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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의 자리

피타고라스


사모스사람 피타고라스 

유대칠 

1. 생애와 인물 

므네사르코스의 아들인 피타고라스는 54회 올림픽이 열리던 기원전 5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사모스는 그가 태어날 무렵에 매우 번창하였으며, 참주인 폴리크라토스가 기원전 535년에서 515년까지 다스린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기간에 피타고라스는 정치적으로 그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하여 그는 남부의 크리톤으로 이주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여행한 것으로 알려지며, 여기에서 수학적인 지식과 신비주의적인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크리톤에서 철학과 정치 그리고 종교적인 특성을 가진 단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지며, 이 단체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힘을 행사한 듯하다. 그러나 곧 그러한 이유로 그곳의 귀족 퀼론은 이들 학파, 즉 피타고라스학파를 크리톤에서 몰아내었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신비주의를 강조한 그가 정치적인 것에 끊임없이 매여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하여간 이들 학파의 정치적인 탄압은 큰 희생을 낳았다. 그런 중에 리시스와 아르키포스가 살아남아 피타고라스의 교설을 전파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피타고라스에 대하여 정확한 생의 여정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단지 헤라클레이토스나 엠페도클레스...등이 그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며 두 번 그리고 플라톤이 단 한번 그를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그를 두고 다양한 사상들이 그에게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그 이후 그의 사상은 종교적인 교리를 추종하는 이들과 그의 수학을 강조한 학문적인 것을 강조한 이들로 구분되어 전해져 왔다. 우리는 그의 사상을 확실히 이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지만, 우선은 두드러지는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사상 

여기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은 그의 학파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것이라 여겨지는 몇 가지뿐이다. 그 중에 그는 철학자를 다른 이들과 구분시킨다. 다른 이들은 돈이나 명예를 위하여 그것을 목적으로 하여 혹은 그것을 얻기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러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목적으로 하여 탐구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말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그의 사고는 레온과의 대화에서 인간은 세 종류가 있는데,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와 영예를 목적으로 하는 이 그리고 이러한 것이 아니라 진리와 우주에 대하여 관상하는 이라고 하였는데, 이중에 마지막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철학자인 것이다. 앞선 두 부류는 세속적인 인간으로서 인간의 욕망에 따른 이들이지만, 셋째 인간은 진리를 관조하는 인간이며, 앞선 두 부류는 진리를 보지 못한 채 윤회하고 있지만, 셋째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철학자는 자신의 혼을 정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두드러지는 세 말마디를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정화, 질서, 관상이다. 이 세 말마디는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그는 인간의 혼을 영원한 것으로서 윤회하는 것이라는 오르페우스교의 사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혼을 정화하기 위해 종교적인 느낌이 강한 교리와 진리에 대한 관상을 말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다루는 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학문적인 것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이오니아의 합리적인 사고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한편 오르페우스의 신비주의적인 것도 볼 수 있다. 
그는 일찍히 페레퀴데스와 탈레스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를 만나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선 페레퀴데스가 죽어갈 때 피타고라스가 간호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이들은 각별한 듯하다. 페레퀴데스는 피타고라스에게 영혼의 불멸과 윤회를 가르친 인물이다. 그리고 탈레스는 그에게 살아있는 우주라는 물활론 혹은 범신론을 가르친다. 그리고 수학적인 관심은 그에게 수학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무규정자를 이야기하고 이를 모든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피타고라스에게 영향을 준다. 그는 규정자( )라는 개념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서 세계를 무규정자와 규정자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이해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죽은 탈레스를 찬양하였으며, 그를 방문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또한 아낙시만드로스이 강의를 듣고자 밀레토스를 방문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야간 그는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았으며, 또한 신비주의적 종교의 흐름도 받음으로서 자기의 철학을 구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그것은 그 유명한 "개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의 이야기가 나오는 그의 단편을 살펴보자. 

Diogenes Laertios 의 증언에 따르면 

"언젠가 그가 어린 개가 맞는 것을 보며 지나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곧 동정 어린 목소리로 (때리는) 사람에게 말하고는 (그 개를) 따스함으로 안고서는 이리 말했다. 
'들었소. 회초리로 그를 때리지 마오, 왜냐하면 그(개)의 안에는 내가 그 목소리를 알아차린 (나의 )한 친구의 영혼이 있기 때문이오.'" 

여기에서 우리는 피타고라스가 오르페우스적인 요소의 후계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물론 과학적인 수학적인 요소를 강조하였지만, 신비주의적인 종교의 영향을 무시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육체는 마다되어야할 것이며, 인간은 그리고 참다운 철학자는 자기의 영혼을 순화하기 위하여 노력해야하는 존재이다. 이는 그에게 참인간이란 바로 그 인간의 영혼이기 때문이며, 육체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철학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영혼의 윤회에 관계된 것으로서 영혼의 정화였다. 그러나 영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말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과 『형이상학』에 따르면 영혼은 공기 가운데의 작은 조각이라 하고, 또한 이를 움직이는 것이라 한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영혼을 조화라고 하고, 수의 변형이라고 한다. 우선 그도 영혼을 움직임의 원리로 이해하는 그리스적 전통에 입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영혼을 호흡이나 공기의 일부라고 보는 것도 그러한 것이다. 하여간 그리고 많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사람들은 영혼을 수나 육체의 조화로 이해하곤 했다. 특히 조화로 보는 것은 그의 추종자인 알크마이온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는 1을 모든 수의 근원인 최상의 존재로 여겼다. 그리고 이 1은 우주내의 근원에 대한 상징이었다. 이 1에서 다른 선한 모든 것이 나옴은 바로 이것이 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1은 신과 같은 것이다. 반면 그는 2, 즉 한 쌍을 불평등과 불규칙성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한편 1을 신 혹은 선으로 규정하고, 다른 한편 2 혹은 한 쌍을 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의 투쟁관계로 이 우주를 이해하였다. 하지만 이 악은 상대적인 악이다. 이러한 대립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우리에게 정리되어 전해진다. 1과 2는 홀수와 짝수로 그리고 한정과 무한정으로 또한 선과 악으로 오른 쪽과 왼 쪽으로 또한 ?음과 어둠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그에게 4는 매우 중요한 수이다. 우선 처음 입체적인 형체를 가진 것으로 등장하는 것이 4이다. 그 이유는 삼각뿔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 삼각형의 뿔은 각이 4개인 것이다. 그리고 4계절과 4방위 그리고 4원소들을 볼 때 이들 학파의 사람들은 4를 자연의 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엠페도클레스가 이들 학파에서 철학을 배울 때 아마도 4원소를 배워갔을 것이라 여겨진다. 피타고라스와 이들은 모든 것을 이렇게 수로 혹은 기하학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학문적인 태도는 후에 수학의 발전에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플라톤의 철학이 성립되는 것에 큰 영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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