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무너지고 하나의 거대한 질서가 사라진 서유럽을 생각해 보자. 하나의 거대한 질서의 사라짐은 곧 무질서이고, 무질서는 더 이상 하나의 거대한 중심이 자신의 주변을 변두리로 두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변두리에서 작은 중심이 된 다수, 그 다수는 새로운 서유럽을 만들어간다. 서로마제국 이후 더는 로마인이 중심으로 있는 제국의 시대는 서유럽에 오지 않는다. 그 대신 서유럽 곳곳에 다양한 왕국들이 등장해 그 무질서의 시대를 대체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서고트족'은 서로마제국이 사라진 이후 이베리아 반도,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정착한 게르만족이다. 이들은 5세기에서 8세기까지 이 지역에 왕국을 세워 유지하였다. '동고트족'은 서로마제국이 사라진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한 게르만족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라벤나를 중심으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왕국을 유지하였다. '반달족'은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이후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다. 그들 역시 5세기 초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왕국을 유지하였다. '프랑트족'은 지금은 프랑스와 벨기에에 정착한 게르만족이다. 이들은 6세기에서 8세기까지 메로빙거 왕조의 왕국을 유지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이후 영국에 정착한 게르만족으로 이들은 5세기에서 10세기까지 여러 왕국을 세웠다. '롬바르드족'은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한 게르만족으로 6세기 후반에서 8세기 중반까지 왕국을 유지하였다. 다양한 왕국이 있던 서유럽에 샤를대제(Charlemagne, 747~814), 즉 카를로스 대제가 등장한다. 그는 서유럽을 지배하던 여러 게르만족 가운데 하나인 프랑크족의 왕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차 영토를 확장했고, 결국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부 지역을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왕국을 이루었다. 흩어진 다수의 작은 중심이 다시 하나의 중심으로 묶인 거다. 하지만 샤를대제의 왕국은 광대했지만, 하나의 완전히 통일된 실체는 아니었다. 그의 왕국 안 여러 지역과 민족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그리고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그들 사이 긴장과 갈등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샤를대제 이후 그의 후계자들은 그의 거대한 왕국은 다시 여럿으로 분할하였고, 작은 그 큰 하나는 다시 작은 여럿으로 분할되었다. '서프랑크 왕국', 지금의 프랑스와 '동프랑크', 지금의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지역으로 왕국은 분할되었다. 다시 서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질서, 하나의 중심은 사라진다. 서유럽은 농업 생산력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역의 권력자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통치하는 지역의 잉여 생산물만으론 부족했다. 그러니 그들은 전쟁을 통한 지배 지역의 확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니 제국이 되려는 이념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농민층을 자기 토지 가운데 통제하며 전쟁이 아닌 자기 지역의 잉여 생산물만으로 자신의 권력과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서는 하나의 강력한 제국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왕을 정점으로 귀족과 농노로 이어지는 위계적 사회 질서로 이루어진 '봉건제'는 왕에게 군역을 제공하는 대가로 토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토지는 하나의 장원이 되어 귀족, 즉 영주는 그 장원에서 일하는 농노를 관리하고 그 노동의 결실을 제공받았다. 이러한 '봉건제'와 '장원제'는 과거와 다른 세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굳이 제국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 없는 세상이 열린 거다. 각각의 장원은 하나의 독립된 단위의 작은 중심이 되어갔다. 처음 장원은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유지했지만, 이들의 잉여 생산물을 서로 사고팔면서 상업이 시작되고 이는 곧 수공업을 흥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경제적 분위는 바로 토지 없어도 이윤을 내는 은행과 같은 금융업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바로 도시가 등장한다. 이때 도시는 과거 제국의 도시와는 다르다. 제국의 도시는 전쟁에서 명령을 내리는 왕과 같은 중심지였다면, 즉 명령을 내리는 곳이라면, 이때 등장한 도시는 상업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기보다 조금씩 서로 간의 약속으로 규칙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규칙으로 조합을 만들어 다른 조합과 협력하고 경쟁하는 그런 공간이다. 이런 도시의 조합을 따라 대학교가 등장한다.
서로마제국이 사라지고, 거대한 제국의 보편적 질서는 사라지고, 마을의 작은 성당과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가 보편성의 중심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위계질서는 그리스도교의 위계질서가 서서히 대신하였다. 거대한 제국의 대성당은 아니지만, 지방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먼 곳에서 성유물을 모아 자신의 성당에 두며, 순교자의 무덤과 성유물의 공간인 대성당을 재현하였다. 자신의 작은 성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거대한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보편성의 일원, 즉 개체임을 확인받았다. 대성당의 미사는 그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작은 성당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 본질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개체적 조건 속에 있다 해도 보편적 조건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확신했다. 하지만 지역의 작은 성당은 점점 중심을 변두리, 혹은 보편성 속 개체성이란 인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로마제국이 모너지고 프랑크왕국의 질서도 보편의 힘을 상실하며, 당장한 장원이 제국 없는 삶을 서서히 가능하게 만들어가면서, 보편 없는 개체를 긍정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라는 거대한 보편적 질서 속 개체로의 자기 자신이 아닌 그저 개체로 자기 자신, 지금 여기 자신의 개체적 조건에 충실한 개체로의 자기 자신에 더 큰 무게를 두기 시작하였단 말이다.
이제 교회도 보편성만을 강조할 수 없다는 오컴의 윌리엄은 이러한 맥락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보편적 질서 보다 개별적 삶, 그 삶 속에서 신을 만나려는 신비주의의 등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보편적 질서인 교회 없이 신을 만난다는 신비주의는 개체로 나에 대한 또 다른 긍정이다. 다음은 몽골과 흑사병과 개체로의 나의 긍정에 대하여 다루어 볼까 싶다.
2023년 3월 12일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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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PR의 시대라니... 이렇게 저를 소개해 봅니다.
저의 책 <신성한 모독자>(추수밭, 2018)은 한겨레 신문 등에 소개되었고, 그 책을 들고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철학사>(이상북스, 2020)은 한겨레 신문, 서울신문, 교수신문 등에 이 책과 관련된 그리고 저의 철학 하는 삶과 관련된 인터뷰 기사가 소개되기도 하였고, 그 이외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많은 신문에서 저의 책 <대한민국철학사>를 소개하였고, 소설가 장정일 작가님의 서평으로 <시사인>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외 2021년 인문사회과학 추천도서에 추천되었고,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청년 위한 100권의 책' 가운데 인문 분야 20권에 선정되었습니다. 2019년 청주 대성초등학교 학부모 철학 강좌, 2019년 광주 시민자유대학에서 중세철학 강좌를, 2019년 경향신문의 시민대학에서 중세철학을 강의했고, 이후 여전히 중세철학을 연구하며 동시에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이란 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가톨릭 일꾼'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또 함석헌 철학에 관한 고민을 <씨알의 소리>를 통하여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치열하게 중세 신학과 철학을 그리고 우리 시대를 위한 철학을 위해 애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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