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철학이야기/중세 지중해 연안의 고민들

루터노선에 선 타우렐루스의 대안적 존재론

루터노선에 선 타우렐루스의 대안적 존재론

 

[Andreas Blank "Nicolaus Taurellus on Forms and Elements" Science in Context 27 (2014) : 659-82 [재출판. Andreas Blank, Ontological Dependence and the Metaphysics of Individual Substances, 1540-1716 (Munich : Philosophia 2015), ch. 2]

 

유대칠 오캄연구소장 정리

 

루터라는 이름으로만 루터노선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루터 노선에서 신학적 길을 잡고 또 다시 철학의 장으로 들어와 철학을 일군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니콜라우스 타우렐루스(1547-1606)이다. 그의 저서 가운데 1573년 <철학의  승리>(Philosophiae triumphus)은 사물의 정체성을 남다른 견해로 풀어간 책으로 유명하다. 생성 소멸은 사물 각각의 부분들이 모이고 다시 분리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부분으로 구성된 이 우주의 모든 것, 인간을 포함한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단일체가 아니다.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단일체가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견해를  자체로 원자론으로 보인다. 원자들이 모이고 흩어짐으로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설명하는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타우렐루스는 1603년 <우주론>(Kosmologia)에서 원자는 크기의 원리라고 했으며, 이는 가장 근원적인 최초의 것이며, 그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초지일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원자가 우주의 질료가 아니라고 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내어놓은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후자에서 원자를 질료가 아니라고 하는 것에 그 질료는 제일 질료, 형상으로 부터 독립된 어떤 질료를 말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이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질료를 수동적이고 형상을 능동적인 원리로 이해하고, 이 둘이 하나가 됨으로 사물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수동과 능동 이 두 가지 원리가 모두 비물질적인 형상에 작용으로 이 우주 가운데 다양하게 발생한다고 보았다. 상위의 형상과 하위의 형상의 조합이 형상과 질료의 결합을 대신하여 타우렐루스의 존재론에서 활용되었다. 또 타우렐루스는 형상과 질료의 결합에도 형상은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타우렐루스가 이야기하는 이 형상은 비물질적인 원자에 가깝다. 이 형상들이 모여서 다양한 힘이 모이게 되고, 새로운 종류의 힘이 생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형상들을 하나의 통일된 존재로 존재하게 하는 어떤 실체적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존재론적 발상은 그의 신학에 근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질료와 형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으로 실체가 가능하다고 한다. 질료와 형상은 항상 서로를 필요로 한다. 질료 없는 형상도 형상 없는 질료도 없다.이들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유와 같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우유는 하느님의 우유인가? 만일 그렇다면 하느님이 존재하는 한에서 그 우유도 존재해야 한다. 즉 우주는 영원하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타우렐루스는 우유가 아닌 다수의 완전한 실체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 완전한 실체는 각각 독립되고 자존적이다.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주는 바로 이러한 것의 집합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생성 소멸한다. 많은 형상들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형상들은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물질이다. 타우렐루스, 그의 존재론이 재미나다.

 

개인적으로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이 생각나는 모습도 있다. 비교를 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한다. 중세 스콜라 철학 이후 근대 종교 개혁의 문이 열리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통하여 사고 하던 시기, 중세가 아닌 또 다른 우주관을 형성하던 시기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후기 중세의 자연스러운 이어짐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재미난 존재론적 사유를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