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대사 능력의 선포에 관한 논고
Martinus Luther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마르틴 루터 씀
유대칠 옮김
21. 그러므로 교황의 대사로 사람이 모든 벌에서 풀리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 말하는 대사의 선포자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21. Errant itaque indulgentiarum predicatores ii, qui dicunt per pape indulgentias hominem ab omni pena solvi et salvari.
22. 그러니 사실 교회법에 따라서 현생에서 해결해야 했어야만 했던 것이기에 연옥에 머무는 영혼들의 것은 조금도 덜어주지 못합니다.
22. Quin nullam remittit animabus in purgatorio, quam in hac vita debuissent secundum Canones solvere.
23. 만일 누구든 모든 벌의 온전한 사면(remissio)이 그에게 주어진다면, 이는 가장 온전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게 확실합니다. 즉 아주 드물게 몇몇 이에게만 주어질 겁니다.
23. Si remissio ulla omnium omnino penarum potest alicui dari, certum est eam non nisi perfectissimis, i. e. paucissimis, dari.
24. 그런 이유로 민중 대부분은 꼭 벌에서 풀어 주겠다는 그 차별 없고 엄청난 약속에 속아 버리는 겁니다.
24. Falli ob id necesse est maiorem partem populi per indifferentem illam et magnificam pene solute promissionem.
25. 교황은 일반적으로(generaliter) 연옥에 대한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주교(Episcopus)와 본당 사제(Curatus)가 특별히(specialiter) 각각 자기 교구와 자기 본당에서 그러한 권한을 가집니다.
25. Qualem potestatem habet papa in purgatorium generaliter, talem habet quilibet Episcopus et Curatus in sua diocesi et parochia specialiter.
26. 교황은 그가 사실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열쇠의 권능이 아니라, 전구(轉求)의 기도(suffragii)라는 방식으로 영혼을 면제시키는 것은 아주 잘하는 겁니다.
26. Optime facit papa, quod non potestate clavis(quam nullam habet) sed per modum suffragii dat animabus remissionem.
27. 돈주머니로 던져진 동전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그 영혼은 날아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는 인간의 것을 선포한 겁니다.
27. Hominem predicant, qui statim ut iactus nummus in cistam tinnierit evolare dicunt animam.
28. 돈주머니에 던져진 딸랑거리는 돈 떨어지는 소리는 갈망과 욕심을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전구는 오직 하느님의 재량에 있을 뿐입니다.
28. Certum est, nummo in cistam tinniente augeri questum et avariciam posse : suffragium autem ecclesie est in arbitrio dei solius.
29. 노리쿰의 성 세베리누스(Severinus Noricus)와 교황 파스칼 1세(Paschalis PP. I)에 관한 이야기처럼, 연옥의 모든 영혼이 용서받기를(redimi) 원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29. Quis scit, si omnes anime in purgatorio velint redimi, sicut de s. Severino et Paschali factum narratur.
30. 누구도 자기 뉘우침의 슬픔(contritionis)의 참됨을 두고 마음 편할 수 없는데, 사면의 온전한 결과를 두고는 더 할 겁니다.
30. Nullus securus est de veritate sue contritionis, multominus de consecutione plenarie remissionis.
유대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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