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그냥 나다.
아주 아주 우연히 읽게 된 금강경, 금강경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내 고등학교 시작이다. 그렇게 철학적이지 않았지만, 윤동주, 이상, 정지용, 한용운... 등의 시를 읽으며 교과서나 참고서와 다른 나만의 나름 철학적 상상력을 유지하며 고교 시절을 음악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게 된 대학교 1학년 이후 나는 이것이 철학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 당시 나에게 철학은 칸트였다. 나름 독한 마음에 칸트 철학 개론서는 그저 칸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순수이성비판의 여러 번역서들을 앞에 두고 죽으라 읽었다. 그래서 지금 내 머리 속의 칸트는 그때 대학교 1학년 시절에 만들어진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고마운 경험이었다. 철학사를 보면서 만들어진 이상한 철학의 역사가 아니라, 나 스스로 고전을 제대로 경험한 첫 경험이었다. 이후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수십번을 읽었다.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데카르트가 좋았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나는 철학사로 익히지 않았고, 교실에서 익히지도 않았다. 마치 데카르트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성 중심의 세상을 당연시 여기던 서구에서 1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철학사관이 데카르트를 직접 만나면서 내가 만난 데카라트와 그와 다를 때 기분이 좋았다. 그냥 나만의 무엇인가가 만들어져서 좋았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논문이란 것을 쓰고 학과 세미나에서 발표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긴 글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Si fallore, sum와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은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르게 읽혀야한다는 대학 2학년 유대칠의 그저 귀여운 논리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de ente et essentia를 라틴어로 조금씩 읽기 시작한 것도 그때 무렵이다. 공부한 라틴어를 활용한 것을 찾다가 혼자서 조금씩... 읽어갔다. 내 눈엔 그것이 중세철학이었다. 그 책 어디에도 신의 권위로 존재자와 존재 그리고 본질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합리적인 인간 이성을 통하여 독자를 설득하려 하기 때문이다. 신학이 아닌 철학이었다. 데카르트도 은총의 빛lumen gratiae가 아닌 자연의 빛lumen naturale 가운데 우주를 설명한다. 그런데 중세에서 오렘이나 오캄이나 많은 철학자들이 자기 철학에 신이 아닌 자연의 빛으로 우주를 설명하려 한다. 그것을 알고 중세 철학의 세계로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 대학교때다. 그런데 나는 유학을 갈 형편은 되지 않고, 그냥 혼자 공부해야 했다. 대구 대봉도서관이 내가 유학을 간 곳이고, 남의 대학교 도서관이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때 토마스철학학교를 개교했다. 대봉도서관 앞 지금은 사라진 pc방에서 2000년 토마스철학학교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당시 내가 번역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중심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음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그룹으로 운영 중이다. 내 독서의 기록들이 모여 그곳을 채웠다. 책을 읽으며 이루어진 갈등과 고민이 글이 되어 그곳을 채웠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성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현상학의 근본문제, 쿠사누스의 De docta ignorantia,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플라톤의 국가와 티마이오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형이상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자와 본질,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과 섬,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스피노자의 에티카,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이황의 성학십도,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 이 책들은 나의 대학 시절을 함께 한 책들이다. 지금도 장 그르니에의 그 글들이 준 대학교 1학년 유대칠의 혼란과 고민은 책의 내용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되었다. 내 생각을 만들고, 남의 생각과 싸우고 남의 생각과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되었다. 외국어와 고전어를 독학한 이유도 책 때문이었다. 책, 책은 나를 나로 만들어진 나의 벗이며 내가 읽은 책들은 그냥 그대로 바로 나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 책을 쓸 것이다. 책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이어지고 책으로 정리되는 그런 삶이 될 듯 싶다. 책, 나에게 책은 그렇다. 책은 그냥 나다.
2016년 1월 19일 나의 존재가 머무는 존재의 터, 내 서재 허수당에서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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