.Wyclif, On Universals (Tractatus de universaibus), trans. A.Kenny (Oxford:Clarendon Press,1985), 17.


38) P.Spade, "The Problem of Universals and Wyclif's Alleged Ultraraelism", 120.


39) Ibid., 121.


40) A.Condi, "Johannes Sharpe's ontology and Semantics: Oxford Realism Revisited" Vivarium 43.1 (2005), 156-186.


41) E.Kesser, "Die verborgene Gegenwart Ockham's in der Sprachphilosophie der Renaissance" In Die Gegenwart Ockhams, ed. W.Vossenkuhl et al. (Weinheim:VCH,1990), 148-154.


42) H.Masten, Alessandro Achillini (1463-1512) and His Doctrine of Universals and Transcendentals, 64.


43) Ibid., 50.


44) M.Markowski, "Der Buridanismus an der Krakauer Universitat im Mittelalter", In Die Philosophie im 14. und 15. Jahrhundert, ed. O.Pluta (Amsterdam: Verlag B.R.Gruener, 1988), 245.


45) 이좌용, 『존재론 연구1』,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