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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철학 인터넷 강의

인문학 고전! 제발 싸우듯 읽자! 감동이 아닌 싸우듯이! 유학장의 모르고 하는 소리...

인문학 책은 무엇인가 배우려고 감동받으려고 읽는 것은 아니다. 

간혹 인문학 교수들이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들과 대중에게 다가서고 그것이 먹히기도 하는데... 솔직하게 인문학은 감성적인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 책은 싸우기 위해서 읽어라.

감동하려고 하지 말고...

미리 그 저자의 이름 앞에 고개 숙이고 네네네를 연발하기 위하여 읽지 말고...

왜왜왜를 외치면서 읽어가기 바란다.

그게 인문학적 글 읽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공자와 맹자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따지고 들어라!

그리고 설득 당할 것은 설득 당하고

포기 하지 못할 것은 포기 하지 말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쓸데 없는 똥고집은 절대 피우지 마라!

나는 공자의 글을 읽고

맹자의 글을 읽으면서

공자에게 이렇게 저렇게 따졌다.

아마 나에게 공자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공자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나는 맹자를 읽을 때도 따졌다.

싸우려고 읽는다.

그리고 맹자와 친구 먹기로 했다.

공자는 배우라고 한다. 좋은 말이지만 배우라는 말은 강한 놈이 약한 자에게 아는 놈이 모르는 자에게 강요하면서 사용하기 쉽다. 극기복례란 좋은 말이지만 나쁘게 사용하면 지금 나는 극복의 대상이란 것이 지금 나는 부정의 대상이 되고 나의 외부에 무엇인가 있는 것 처럼 여겨진다. 그것도 스스로 자기 본성을 궁리하여 체득하는 것이아니라, 제도와 법에 따라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거 싫다.

맹자는 자기 본성에 충실하라고 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시 선한 것이니 자기 본성에 충실하라고 한다. 맹자는 인간을 믿는다. 그게 맘에 든다. 

공자에게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서 나는 공자와 나눌 것은 나누고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두었다. 그리고 그 정도 거리 두기에서 벗이 되기로 했다.

맹자와도 마찬가지지만 맹자에 더 맘에 간다. 솔직하게 말이다.

왜왜왜 이렇게 따지고 들면서 읽으면 이렇게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냥 감동감화하기 위하여 읽으면 친구가 아니라, 

그 글자가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고전이 진짜 고전인 이유는 그 글자가 과거의 형태로 우리를 사라잡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글자가 지금 현재형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하여 따지듯이 읽자! 

ㅎㅎ



마지막으로 나쁜 개같은 민초를 개무시하고 자기가 잴 잘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자는 그를 두고 예를 배우기 못했기에 극기하고 다시 예를 찾아야 한다고 할 것이고, 맹자는 스스로의 본성에 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극기할 생각도 다시 돌아갈 생각도 없다면... 참 공자와 맹자도 그런 것은 답없는 것이라고 했을듯 싶다. 


유지승의 쓸데 없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