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주의자의 아리스토텔레스 활용
-제이곱 쉐크(Jacob Schegk)와 멜랑히톤(Philip Medlachthon)의 경우
[S. Kusukawa, "Lutheran uses of Aristotle : A Comparison between Jacob Schegk and Philip Melanchthon" in Philosophy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 Conversations with Aristotle, ed. C. Blackwell and S. Kusukawa (Aldershot : Ashgate 1999), 169 -188을 읽고]
유대칠 오캄연구소장 정리
흔히 근대라고 하면 탈-아리스토텔레스주의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착각이다. 데카르트가 살고 철학을 하던 시기에도 여전히 철학에서 주요한 교과서는 아리스토텔레스였고, 신학을 함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담을 쌓고 신학을 하긴 힘들었다. 물론 엄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선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한가지, 16세기와 17세기에도 여전히 유럽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상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루터주의자도 있다. 바로 제이곱 쉡크와 멜랑히톤이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쿠수가와의 논문은 바로 이러한 점을 정리하고 있다.
쉐크는 튀빙겐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536년 멜랑히톤이 대학을 방문한 이후 루터의 노선은 대학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쉐크의 철학에서 잘 드러나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빈번히 거론한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단순한 철학자 그 이상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 왕이며 철학자들의 신이라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쉐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단순한 추종자가 된 것은 아니다.그 역시 우주의영원성에 대한 논의에서 분명하게 아리스토텔레스와 자신을 구분지운다.
쉐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앙에 있어서 계시와 같은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가지는 합리성은 신앙을 이단으로 부터 혹은 오류로 부터 막고 지킴에 있어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철학을 동원하여 루터의 성체에 대한 입장을 지지한다. 즉 그는 성체성사에 대한 논의에서 철학을 활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활용한단 말이다.
멜랑히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활용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는 시민이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루터의 이론이 구현되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윤리학을 활용한다. 또한 자연철학 혹은 자연학에 있어서 그는 우주란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것이란 입장을 가졌다. 우주에 존재하는 혹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는 신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고 창조된 것이다. 즉 이 세계의 질서는 신이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시민에게 복종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려 했다.
쉐크와 멜랑히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으로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자신들의 개신교, 더 정확하게 루터의 사상을 따르는 교회의 교리를 정비하고 이단에 싸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를 유용했다. 그의 철학은 루터의 사상을 기초지움에 유익하고,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루터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보론 : 이러한 제이곱 쉐크와 멜랑히톤의 생각은 사실 중세철학자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중세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가 성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으로 부터 오는 계시 진리 만큼의 사실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이곱 쉐크와 멜랑히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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