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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라벤헴의
미래 사건에 관한 논고
유대칠 옮김
(토마스 철학 학교)
미래 사건을 다루는 우리의 주제는 네 가지 견해들이다. 첫째는 모든 미래 사건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스토아 학파의 견해이다. 그리고 여전히 속인들의 견해로 남아있다. 둘째는 신이 어떤 방식으로도 미래 사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치체로와 일부 플라톤주의자들의 것이다. 셋째는 미래 사건에 관해서는 결정된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해석/명제론}에서 보이는 것이다. 넷째는 신이 결정적으로 모든 미래 사건을 안다는 것이지만, 미래에 있는 사건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우유적이라는 것이다.
첫 견해는 거짓이고, 오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래와 같이 풀어진다.
왜냐하면 활동성의 어떤 종류라도 인간은 행할 것이고, 그는 필연적으로 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능력 가운데 그가 후에 행할 어떤
것을 피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만일 인간이 후에 행할 어떤 것을 피할 능력이 그 가운데 없다면, 그는 자유롭게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과 속인들은 유사하게 생각한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부 불운을 그들이 볼 때, 그들은 그의 운명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것은
그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난 것이라 한다.
둘째 견해는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5권 9장과 10장에 따라서 거짓이고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 둘째 견해는 신이 불합리한 일어남에 관하여 지금 알지 못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였던 셋째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어긋난다. 이 견해는 신이 더 이상 결정적으로 안티 그리스도(anti-christ)가 없을 것이라는 것 보다 더 안티 그리스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없으며, 그는 더 결정적으로 정의의 날이 일어나지 않을 것 보다 더 정의의 날이 일어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결정적으로 죽음의 부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지 보다 죽음의 부활이 일어날 것을 더 잘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미래 우연자는 아직 결정적으로 참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명제 의하여 말이다.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다'와 '죽음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에 관한 우연적 명제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로 결정되어지지 않으며, 그리고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거짓된 것 보다 더 참된 것이 결정되어질 수 없으며, 혹은 역으로 말이다. 추론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전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명제론" 가운데 있다. 이 견해는 미래가 참이라는 것에 관한 우연적 명제는 없으며, 그리고 그러한 명제는 거짓도 아니다. 이 견해는 옥캄이 {해석/명제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가 그렇다.
넷째 견해는 현대 사람들의 견해이다. 그리고 신앙심이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 가운데 말이다.
반대: 이 견해에
의하면, 필연적으로 정의의 날이 일어나고, 필연적으로 죽음의 부활이 일어나고, 안티 그리스도 역시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유사하게 어떤 미래
우연자로 보이지 않는다. 추론은 분명하며, 그리고 전건(antecedent, 前件)은 아래와 같이 풀린다. 왜냐하면, 신은 영원으로부터 심판의
날이 일어나고, 그러므로 정의의 날이 있을 것임을 안다. 추론은 정확하다. 왜냐하면, 필연적 명제로부터 단지 필연적 명제는 좋은 추론 가운데
나온다. 전건이 필연적으로 해결되어지며, 왜냐하면 전건은 긍정적이고, 관거에 관한 참된 명제, 그것의 진리는 미래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건은 필연적이다. 추론은 일반적 법칙과 함께 전건 가운데 분명하다.
유사하게, 나는 아래와 같이 논의한다. 필연적으로 안티 그리스도는 있을 것이고,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안티 그리스도는 도래할
것이다. 전건은 아래와 같이 풀어진다. 신은 안티 그리스도가 있을 것을 의지한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안티 그리스도가 있을 것이다. 이 추론은
정확하다. 그리고 전건은 필연적이고, 그러므로 그렇게 후건(귀결)이 있다. 전건인 것은 필연적으로 풀어진다. 왜냐하면 전건은 신에 의하여
불변하게 알려진다. 그리고 모든 그러한 것은 신에 의하여 불변하게 알려진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신에게 알려진다. 그러므로 전건은 신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알려진다. 추론은 분명하며, 그리고 소전제는 모든 불변하는 필연적인 것으로부터 해결되어진다. 그리고 대전제는 해결되어진다. 왜냐하면,
만일 전건이 신에 의하여 불변하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전건이 그 자체로 신에 의하여 알려진다면, 그러므로 전건은 그 자체로 변화하게
신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따라서 신은 변화적으로 어떤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러므로 만일 그것이 그의 앎의 방식은 변화되어지는 것이
귀결되며, 그것은 그의 지식이 변화되어진다는 것이다. 그 귀결은 거짓이고, 오류이다.
이 논의에 답하는
가운데, 모든 미래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거부되어진다. 나는 신이 영원으로부터 심판의 날이 일어날 것을 알았으며, 그로 인하여
심판의 날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첫 추론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전건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거부한다. 그러므로 증명에 의하여, 왜냐하면, 전건은
그의 진리가 미래에 의존하지 않는 과거에 관한 긍정 명제이기 때문에 동의된다. 그것은 그러므로 필연적이다. 나는 추론 가운데 인정하지만, 나는
전건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분명하듯이 그의 진리는 미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일 안티 그리스도가 되어지지 않았다면, 신은
영원으로부터 그가 나올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논의에 따르면, 나는 신이 변화적으로 어떤 것을 알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을 혹은 앎의 방식이 변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신에 의하여 알려지는 것은 무엇이듯이 불변적으로
알려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에 의하여 불변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그것이 신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라벤헴에 의하여 미래 사건에 관한 논의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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