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초벌 번역이며, 완전형이 아닙니다. 혹시 참고할 분이 있다면 함께 고민해봅시다. 자세한 화일을 위의 주소를 클릭해보세요.
글의 권리는 유대칠이 가지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원소의 혼합에 관하여
유대칠 옮김
(토마스철학학교)
<문제제기>
1. 일상적으로 원소가 혼합체 가운데 존재하는 방식에 대하여 많은 이들 사이에 의문이 있다.
<아비첸나의 견해>
2. 원소의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성질이 어떻게든지 변화를 통하여 중재되므로 변형되어질 때, 원소의 실제적 형상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어떤 이들은 보았다. 왜냐하면 만일 실체적 형상이 여전히 남아있지 않다면, 어떤 원소의 소멸인 것으로 보일 것이고, 혼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다르게, 만일 혼합 물체의 실체적 형상은 단순 물체의 형상을 전제함 없이 질료의 현실태라면, 그러면 원소의 단순
물체는 정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원소는 우선적으로 그로 인하여 혼합되어지는 것이며, 그 가운데 있고, 종에 의하여 개별적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실체적 형상이 철회된다면, 혼합체는 더 이상 그것들이 그 가운데 머무는 그러한 방식으로 단순 물체로 혼합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동일한 방식에서 원소의 상이한 형상을 취하는 질료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만일 원소의 실체적 형상은 혼합체
가운데 보존되어진다. 그러면 그러한 질료의 상이한 부분 가운데 내재해야만 한다. 즉, 질료 가운데 이미 이해된 양(量) 없이 질료의 상이한
부분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만일 양이 철회된다면, 『자연학』 1권에서 분명하듯이 개별적 실체는 지속된다. 물리적 물체는 양이
실존하는 가운데 그리고 실체적 형상에 도달함에 의하여 질료로 구성되어진다. 그러므로 원소의 형상을 통하여 실존하는 질료의 상이한 부분은 다수의
물체의 측면에서 취해졌다. 동시에 <하나의 사물이> 많은 물체인 것을 불가능 하다. 그러므로 4원소는 혼합체 가운데 각각의 부분에
실존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참된 혼합은 아니지만, 마치 작음으로 인하여 지각 되지 않는 혹은 시각적이지 않는 물체의 집합 가운데
일어나는 것처럼 감각에 의한 <혼합>이다.
4. 게다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여 모든 실체적 형상은 질료 가운데
고유한 상태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변화는 생성과 소멸로 향하는 길이다. 그러나 불의 형상에 의하여 요구되어지는 고유한 상태와 물의 형상에 의하여
요구되어지는 고유한 상태는 동일한 사물 가운데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태에 의하면, 불과 물은 반대되기 모순이다. 모순이
동일한 사물 가운데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불과 물의 실체적 형상이 혼합체의 같은 부분 가운데 존재함은 불가능하다. 만일 혼합체가
만들어 졌다면, 단순 물체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을 때, 참된 혼합체가 아닌 것이 귀결되어진다. 그러나 나란히 놓여진 부분이 작음에 의하여
감각적이지 않는 것일 때처럼 감각에 의하여, 단지 <혼합체>이다.
<아베로에스의 이론>
5. 이들 논의를 피하기 바라는 어떤 이들은 더 부적당한 것 가운데 떨어진다.
6. 왜냐하면, 원소의 소멸과 혼합을
구별해야하기에, 그들은 원소의 실체적 형상은 어째든 혼합체 가운데 여전히 머물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각에 의한 혼합과 진리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강제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원소의 형상이 그들의 전체에 의하여 혼합체 가운데 남아있지 않으나, 그것이 어떤
중계자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소의 형상이 더함과 덜함을 위한다고 말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모순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냐하면 분명하게 이것은 일반적인 견해와 어떤 것도 실체에 모순 되지 않으며, 이는 더 많이 그리고 더 적음을 취하지
않는 것이라는『범주론』에서 말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에 의하여 논박되어진다. 게다가 그들은 제일 질료에 가장 가까운 것처럼 원소의 형상은 가장
불완전하다고 계속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체적 형상과 우유적 형상 사이에 중간의 것이다. 그리고 따라서 그것들이 우유적 형상의 본성에
다가가는 한에서 그것들은 더함과 덜함을 취할 수 있다.
7. 이러한 입장은 다양한 면에서 의심스러운
것이다.
