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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장의 생존기

철학은 철학과라는 틀에 한정되지 않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라는 건
대학 안에 생겨난 지 200년 정도밖에 안 됐어.
그 이전엔 철학과가 따로 독립된 학과로
석사니 박사니 하는 과정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칸트조차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철학과 교수가 아니었어.
헤겔쯤 가서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의미의
철학과 교수가 등장했다고 보면 돼.
그러니까 철학사의 대부분은
‘철학과’라는 게 없던 시대야.
오히려 철학이 철학과라는 틀에 들어가면서부터
스스로를 묻게 된 거지.
"철학은 뭐지?"
그 질문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야.
그래서 그 시기에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그에 답하려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거고.
결국 철학은 철학과 밖에서도
오랜 시간 철학이었고,
철학자의 자리는 대학 안이 아니라
삶의 자리 그 자체였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그 길로 가려면
진짜 큰 용기가 필요해.
그냥 취미로 할 게 아니라면
생계 유지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잖아.
철학이란 게 원래 생계용으로
딱히 특화된 학문도 아니고 말이지.
나는 대학에서 철학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어.
그래서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자리에서 철거하고, 폐기물 치우고,
생계 해결하면서도 철학 공부를 놓지 않고 있어.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고,
지금 내 철학자의 자리인 거지.
 
유대칠 
2025 0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