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우 곽종석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전>
허수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허수당 연구원) 적음
들어가는 말
면우 곽종석(1846-1919)은 조선 말 탁월한 성리학자이다. 그는 19세 대구감영에서 열린 향시에서 급제하였고, 다음해 서울에 올라가 회시(會試)에 응시하기도 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이진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진상에 대한 그의 존경은 그가 직접 지은 이진상의 행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조선의 비참한 상황과 국권의 회복을 염원하는 장서를 적어 만국회의에 전달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왜국 헌병에게 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2년형을 받았다.
그는 학파에 매이지 않고 많은 이와 교류하였으며, 천 여명에 달하는 많은 제자를 남겼다. 그 가운데 그의 영향을 받은 이인재는 서양 철학을 우리 민족에 처음 체계적으로 전한 ?철학고변?의 저자이다. 그는 서양 사고에 대하여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의 제자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상.
곽종석의 학맥을 우선 살펴보자.
이황-김성일-장홍효-이현일-이재-이상정-유치명-이원조-이진상-곽종석
여기에서 곽종석은 영남에서 이황의 영향 가운데 철학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퇴계의 학파는 리는 순수하게 선한 것이며, 기는 선악이 혼재한다고 하는 측면에 강조점을 두었다. 곽종석도 리의 주재성을 강조하며, 리는 단순히 존재의 근거만이 아니며, 기를 주재하는 능동성을 가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리는 이황 이후의 논의와 같이 존재의 근거 혹은 원리(所以然)이며, 또한 당위의 근거 혹은 도덕의 근거(所當然)이라 본 것이다. 그러한 곽종석은 순선하지 않은 기가 아닌 리를 학문의 중심에 두었다.
곽종석은 인간의 마음을 리라고 했다. 이로써 그는 마음이 리와 기의 합이라고 하여, 동시에 순선하며, 동시에 선악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모순을 극복하려 하였다. 마음의 지각은 사물로서가 아니라 능동성으로 기를 통재하는 리라고 보았다. 그리고 성은 리가 아직 발하지 않은 것(정)이고 정은 이미 발한 것(종)이고 마음은 리라고 하면서 리의 개념으로 동과 정을 관통하여 이해했으며, 이는 곧 마음으로 이를 관통하여 이해했다는 말이 된다. 마음은 기와 논리상 구분되며 순수하게 리적 존재이며, 이러한 마음이 본질적인 마음이다. 즉 순수한 마음은 리이며, 사단과 칠정은 모두 리의 발현이라고 했다. 그는 사단과 칠정 모두 하늘의 리가 발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단과 칠정이 구분되는 것은 사단은 리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칠정(곽종석은 이를 더욱 더 나누어 십정이라고 함)은 리가 기를 타고 생긴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곁에서 생긴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리라는 개념을 중시여겼다. 마음은 곧 리이며, 이러한 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마음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어야했다. 이러한 곽종석의 존재론적 사유와 도덕론적 사유는 강한 실천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강한 실천적 논의가 그의 조선 독립의 욕구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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