8. 첫째로 왜냐하면, 실체와 우유 사이의 어떤 중계자가 존재함은 전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 이유는 긍정과 부정
사이에 어떤 중계자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주체 가운데 존재하는 것은 우유의 속성이며, 참으로 주체 가운데 존재하는 것은 실체의
속성이 아니다. 실체적 형상은 질료 가운데 어떤 것이 이지만, 이는 주체 가운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주체는 '이 어떤 것'이지만, 그러나
실체적 형상은 이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그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9. 유사하게 『형이상학』 10권에서 해결되었듯이,
중계자는 하나의 유(類) 가운데 있지 않는 것 사이에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계자와 끝은 동일한 유로부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와 우유 사이에 중계자는 아무 것도 없다.
10. 더구나, 원소의 실체적 형상은 더함과 덜함을 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주체가 더함 혹은 덜함 양자는 그 가운데 분유할 수 있는 한에서 더함과 덜함을 취하는 모든 형상은 우유에 의하여
구별되어진다. 그러나 『자연학』 6권에서 분명하듯이, 본질적으로 혹은 우유적으로 구별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써 연속된 운동이 있음이 일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장소의 변화와 본질적으로 구분되어지는 양과 장소에 의한 증가와 감소가 있으며, 뜨거움과 흰 것과 같이 더함과 덜함을 취하는
양에 의하여 변화가 있다. 그러므로 원소의 형상이 덜함과 더함을 취한다면, 원소의 생성과 소멸 양자는 연속된 운동이 될 것이다. 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연학』 5권에서와 같이 운동은 양과 성질 그리고 장소와 같은 세 종류 가운데 제외한 어떠한 연속된 운동도 없다.
11. 게다가 실체적 형상에 의한 모든 차이는 종을 다양하게 한다. 그러나 더함과 덜함을 취하는 한에서 더하는 것은 덜함 것과
다루다. 그리고 더 하얀 것과 덜 하얀 것과 같이 어떤 방식에서 그것에 반대이다. 그러므로 만일 불의 형상이 더함과 덜함을 취한다면, 그러면
그것이 더하게 만들어지고 혹은 덜하게 만들어질 때, 그것은 종을 다양하게 하며, 그리고 동일한 형상이 아니지만, 그러한 또 다른 것이다. 이는
철학자가 『형이상학』 8권에서 말한 이유이다. 이는 수 가운데와 같이 종은 더해짐과 삭감에 의하여 다양하게 되어진다. 그렇게 실체 가운데
그렇다.
<토마스 자신의 견해>
12. 그러므로 다른 방식을 찾아야한다. 그 방식으로 인하여 혼합의 진리가 보전되어지고 원소가 전체적으로
훼손되어지지만, 그러나 어떤 방식에서 혼합체 가운데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므로 원소의 능동적 성질과 수동적 성질이 서로 반대된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함과 덜함을 취한다. 더함과 덜함을 취하는 반대되는 성질로부터 중계되는 성질은, 하얀 것과 검은 것 사이의
회색의 것과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사이의 미지근한 것과 같이, 양 끝의 본성 가운데 향기를 가지는 것으로 구성되어질 수 있다. 그렇게 원소적
성질의 완전성이 누그러질 때, 중계하는 성질의 종류는 혼합체의 고유한 성질인 것으로 구성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합의 상이한 속성에 의하여
상이한 것 가운데 구별된다. 그리고 이 성질은 혼합체의 형상에 의한 고유한 속성이며, 마치 단순 성질은 단순 물체의 형상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양 끝의 것은 양쪽의 본성을 분유하는 중간 가운데 찾아지듯이, 그렇게 단순 물체의 성질은 혼합체의 고유한 성질 가운데 찾아진다. 단순
물체의 성질은 실체적 형상 그 자체이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실체적 형상의 능력 가운데 작용한다. 다른 방식으로 뜨거움은
단지 뜨거움을 뜨겁게 하는 것이지만, 실체적 형상은 그 <뜨거움의> 행위에 의하여 그 현실태 가운데서 이끌려나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을 넘어 행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13. 그러므로 단순 물체의 실체적 형상의 능력은 혼합체
가운데 보전되어진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능력에 의하여 원소의 형상이 혼합물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성소멸에 관하여』 1권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소는 마치 육체와 하얀 것이 그렇듯이 명백하게 현실적으로 혼합체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 가운데 양자의 어느 것도 파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능력이 여전히 보존되어있기 때문이다."
'한글로 읽는 중세 철학 > 한글 토마스아퀴나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이교도대전" 3권 65장 신은 존재 가운데 사물을 보존한다. (0) | 2006.02.16 |
---|---|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 서론에서 2장까지 (0) | 2006.01.10 |
토마스 아퀴나스의 공부 방법에 관한 편지 (0) | 2006.01.08 |
토마스의 "자유토론집" 5,6,1 빵의 형상은 성사 가운데 사라지는가? (0) | 2005.05.10 |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유토론집 2,1.1-그리스도는 죽음의 삼일 동안 수적으로 인간과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0) | 2005.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