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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마이론의 프란치스의 인식론

마이론의 프란치스의 인식론적 실재론 정리<마우어를 길잡이로 삼아>
A.Maurer, "Defence of Epistemonogical Realism" In Being and Knowing  (Toronto: PIMS, 1990), 311-332.

유대칠 정리
(토마스철학학교)

 

14세기의 많은 철학자들의 우선적 관심사는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신의 절대적 권능에 준하여 사고하였다. 그리고 당시 인식론적 논의도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고려하여 생각해보면, 신은 현실의 삶 가운데도 인간의 정신 가운데 신학적 진리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은 전능하여 하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은 것에 관한 직관적 인지를 인간에게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쉽제 넘어갈 수없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은 것에 관해서도 인식하는 존재가 될 것이고, 이는 우리의 지식에 근거에 관하여 회의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중세 후기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론을 제시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14세기 이후, 아니 더 엄밀하게 1277년 이후 신의 절대적 권능이 철학자와 신학자의 작업에 가장 기초적인 것이 되게 강요된 이후, 인간 지식에 관한 회의와 이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마이론의 프란치스(Francis of Meybonnes)가 있다. 그는 북부 프랑스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였고, 그곳에서 신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스코투스의 제자 가운데 하나였으며, 매우 중요한 스코투스의 일원이다.
그는 "명제론 주해"에서 실존하지 않은 어떤 것에 관한 직관적 인지의 가능성에 대하여 다룬다. 그는 이 주해에서 감각적 지각과 감각에 따른 지성적 직관의 대상의 실재성을 옹호한다. 이러한 것은 아우레올리의 표상주의와 옥캄의 회의주의적 경향에 반대하는 결과였다. 이를 통하여 프란치스는 세계 가운데 실재성을 가지는 대상에 근거한 든실한 직관적 인지를 옹호하려 한 것이다.
간단하게 14세기 인식론의 체계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전문 용어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이다. 이러한 구분은 우선적으로 스코투스에 의하여 고안된 것이다. 중세 후기철학자인 홀코트는 이러한 용어는 철학자나 그외 다른 이들에 의하여 고안되거나 사용된 것이 아니라, 스코투스에 의하여 고안되고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스코투스에 의하여 고안된 이 용어는 중세 후기 철학자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고, 다들 이를 가지고 고민하였다. 예를 들어, 옥캄을 비롯한 옥캄주의가 그러하고, 스코투스주의 그리고 토마스주의 역시그렇다. 스코투스의 주해가 가운데 하나인 멜둘라의 마스트리우스(Mastrius de Meldula)는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 사이의 구분을 지식의 모든 구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이렇게 이러한 스코투스의 작품은 인간 지식에 관한 중세 후기 인식론의 핵심에 있었다.
스코투스에 의하여 직관적 인지는 실재 가운데 대상이 있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어떤 실재하는 것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 추상적 인지는 그 대상의 실존으로 부터 추상하여 얻은 그러한 것이다. 추상적 인지 가운데 대상은 상이나 유사상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관적 인지는 그 대상의 현실적 실존 가운데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코투스는 실존하지않은 대상에 관한 직관적 인지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당상 아우레올리에 의하여 공격받는다. 아우레올리는 우리가 대상의 실재적 존재 없이 그것에 관한 감각이 가능하지 않는 것인가를 회의한다. 그러면서 꿈의 예를 든다. 꿈에서 우리는 그 대상의 현실적 존재 혹은 실존 없이 감각적 지식을 하지않은가라며 말이다. 또한 신은 그의 절대적 권능으로 현실적 존재 없는 대상에 대한 직관을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신은 인식에서의 인과성에 개입하여 인간에게 직관적 인지를 야기할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논의는 옥캄에게로 이어진다. 옥캄은 직관적 인지가 신에 의하여 초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대상에 관하여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는 이러한 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지만, 신에 의하여 초자연적으로 일어날 수는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은 별일 지라도, 신의 절대적 권능에 의하여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에 의하여 제정된 자연의 일상적 법칙에 의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옥캄과 아우레올리는 같은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옥캄은 이 두 지식을 구분하였지만, 아우레올리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우레올리는 직관적 인지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이로 직관적 인지와 추상적 인지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지향하는 지식의 방식으로 이 둘을 구분하여 이해할 뿐이었다. 그러나 옥캄은 이 둘을 그 자체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이둘과 구분되어 또 다른 해결책은 샤톤이었다. 그는 옥캄의 논의를 회의주의적 흐름으로 간주하고, 이를 경계하였다. 그는 인간이란 자연적으로 그 존재를 결핍하는 것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스코투스에게 동의하고, 옥캄과 아우레올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14세기 초는 인간의 인식과 신의 절대적 권능을 두고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프란치스는 스코투스 이론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1320년에서 1321년동안 명제론을 주해하였고, 샤톤과 같이 그의 주해 가운데 일부분을 직관적 인지에 대한 논의에 할애하였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옥캄주의와 아우레올리에 반대하였다.
프란치스의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그는 직관적 인지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상대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의 눈에 옥캄과 아우레올리가 생각한 직관적 인지는 본질적으로 실존하는 대상과 관련되지 않는 절대적인 것으로 파악되어지는 것이다. 프란치스는 이러한 점을 논박한다. 옥캄에 의하면, 지식이란 성질의 범주 가운데 있는 하나의 실재적인 것(res)다. 그것은 그렇기에 그 대상으로 부터 분리된 어떤 것이다. 아우레올리 역시 직관적 인지를 그 자체 외부의 모든 것과 독립된 것으로 절대적 실재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프란치스는 분명하게 자신과 옥캄 그리고 아우레올리를 경계짓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지식이란 절대적 실재성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그 대상과 관련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직관적 인지는 본질적으로 현실 가운데 실존하는 대상과 관련되어 가능할 뿐이기 때문이다. 즉, 프란치스는 직관적 인지를 절대적 실재성으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지식이란 그저 관계적인 것이다. 관계적인 것이란, 관계되어지는 양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옥캄과 아우레올리는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고, 이는 대상과 분리된 그 자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많은 중세 후기 이후 현대에 이르도록 많은 철학자들이 인식론에서 지식이란 절대적인 것과 외부 세계 가운데 존재하는 현실적 실재성으로 대상 사이의 다리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러나 프란치스에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경험의 세계는 실재적 세계와 동일하며, 그렇게 다리놓여야할 그들 사이의 어떤 틈도 없기 때문이다. 프란치스는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현실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직관적 인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한 직관적 인지의 정의 자체가 이에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소개한 프란치스의 해법으로 이 문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에 관한 더 많은 학습과 연구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여기에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