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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장의 생존기

유학장의 생존 일기 - 개똥 철학 개론 1

유학장의 생존 일기 1 


허수 유대칠 씀


삶이란 고된 하루의 모임이다. 어떻게 보면 죽어가는 과정이다. 삶의 마지막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있다. 죽는다. 결국 문제는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이란 말은 무섭다. 사라진다. ‘란 의식도 없이 그냥 완전히 사라진다. 결국 모든 인간은 그렇게 사라진다. 다시 말한다. 문제는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이다. 이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모습이다.

 

삶은 고되다. 죽어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서 이런 저런 힘든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직장(職場)과 학교(學校)에서 사무(私務)와 학업(學業)으로 이런 저런 힘듬을 경험하기도 한다. 기쁨이란 그 힘듬에 대한 도전 혹은 힘듬이 어느 순간 힘을 잃어 나에게 패배하거나 스스로 무너질 때 다가온다. 혹은 힘겨움을 있는 대로 참아내고 주어지는 작은 보수(報酬)에 대한 만족감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보자. 돈을 버는 것은 힘든 일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한다. 눈치를 보는 것은 기분이 나쁘고 불쾌하며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이기고, 작은 월급(月給)이 주어진다. 기분이 좋다. 결국 월급이란 눈에 보이는 일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아픔과 힘듬에 대한 보수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자본주의(資本主義)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에게 큰 자존심(自尊心)과 만족감(滿足感)을 주지 못한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맘, 자존심, 그러나 스스로의 생계를 연명하기 위해 힘겨운 일을 하고,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보수를 받는다면, 자존심 형성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자존심이 무너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100 만큼 노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가(代價)를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100을 노동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50이나 많으면 80 정도다. 자신은 100을 했는데, 다 돌아오지 않으며, 그 상당 부분은 지주 혹은 자본가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고, 자신은 더욱 더 초라하게 하는 자금으로 사용된다. 노동을 하지만 더욱 더 맘은 가난해진다. 자존심은 무너진다. 이런 상황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은 더욱 더 힘들다.

 

얼마 전 뉴스를 이 세상의 암울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 부부가 독극물(毒劇物)을 먹고 서로를 꼭 안은 채 자살을 했단다. 경제적 문제가 이유다. 결국은 돈이다. 그 부부들은 나름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거대한 빚인 경우가 있다. 부부는 자신의 평생 노력으로 이기지 못한 그 세상의 힘듬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놓아버린 것이다. 슬픈 일이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무너져서 그냥 자신의 존재가 그냥 없어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삶이란 이와 같이 잔혹하고 아프고 힘들다. 어차피 죽음을 향하여 인생의 여정, 그 여정 가운데 만나는 그 수많은 아픔들을 생각하면, 이 삶은 참으로 슬프다. 우울하다.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잘 살아야 한다.

 

나는 가난했다. 가스렌즈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린 시절, 아톰에 대한 기억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 나이 들어 구입한 중고 텔레비전은 채널이 잘 고정되지 못했다. 사용이 쉽지 않았다. 냉장고도 전화도 없는 집이었다. 당시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는 공간에 들어가 학기 초에 이루어지는 재산 조사는 잔혹한 고문이었다. 자동차 있는지 손을 들라는 선생, 전화기 있는지 손을 들라는 선생... 학생의 경제적 능력을 확인하던 그 잔혹한 만행은 손들 일이 거의 없는 나에겐 일종의 고문이었다.

 

멜로디언 시험이 있었다. 나는 없었다. 가난한 집이었다. 어머니도 일을 가시고, 아버지도 일을 가셨지만, 해결되는 일보다 점점 더 많은 어려움이 다가오는 시절이었다. 음악교과서 뒤에 그려진 건반으로 연습을 했다. 시험 당일 처음으로 선생이 강제로 친구에게 앗아 빌려준 멜로디언으로 시험을 했다. 얼마나 큰 호흡으로 불어야하는지 몰랐다. 너무 지나쳤다. ! 큰 소리가 났다. 그 기억은 나에게 아직도 아픔이다. 짜증이고 불쾌감이다.

 

5학년이 되는 날, 성탄의 전 어느 날, 왼팔이 부러졌다. 당장 팔이 부러졌지만, 병원비를 먼저 걱정해야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사이의 대화 역시 나에겐 힘겨움이었다. 어느 하나 편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3이 되던 날 어머니는 일을 가시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신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게 되셨다. 일생에 가장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나 역시 2009년 얼굴뼈와 두개골이 골절되고, 다리 뼈가 3곳이나 골절되는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뇌출혈이 있었고, 일 년 동안 7여 차례 크고 작은 수술을 했다. 아직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0년 아버지는 암수술을 받으셨고, 2012년 나의 딸도 수술을 받았다.

 

힘겨움을 나열한다고 끝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삶이다. 삶은 힘겨움이다. 나의 힘겨움의 역사가 곧 나의 생각의 역사가 된다.

 

삶은 고된 힘겨움이다. 자존심이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을 통하여 얻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