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7년 전과 후에 대한 대강의 스케치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12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라틴어 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환은 문제를 야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교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많았다. 신앙과 어긋나는 이성이 서서히 신학자들의 시선을 자극했다. 1210년 파리대학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유입되고 멀지 않아 1215년과 1231년 각각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신앙와 우선적으로 어긋나는 자연학에 대한 강의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1240년대 파리대학 인문학부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그뿐 아니라, 1255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를 파리대학 인문학부의 의무 사항으로 삼아야 한다는 약관이 나오기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가운데 시선에 거슬리는 몇 가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선은 우주의 영원성에 대한 것이다. 창조주 신이 시간을 시작함으로 우주를 창조하였나는 신앙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그 시작이 있고, 그 끝이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영원성은 이와 다른 결론을 가지고 있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따르면 기적이란 없었다. 우주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신플라톤주의와 혼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의하면 점성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천체에 의하여 인간이 결정론적 사유가 유행하였다. 그리고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사후 육체를 떠난 영혼은 개별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이 하나의 단일체로 있다는 발상도 사후 심판을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의 사고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 위험한 것이라고 신학자들이 경고하고 금지하였지만 실상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베로에스 그리고 아비켄나의 철학은 금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리스도교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작업을 한 인물은 어럿이다. 우런 로베르투스 글로세테스테(1168-1253)이다. 그는 그는 스스로 그리스어를 익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리고 로저 베이컨(1220-1292)이 있다. 또 이러한 움직임은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알베르투스 마뉴스(1200-1280)와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모색하며 서로 다른 근거를 가지는 계시 진리에 근거한 신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근거한 이성의 조화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기에 파리대학 인문학부엔 브라반트의 시제루스(1240-1284)와 다치아의 보에티우스(1270년경 활동)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아닌 이성의 자발성, 즉 철학의 자발성을 모색한다.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는 철학자의 철학을 해석함에 있어서 계시와 같은 초자연적인 것을 도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에게 철학자의 행복을 논의할 때 그 행복은 이성에 의한 행복이며 신으로 부터 주어진 계시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인문학부 교수들의 활동에 신학자들은 위험한 존재로 그들은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1270년과 1277년에 걸처 금지령을 내린다. 특히 1277년은 무려 219개나 되는 명제들을 금지시켰다. 파리대학에 있었던 1277년 금지령의 가장 큰 영향력은 신의 절대적 전능에 대한 제한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우주의 인과적 질서를 자연의 필연적 법칙이 아니라 신의 개입에 달라질 수 있단 생각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신은 자연법칙에 의하여 규정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신은 자연법칙의 외부에 있는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 권능을 가진 신에게 이 우주가 의존되어 있다면 학문을 구성하는 보편타당한 필연적 명제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 등장한다. 보편 공리를 구하기는 힘들고, 경험된 것에 한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경험론적 사고가 강해진다. 또 어떻게 학문적 필연성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 고민은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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