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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장의 생존기

지금 이 자리의 부조리, 이 고난에서 미래를 궁리한다. (대구철학독서교실)

어떤 학생이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하더군요.

왜 동양 철학은 미래의 대안으로 많이 연구되지 않지요. 

음... 재미난 질문입니다.

그런데 서구의 과거 철학도 지금 우린 미래의 대안으로 삼아 연구하진 않습니다. 과거의 철학은 과거 사람의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왜 그 옛날의 것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까? 당연히 과거의 철학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비판되고 긍정되는 철학은 지금 이 현실을 주 텍스트로 연구하는 지금 이 순간의 철학입니다. 과거의 철학을 열심히 연구한 고전 문헌학자가 아니란 말이죠. 

당연히 동양의 과거 철학도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입담의 연예인 같은 철학 강사들이 동양 철학이 미래의 대안이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들 이론의 상당수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근거한 이미 폐기된 이론을 듣기 좋은 언어로 풀어서 마치 그것이 철학의 전부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지 현재의 철학자는 그들의 말처럼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철학자는 과거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난, 이 부조리에서 철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혹은 부조리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공간 혹은 부조리가 남의 일인 이들이 어떻게 그런 현대 철학을 이해할까요? 

과거 철학, 과거의 고전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지금 우리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어 왔는가를 이해하는 겁니다. 왜 이렇게 부조리에 가득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알기 위해 읽는 겁니다. 비판적으로 말이죠. 배우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싸우려고 읽는 겁니다. 성인의 말씀에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모습이 이렇게 그리스도교를 만들어 버렸는지 따져 알아가기 위해 고전 그리스도교 문헌을 읽는 것이고, 왜 우리 인류가 이렇게 잔혹한지 알기 위한 과거 우리가 답으로 여긴 그 문헌을 읽어보는 겁니다. 지금 우리를 진단하기 위해 우리를 병들게 한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중세와 근대 그리스도교의 문헌에서 이야기하는 신에서 잔인하게 자신밖에 오르게 진화할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문헌에서 현실의 기득권을 누리며 언어유희 속에서 살아가는 무력한 조선 선비의 부조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독서는 이렇게 어쩌면 싸움의 자리입니다. 

과거에서 미래를 묻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된다는 이들은 과거의 세계가 그리운 아직도 과거에 사는 이들일 뿐입니다. 

왜 동양 철학을 대안 철학으로 삼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가?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2년 10월 14일

유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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